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순복 선생님이시죠~?”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전화로 시작되었습니다.
인자함과 편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 진심어린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생님의 말씀들. 전화를 끊고 난 후에도 남는 여운.
한 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6월 회원인터뷰를 부탁드렸고, 바쁜 일정에도 흔쾌히 약속을 잡아주셨습니다.
6월 말.. 두둥! 드디어 박순복 선생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느꼈던, 인자함과 편안함이 선생님의 외모에서도 엿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편안함이란..
그 편안함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셔터를 누를 때마다, 선생님은 안 찍으신다며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난 100미터 미인인데~ 안돼~ 빵순이라~ 찍으면 안돼~”
그래도 제가 누굽니까. 끝까지 찍었습니다. 찍고 보여드렸지요. 사진을 보면 세월은 못 속이는 것 같다고 하시며, 저에게 요청하셨습니다.
“찍으려면.. 멀리서 찍어줘”
선생님의 천진난만함에 웃음을 머금으며, 사진을 열심히 찍었습니다.
율동공원에서의 맛있고 멋있는 데이트.
선생님이 사 주신 스테이크로 입과 코가 즐거웠고, 율동공원의 분위기에 취해 눈이 즐거웠고, 선생님의 주옥같은 말씀에 귀가 즐거웠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박순복 선생님은 7년 전인 2003년도에, 상담원 교육을 받으시면서 상담소와 연을 맺기 시작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이미경 소장님께서 우리의 멋진 왕언니를 알아보셨는지, 활동가로 활동해 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도 하셨다고 합니다.
그 때 선생님은 망설이셨대요.
대학원 졸업 후, 봉사일을 생각했었지만, 상담사로서의 활동은 고민이 되셨던 모양입니다. 내담자가 상담사를 속이거나 이용하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러한 일이 있을 경우, 자신이 대응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또 활동가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보시고는, 앞서가는 사람은 뭔가 다르고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큰 그릇은 큰 그릇대로 노는 거고 작은 그릇은 작은 그릇대로 역할이 있는 거긴 하지만 활동가들의 넘치는 에너지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고등학교 졸업 후, 현재까지 대학에서 교직원으로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안정된 직장으로 인해 어머니를 모시는데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고, 학업도 꾸준히 할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학업을 꾸준히 하신 이유는,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신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자기 일을 하는 데에 대해 높이 평가하지만, 우리세대 땐 뭔가 모지란 사람 취급을 받았어요. 편견이라고 해야 되나. 저도 편견의 벽을 못 넘었구요. 그래서 부단히 노력하고, 태연한 척 지내고... 우리, 한국이라는 사회의 편견이 심하잖아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의 이슈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동 성폭력이 기사화되고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아동 성폭력범 사형 찬반 여론에 대해 선생님의 생각을 여쭈어 보았습니다.
“사형 찬반은 입장의 문제가 아닐까 해요. 김길태나 김수철 같은 경우도 이를 테면.. 도덕관념이 자리를 잘 못 잡았은 것 같은.. 그게 고쳐지기가 어렵대요. 약간 문제성 있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사회가, 사람들이) 몰아간다고 그러는데,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사람은 그렇게 전두엽 부분이 문제가 난 거라고 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구요.
