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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교육

여성주의적 담론생산을 위한 연구와 반성폭력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공유합니다.
[후기] 성폭력 수사 재판 시민감시 20년, 피해자와 함께 만든 변화의 기록과 내일 이야기
  •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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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말하기와 시민들의 연대로 1994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제정되었다. 하지만 법적 처벌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은 피해 자체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담당자들에게 2차 피해를 겪는 등의 인권침해를 겪어야 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200410, 성폭력 수사재판 시민감시단을 출범해 형사 사법 절차를 모니터링하고 감시하며 피해자 권리 존중을 위한 연대 활동을 시작했다. 매해 시민감시단 활동결과를 모아 수사재판 담당자들 의미 있는 판결이나 영향을 준 곳은 디딤돌로, 2차 피해를 야기하거나 문제 있는 판결을 준 곳은 걸림돌로 선정하면서 법과 정책, 관련 담당자들의 인식변화를 촉구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00410월 발족한 성폭력 수사재판 시민감시단의 실무를 맡아 20111월까지 사무국 역할을 했다. 그 뒤로는 한국성폭력위기센터가 20221월까지 실무를 맡았고, 20222월부터 현재까지는 전주성폭력상담소 사무국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29일에는 2004년에 발족하여 올해로 20년이 된 성폭력 수사재판 시민감시단의 사례를 분석한 연구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307건의 사례들은 의미 있는 역사적인 판결부터 관련 법과 지침에 명시되어있는 절차를 제대로 준수한 디딤돌 판결과 시대착오적이고 피해자다움을 양산하는 판결부터 담당자의 문제적 행동에 이르는 걸림돌 판결까지 다양했다. 307건의 사례는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성폭력 수사재판 시민감시단 공동단장)와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양보름 전주성폭력상담소 활동가(성폭력 수사재판 시민감시단 실무담당), 이경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장임다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연구진으로 참여해 분석했다.

 

2004년부터 2024년까지 디딤돌로 선정된 사례는 총 157건으로, 판사가 83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로는 경찰(47), 검사(26), 기타(1) 순이었다. 걸림돌은 총 126건으로 가장 많은 걸림돌 시상자는 마찬가지로 판사(82), 검사(33), 경찰(11) 순이었다.

사례들은 주요 쟁점별, 피해유형별, 절차상의 사례로 범주화하여 시기별 법 정책의 변화 흐름과 선정 당시 지원단체의 활동의 영향 등을 고루 살폈다.

 

쟁점별 분석으로는 첫째 폭행협박의 최협의설, 둘째 양형, 셋째 피해자다움과 진술신빙성, 넷째 역고소, 다섯째 손해배상으로 구분하여 디딤돌 걸림돌 사례들을 범주화하여 분석하였다. 첫째, 최협의설은 강간 및 강제추행 등 성폭력 범죄 구성요건으로 피해자의 저항행위 존재 여부를 강간의 성립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만드는 기준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최협의설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입증 부담이 전가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고 시민감시단은 최협의의 폭행협박이 없어도 강간죄로 인정한 판결들을 디딤돌로 선정하며 법리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둘째, 술이나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의 범행이라서, 우발적이라서, 피해자와 합의해서, 처벌불원서가 제출되어서, 공탁해서 형량이 감형된 사례들은 걸림돌로 선정하며, 편향적인 성범죄 양형기준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감시단의 활동은 성범죄 양형기준의 개정과정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적절한 법적 형량과 기준 마련과 준수, 가해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 관행이 개선되는데 시민감시 활동은 유효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셋째,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은 성인지 감수성 판례 등장 전후로 변화하여 수사기관과 법원이 피해자다움이라는 고정된 상에 갇히지 않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변화를 이끌어냈으나 여전히 무조건 피해자의 말만을 믿어야 한다는 왜곡되고 폄하된 내용으로 제기되는 등의 상황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사례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넷째, 역고소는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성폭력 가해자들이 자신의 죄를 부인하거나 피해자를 겁박하여 성폭력 주장을 철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허위의 역고소를 하는 경우도 걸림돌로 많이 선정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무고와 관련된 정책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기 위한 다각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다섯째,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은 수사기관에 의해 야기된 2차 피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피해자 보호가 법률상의 의무라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는 분석을 하였다.

 

피해유형별 쟁점은 장애인 아동청소년 친족 준강간 디지털 성폭력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피해 군 성폭력 공적인 영역에서의 권력 관계와 차별로서의 성폭력으로 구분하여 분석하였다.

 

성폭력 피해자 권리보장 제도를 충실히 실행하여 디딤돌로 선정된 사례 들은 형사소송 과정에서 피해자가 소송관계인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나 개별 법령에 흩어져 있는 제도를 활용하여 소송과정에서 피해자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반면, 재판부의 재량 내지는 수사기관의 방어적이거나 소극적 태도로 피해자를 소송 과정에서 배제하는 경우, 절차적 문제의 걸림돌로 선정되었다. 특별상 선정 사례 분석을 통해서는 경찰, 검찰, 법원 담당자들 이외에 언론을 비롯한 피해자 주변인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다양한 지원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별상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언론의 경우 심층 보도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꾀하였지만 동시에 피해자 신변노출이나 선정적 보도로 2차 피해를 양산하고 하였다. 이웃에 사는 사람, 시민들에게 주어진 특별상도 있어 피해자 지원과정에 동참하는 시민참여 사법 감시가 성폭력 피해자 권리보장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위와 같은 연구 결과에 대해 권지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 연대자D, 차인순 국회의정연수원 겸임교수, 김보화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이 각각 시민감시단 향후 활동방향에 대한 제언과 사법감시 운동의 의미, 향후 과제를 짚는 토론을 진행하였다.

 

지난 20년의 시민감시단 활동은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성폭력 상담소 활동가들의 눈으로 사법 감시 활동을 하고 그 내용을 모아 아카이빙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자료집에는 20년간의 시상 결과가 담겨있어 이후 많은 기관에서 자료를 활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피해자와 함께 호흡하며 형사사법절차상의 2차 피해를 막고 감시하며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해 애써온 현장활동가들의 노력이 담겨있는 자료가 더 많이 환류되고 의미있는 실천적 변화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피해자의 형사소송절차 상 권리가 보장되길 바란다면 300페이지가 넘는 자료집에 담긴 피해자들의 형사사법절차의 투쟁기를 함께 읽어보자. 변화해야 할 것은 아직 많고, 우리가 해야할 일도 아직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