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피해를 말하는 다양한 욕망이 이끄는 변화 (인권오름, 제169호)
피해를 말하는 다양한 욕망이 이끄는 변화
가부장사회를 균열시키는 성폭력생존자 말하기대회
이산
시사문제를 다루는 TV프로그램 제작진으로부터 종종 성폭력상담소에 찾아오는 피해생존자 인터뷰를 원한다는 연락을 받는다. 아직 공중파에 성폭력피해생존자로 얼굴을 내놓은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인터뷰이를 자청하는 피해생존자도 거의 없지만, 제작진이나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TV 화면을 차지할 ‘그림’을 이야기하다보면, 피해생존자에게 인터뷰를 제안할 의욕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해보이고 지저분한 방 안. 칙칙한 색깔의 옷. 처음엔 담담히 이야기하지만 말하다보면 어느 순간 차오르는 감정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뺨 한 구석으로 또르르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성폭력피해를 이야기할 때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어 하나에 벅차오르는 감정,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떨리는 목소리에 우리가 익숙한 게 아닐까. 그러나 성폭력피해생존자의 무수한 면 중 왜 하필 그 하나의 장면만이 방송의 ‘그림’이 되어주어야 할까? 그들의 ‘그림’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대중’들이 ‘피해자’를 불쌍히 여겨 동조해야 가능하다고, 피해자를 지켜보며 혀를 차는 대중과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가 마치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따로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생존자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2003년 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는 성폭력피해생존자가 직접 불특정다수와 함께 피해와 피해에 얽힌 자신의 감정을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생존자가 스스로 피해를 이야기할 때, 성폭력을 용인하는 사회, 생존자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이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말하기참여자도, 듣기참여자도, 행사를 준비하는 상담소도 많은 것들을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올까? 온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혹시 생존자의 신상이 노출되지는 않을까?’ 많은 염려와 질문을 딛고 열린 말하기대회는 말하기참여자와 듣기참여자의 구분이 사라져버릴 정도로 지지와 공감의 기운이 가득했다. 매년 말하기대회에서는 방송에서 원하던 ‘그림’같은 순간들이 매우 자주 등장했다. 말하기참여자들은 분노와 고통을 말하고, 숨죽이고, 때로는 오열했다. 객석을 메운 듣기참여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말하기참여자도 ‘그림’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분노와 용서, 슬픔과 기쁨, 자책과 용기가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하기, 말하는 순간 변화하고 변화하는 순간, 다시 말하는 살아있는 말하기가 매년 수 백 명의 사람들을 만나왔다.
말하기대회에 참여하는 생존자가 변화하듯이 말하기대회도 변화해왔다. 3회 말하기대회는 장소와 일시가 오픈되었고 듣기참여자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4회 말하기대회는 성균관대학교 운동장에 의자를 깔고, 누구나 언제든 참여하여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형식으로 진행하였다. 5회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는 ‘놀이판’의 컨셉을 가지고 기획하였다. ‘이리 오너라, 씹고 놀자!’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날의 말하기대회는 ‘성폭력’이라는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놀아보기 위한 자리였다. 울컥하는 심정에 눈물을 흘리고, 함께 분노하고, 밴드의 연주를 들으며 신나게 뛰고, 누군가의 편지 낭독을 조용히 듣고, 쑥스럽게 옆에 있는 사람과 손잡고 인사를 나누는 모든 것이 ‘놀이’가 되었다.
눈물을 닦아주는 것도 놀이
배를 잡고 웃는 것도 말하기
복수를 상상하는 것도 놀이
안아주는 것도 말하기
- 5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언중유희> 오프닝 영상 중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해보이고 지저분한 방 안. 칙칙한 색깔의 옷. 처음엔 담담히 이야기하지만 말하다보면 어느 순간 차오르는 감정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뺨 한 구석으로 또르르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성폭력피해를 이야기할 때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어 하나에 벅차오르는 감정,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떨리는 목소리에 우리가 익숙한 게 아닐까. 그러나 성폭력피해생존자의 무수한 면 중 왜 하필 그 하나의 장면만이 방송의 ‘그림’이 되어주어야 할까? 그들의 ‘그림’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대중’들이 ‘피해자’를 불쌍히 여겨 동조해야 가능하다고, 피해자를 지켜보며 혀를 차는 대중과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가 마치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따로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생존자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2003년 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는 성폭력피해생존자가 직접 불특정다수와 함께 피해와 피해에 얽힌 자신의 감정을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생존자가 스스로 피해를 이야기할 때, 성폭력을 용인하는 사회, 생존자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이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말하기참여자도, 듣기참여자도, 행사를 준비하는 상담소도 많은 것들을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올까? 온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혹시 생존자의 신상이 노출되지는 않을까?’ 많은 염려와 질문을 딛고 열린 말하기대회는 말하기참여자와 듣기참여자의 구분이 사라져버릴 정도로 지지와 공감의 기운이 가득했다. 매년 말하기대회에서는 방송에서 원하던 ‘그림’같은 순간들이 매우 자주 등장했다. 말하기참여자들은 분노와 고통을 말하고, 숨죽이고, 때로는 오열했다. 객석을 메운 듣기참여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말하기참여자도 ‘그림’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분노와 용서, 슬픔과 기쁨, 자책과 용기가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하기, 말하는 순간 변화하고 변화하는 순간, 다시 말하는 살아있는 말하기가 매년 수 백 명의 사람들을 만나왔다.