옛날에 잭니콜슨(배우)이 젊었을 때 나온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것이 있어요. 70년대 말쯤에 영화가 나왔는데, 저는 그걸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잭 니콜슨이 사회에서 말썽 피우지만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닌데, 자꾸 말썽을 피우니까-가다가다 갈 때가 없어서 정신병원을 가게 되요. (이 영화는) 미국을 무대로 하는데, 정신병원에서 단체로 수용을 하는데-치료를 한답시고 전기 충격같은 것을 하는 거야. 정신병원 사람들 모두에게. 그러고는 완전히 기계적인 생활을 패턴으로 하는데-거기에 무지막지한 간호사가 있는데, 그 간호사가 철저하게 그 규율을 지키려고 하는 거예요. 그게 인제... 그런 식으로 통제를 하는데 구성원들 중에 진짜 모지라거나 부족한 사람은 거기에 대응을 못하는데, 이 주인공은 멀쩡한 사람이니까 이게 잘 못됐다는-부조리를 느껴요. 거기에 덩치 큰 인디언도 나오는데, 그 사람도 이 병원이 잘 못됐다는 것을 아는 거지.. 근데 그 주인공이 반항을 하면 할수록 병원측에서 치료라는 이유로 더 강한 자극을 줘서-이 사람이 이게(머리가, 전두엽 부분이) 문제가 생기기 시작을 하는 거야. 충격을 받으니까 멀쩡한 사람이 점점 더 나빠지는 거지. 덤벼드는 것을 감정적으로만 하니까, 미친 놈 취급하고 그런 식의 치료를 하는 거죠. 아까 말한 덩치큰 인디언은 병원 측의 불합리를 알면서도 표현을 하지않고 조용히 있다가, 주인공인 잭니콜슨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니까 여기서는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가지고 유일하게 탈출을 하죠..(이 영화는) 이제 그 정신병을 만든다는 사회의 구조적인 불합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거겠죠.“
저와 처음 나눈 전화에서도, 성범죄자들에 대해서 사회구조적인, 환경적인 영향으로 뇌에 문제가 난 것으로 보셨는데, 위의 내용에서도 그 이야기가 잘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여성학에 대해서는, 상담원 수업과 12년 전 이미경 전 소장님과 장정순 전 소장님께서 박순복선생님이 근무하시던 학교에서 교양강좌로 여성학을 가르치실 때 조금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왜 여성학을 따로 분리해서 학이라는 이름으로 하게 되었는지’ 정도를 조금 주워들은 거라며 겸손해 하셨구요.
선생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선생님은 정말 멋진 왕언니셨답니다.
골드미스 중에 골드미스!
“(싱글이) 너무 자유롭고 그 자유로움 때문에 웬 만큼.. 지금도, 예를 들어서 눈에 삐어가지고 (시집)가기 전에는 못 가요. 현실적으로 계산하면, 여자가 항상 손해잖아. 이제는 거의 평등이 되었다고 하지만, 집안 살림 꾸리는 거는 여자가 다하지, 남자가 도와준다 해도 그거는 한계가 있어요. 지금도 결혼한 여직원들이 남자들이 웃긴대는 거야. 남편이. 자기들은 술먹고 무슨 모임을 가는 건 당연한 거고, 여자들이 직장에서 회식하면 왜 안들어 오느냐 하고. 투정부리고. 그게 아직 더 현실(인 것 같애)....우리 또래 여자들은 고생을 많이 했잖아요.... 직장 여성들이 직장이 좋으니까, 취미생활 마음대로 하지 자유로운데 왜 결혼을 하겠어. 그래서 요즘은 30대 중후반의 싱글들이 많은 거예요. 골드미스들이, 가끔 그 친구들하고 만나요. 왕언니로서 만나고 있죠(웃음).”
이러한 자유로움 뒤에는 주변의 시선과 외로움으로 힘겨울 때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변의 시선과 외로움 중에서는 외로움이 더 힘들다고 이야기하시는데, 그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의 시선보다 외로움 때문에.. 표현은 안하는데 어느 새 무리의 중심에 서지를 못하는 거예요. 모임에 가도 언저리가 되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요. 그리고 왠지 여기에 내가 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느낌들이 서서히 시작되는 거죠.....자꾸 양보하고 뒤로 빠지려고 하는. 그래서 아까도 말했지만, 혼자 살면 더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해요. 더욱 자기중심, 자기 잣대 같은.. 중심을 잃어서는 안 돼요. (그렇지 않으면) 남들에게 휩쓸려 갈 확률이 높거든요. 그런 걸 지켜가려면 더 외롭지요. 나를 지키기 위한 외로움이기 때문에, 무너지는 외로움은 아닌데. 다른 말로 하면 고독이라고 할까? 내 스스로 담담해지지 않으면 어려운거죠. 혼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은근히 함부로 해도 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해요. (대부분) 남자들이 그런데 거기서 내가 자칫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면 언제든 공격이 들어올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정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지고 바른 것으로 접근해오면 좋지요. 그런데 (제 경험으로는) 대부분 가족이 있는 사람이 순간의 재미삼아 이렇게 생각을 하려고 하니까 그런 것을 지켜내기가 쉽지가 않지요.“
지금은 특수대학원 중 교육대학원에서 학생들과 씨름하시며 때론 머리에 스팀이 돌 때도 있다고 하시지만, 정년이 얼마 남지 않으셔서 인생 제 2막을 구상하고 계셨습니다.
