연구·교육
2019년 4월 29일, 한국여성학회 긴급집담회가 있었습니다. 한국여성학회, 여성가족부, 경찰청이 함께 주최한 집담회였는데요. 최근 한국 사회에서 큰 화두가 되고 있는 ‘장자연’, ‘김학의’, ‘버닝썬’ 사건, 즉 소위 3대 권력형 성범죄 사건을 해석하고 여성주의 이론과 실천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부설 연구소 울림의 책임연구원 김보화님의 토론도 있었습니다. 한국여성학회 회장 신경아님은 이 사건들에 ‘성폭력’, ‘성매매’, ‘성접대’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이 사건들이 하나의 단어로만 불릴 수 없고, 이 단어들이 여성에 대한 폭력과 학대, 모욕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여성학회에서는 pdf 자료집을 따로 배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긴급집담회의 내용과 구성이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1부와 2부 발제와 토론을 간략하게 요약합니다. 추후 논문 등에 게재될 경우 글을 읽어보실 수 있을 거예요.
1부는 <산업이 된 성폭력: 디지털 공간과 성착취> 였는데요, 첫 발표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리아 활동가의 “사이버성폭력 산업과 남성연대”였습니다. 웹하드를 중심으로 사이버성폭력이 어떻게 발생하고 있으며 변화하는지, 그리고 웹하드를 둘러싼 권력과 자본의 관계망은 어떠한지에 대한 현장 조사 분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2018년 웹하드카르텔 고발 이전에는 가장 낮은 단계의 필터링인 금칙어 적용(피해촬영물을 의미하는 단어/ 국산, 몰카 등)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2018년 웹하드카르텔 고발 이후, 단속과 공론화를 통해 이런 최소한의 조치가 취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웹하드 업계는 중국 피해촬영물을 대거 유통하기 시작하고, 웹하드 내 BJ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합니다. 특정 개수의 사이버머니를 BJ에게 보내면 BJ가 명시된 성적 행동을 하게끔 되어 있는 이런 BJ 방송의 채용은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손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리아님은 온오프라인 성폭력과 성산업의 스펙트럼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기존 사이버성폭력 대응 운동은 ‘동의없는 촬영은 폭력이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약물강간과 불법촬영물 근절을 외쳐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웹하드는 BJ 방송물 촬영, 성매매 기획 촬영물 등의 새로운 방식으로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있습니다. 리아님은 이렇게 변화하는 지형 속에서 사이버성폭력을 근절하는 운동은 어떤 방향을 취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또한 피해와 가해의 구도가 1대 다수를 이루며,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불분명한 사이버성폭력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이버성폭력의 내용에 있어서도 “여성의 신체 이미지가 재현되는 방식이 주로 어떠한가? 그것은 상품으로서 어떻게 사고 팔리는가? 그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남성들의 강간문화를 강화하고, 다른 여성들의 삶을 침해할 수 있을지 탐구해야”(리아, 2019: 10)할 것입니다.
1부 두 번째 발표는 한세대학교 산업보안학과 송봉규 교수의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성산업: 성구매 후기 사이트 실태”였습니다. 2013년 성매매후기사이트 “밤의전쟁”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한 이 발표는 성구매 행위뿐만 아니라 성구매 후기 웹사이트 역시 남성들의 놀이문화의 일부이며, 후기라는 이름으로 업소의 홍보가 이루어지는 실태를 드러냅니다. 하루 방문자가 2만 명, 2천여 개의 업소가 등록된 이 사이트는 초보이용가이드 등을 통해 ‘친절’하게 성매매 하는 법을 안내합니다. 뿐만 아니라 “법률상담” 게시판을 통해 해당 사이트 전담 변호사가 단속된 성구매자를 구제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일주일동안 1205개 업소의 성구매 후기가 게시되었는데, 이 중 일부는 후기의 형태를 띤 성매매업소 홍보글입니다. 성구매 후기 웹사이트는 성매매 알선을 위해 필수적인 공간인 것입니다.
송봉규님은 성매매 단속과 처벌이 강화된 현재, 성매매 알선자들과 구매자들이 모두 단속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들은 단속에도 불구하고 성구매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단속과 처벌 강화만이 아니라, 다른 해답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송봉규님은 이 발표에서 디지털 범죄와 디지털 범죄의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사이버공간은 음성화되기 마련이며, 경찰력의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불법 정보에 노출되기 쉬운 디지털 세대 사용자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발표는 마무리되었습니다.