말하기대회에 참여하는 생존자가 변화하듯이 말하기대회도 변화해왔다. 3회 말하기대회는 장소와 일시가 오픈되었고 듣기참여자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4회 말하기대회는 성균관대학교 운동장에 의자를 깔고, 누구나 언제든 참여하여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형식으로 진행하였다. 5회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는 ‘놀이판’의 컨셉을 가지고 기획하였다. ‘이리 오너라, 씹고 놀자!’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날의 말하기대회는 ‘성폭력’이라는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놀아보기 위한 자리였다. 울컥하는 심정에 눈물을 흘리고, 함께 분노하고, 밴드의 연주를 들으며 신나게 뛰고, 누군가의 편지 낭독을 조용히 듣고, 쑥스럽게 옆에 있는 사람과 손잡고 인사를 나누는 모든 것이 ‘놀이’가 되었다.
눈물을 닦아주는 것도 놀이
배를 잡고 웃는 것도 말하기
복수를 상상하는 것도 놀이
안아주는 것도 말하기
- 5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언중유희> 오프닝 영상 중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 5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언중유희> 포스터
슬퍼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5회 말하기대회는 1회 말하기대회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많은 생존자들의 힘을 경험했기에 가능했다. ‘피해’를 중심에 두고 존재하는 무수한 감정 중에 좀 더 가볍고 즐거운 것들을 나누고 싶었다. 성폭력피해생존자가 고통과 슬픔조차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과연 말하기대회를 축제로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고민했지만, ‘슬퍼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충분히 즐거울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 고민을 접었다. 지금까지의 말하기대회가 발휘해 온 ‘살아있음’의 힘, 즉 성폭력 피해에 대한 모든 단편적이고 획일적인 시선을 뒤엎는 힘으로 신나고 도발적인 자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5회 말하기대회는 성폭력피해생존자의 이야기를 듣고 뮤지션들이 만든 노래와, 생존자와 함께 만든 영상이 말하기와 함께 열린 작은 축제였다. 축제의 마지막은 생존자가 자신의 경험을 듣고 뮤지션이 지은 곡을 밴드와 함께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날의 말하기대회는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이 피해의 경험을 세상에 던지는 것이 얼마나 뜨겁고 매력적인 일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6회 말하기대회는 5회에서 뮤지션이 성폭력피해생존자를 만나 곡을 쓰고 공연을 했던 형식을 이어받아, 뮤지션의 곡을 생존자가 직접 공연하는 형태로 준비하고 있다. 말하기참여자들은 3개월 간의 워크샵과 공연 준비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여러 형태로 풀어내기 위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올 해의 말하기대회가 또 다른 축제이자 한 판의 놀이로 펼쳐지고 나면, 말하기대회는 또 다시 변화를 겪을 것이다.
가부장사회를 균열시키는 축제의 장,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는 ‘성폭력피해’, 또는 ‘피해자’에 대한 가부장 사회의 규정을 계속 균열시키고 뒤엎는 장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어렵고 힘든 자리가 아닌 누구나 한 번쯤 오고 싶은 자리가 될 것이다. 때때로 모두가 바닥을 칠만큼 어렵고 눈물 나는 자리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피해를 말하는 다양한 욕망, 다양한 방식을 늘 새롭게 발견하는 자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욕망과 새로운 방식을 넘나들다보면, 성폭력피해말하기는 더 이상 침묵해야하는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두려워하는 이야기에서 생존자들의 온갖 상상을 피워 올리는 힘이 넘치는 주제로 변화할 것이다. 변화가 거듭되던 어느 날, 성폭력피해생존자의 말하기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일상에 섞여들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출처 :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