1부 마지막 발표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추지현 교수의 “클럽, 남성성, 준강간”이었습니다. 추지현님은 ‘장자연’, ‘김학의’, ‘버닝썬’ 사건을 경제, 사회, 정치적 자본을 가진 특정 집단의 문제로 일축하며 여성들의 피해 경험 이외에 다른 ‘사건의 본질’이 있다고 주장하는 관점이 문제적이며, “성적 지배를 통한 남성다움에 대한 인정, 이에 기반한 연대는 클럽 안팎 ‘특권층’ 아닌 자들의 일상에도 널려 있다”(추지현, 2019: 46)고 짚었습니다. 또한 ‘클럽’이라는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여성의 성적 피해를 만들고 비가시화하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입뺀’(입장규칙)으로 수질을 관리하는 클럽에서 여성은 클럽에 가는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로 거래되는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클럽의 남성들은 여성을 소유하거나 강간하며 자신의 남성됨을 확인하고, 이를 확인해줄 친구들과 함께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과 착취를 놀이화하기도 합니다. 이 발표에서는 클럽의 남성들이 표출하는 다채로운 남성성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클럽이라는 공간에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노는 여자’, ‘클럽 다니는 여자’, ‘술 취한 여자’가 피해를 용인했을 것이라고 보는 사회적 시선에 의해 피해를 말할 수 없게 됩니다. 마약 복용 사실과 증거 없음이 피해를 가리우는 것이 아니기에, 약물과 관련된 강간, 준강간 형사정책이 이러한 정황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1부 첫 번째 토론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의 김보화님의 “산업이 된 성폭력: 디지털 공간과 성착취”가 있었습니다. 김보화님은 “너희들의 자만이 타인을 희롱하는 즐거움에서 나오는지는 꿈에서 몰랐다”라는 가수 장재인의 인스타그램 글은, 다른 말로 하면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토대로 남성성과 남성연대를 형성하고, 여성 동료의 몸을 통해 물질적 이익을 얻었다’는 것에 대한 통찰이라고 해석합니다. 성매매후기사이트 “밤의전쟁”은 성매매를 놀이와 게임처럼 만들어내며, 전담 변호사들은 이런 착취적이고 불법적인 놀이를 안전한 것으로 창출합니다. 성폭력이 돈이 되는 상황, 촬영과 유포가 강간의 확장이 되며 성폭력의 범위가 커지는 현상을 고민해야 한다는 중요한 토론이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여성단체들이 가해자를 괴물로 만들면 일상의 드러나지 않는 더 많은 가해자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해왔는데, 일상이 흉악해지고, 흉악이 상향표준화 되어버린 성폭력과 관련한 상황에 대한 고민을 나눌 필요가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후 이성일 경찰청 사이버수사과 경정의 사이버수사과에 대한 조직과 활동 소개가 있었고, QnA 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플랫폼의 빠른 변화의 속도에 맞춰 발달하는 사이버성폭력을 어떻게 규제할 수 있을지, 인터넷 사용자의 의식을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점유하는 생산자들을 규제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사이버성폭력에 무지한 일선 경찰들에 의해서, 혹은 법집행 과정에서 피해자가 2차피해를 입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2부는 <‘성접대’?: 성매매와 성폭력 사이>입니다.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김주희 교수는 ““응 여자는?”: ‘테이블’의 성경제”를 발표하였습니다. ‘버닝썬 게이트’가 조명받고 있지만 사실 이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계속 반복되어 왔던 문제입니다. 성폭력 사건을 부인하며, 증거가 없다고 항변하는 반복적인 행위를 김주희님은 부인주의라고 이름 붙였으며, 이것이 ‘성폭력이란 없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한국형 백래시라고 지적합니다. 김주희님은 버닝썬 사건은 여성들을 인종화하고, 인종화 된 여성 중에 ‘창녀’를 만들어내는 낙인의 정치학이 작동하는 장으로 읽어내며, 버닝썬 카르텔을 통해 본 성경제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성접대’ 규제의 법적 가능성과 한계”를 발표했습니다. ‘성접대’를 현행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안과 그 한계, 법 개정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기존의 ‘성접대’가 이익을 취하기 위해 여성이 자발적으로 성적 행위에 임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면, 클럽 버닝썬에서는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은 여성이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성접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음에 주목하며, ‘성접대’를 젠더폭력으로서 인지해야 한다고 논의했습니다.
이후 이하영 여성인권센터 보다 활동가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이하영님은 ‘권력형 성범죄’를 말할 때 남성의 젠더 권력은 ‘권력’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문제를 짚었습니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의 토론이 있었습니다. ‘성접대’ 관계 속에 들어간 여성이 이익을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인해 여성들의 피해 경험이 삭제되는 문제는 곧 저항을 입증할 수 있는 수단이 폭행협박으로 한정되어 이해되어 온 강간죄 최협의설의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는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이익이냐 불이익이냐, 자발이냐 강제냐의 이분법으로 여성들의 경험을 읽어낼 수 없기에 다른 상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이란 공간에서 여성의 몸이 어떤 방식으로 체현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여성주의 이론, 활동의 영역에서 변화하는 정세들을 어떻게 포착하여 담아낼 지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활동가 수수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