여기엔 자아를 찾는 작업도 함께 하고 계셨어요. 역시, 멋진 분!!
“엄마가 2005년에 돌아가셨어요. 90세로. 주무시다 행복하게 가셨어요. 그 동안 엄마하고 같이 있었으니까 완전한 혼자는 아니었지... 가신 다음에 망망대해에 혼자 있는 기분이더라고. 형제도, 여동생 하나. 그랬는데 그 당시 직장도 다니기 싫은거야. 오히려 이럴 때 진정한 나를 찾고 싶은 생각도 들고. 명예퇴직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도 하고. 내가 사회에서 내새울 게 머가 있을까 따져 보니까. 겨우 석사학위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 밖에 없는 거야. 이게 머야 이거 가지고 멀해라는 생각이 들었지. 내가 매사에 자신있다 생각했는데 뚜렷하게 보면 확실하게 특기로 내새울 게 없더라고. 그래도 열심히 활동을 했는데 인생관리를 잘못한 거지. 나로서는 잘한다고 하지만 열매가 없는거지. 재주가 많은 사람이 특기가 없다고 하잖아. 성가대 활동 17년 동안 하고 노래하고 감각이 있다고 해도 프로가 아니잖아. 기타도 배우다가 손 아프다고 땡치고, 사회에 새롭게 나가서 내세울 게 없더라고. 사회복지 분야가 광범위 하잖아. 현장에서는 체격이 좋은 사람이 해야 되요. 50이 넘어서 사회복지 현장에 있기는 힘들더라고. 20대 때부터 카운슬러 하면 잘 하겠다고. 타고난 성격이 차분한데다가, 점쟁이는 아니지만 상대방의 어떤 심리적인 것을 잘 보는 심미안 같은 걸 가지고 있어요(주변에 사람들도 그러고). 사람은 내가 그런걸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무서워 하더라고. 자신이 거짓말을 하더라고 나한테는 다 드러날 것 같아서. 그런 심미안이 있는 반면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지. 사람을 해 하려는 시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니까.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도와줄까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서 사회복지는 상담 관련된 걸로 하고.. 내가 좀 잘하는 것을 살릴수 있는 것이 먼가 봤더니 내가 뜨개질을 하더라고. 이것도 잘하면 프렌차이즈를 할 수 있는거야. 동네 보니까 도자기 공방, 하우스커피 다 교육도 하고. 나도 이거다 해서 정년하기 전까지 기술을 더 익혀가지고-손으로 하는 거에도 진짜 손으로 하는 완전한 수제품이 있고, 수평기라고 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있어요. 뜨개질을 가르치는 강좌를 할 수도 있고, 책도 팔고 하니까 은근히 괜찮더라고. 이런것이 가능성이 있겠다. 처음에는 소박하게 하고. 시간 때우기에 딱 좋아. (웃음) 나중에 인사동에 전시회도 하고. 인테리어 잘 해가지고 공방도 하고. 장애인들에게는 무료료 가르쳐 주고, 독거노인 조끼도 짜주고,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서 모자도 떠서 기부도 하고. 글써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어요. 정작 글쓰기를 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 나는 수필이 딱이래요. 직장에서 사보에 글을 써본적 있어요.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행복감. 직장생활에서의 에피소드를 썼어요. 뮤지컬은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몸치야.(웃음)”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도 하나 얻어 입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잠시 하였습니다.(저도 목도리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 ㅋㅋ)
도란도란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말 삶의 통찰하고 삶의 목표가 분명한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공이 탄탄!!
정말 3시간이 넘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 갔는지 모를 정도로 선생님의 이야기에 푹빠졌답니다. 어떤 분이든 박순복 선생님을 만나 10분만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 매력에 풍덩 빠져 버릴 것이라 생각됩니다.
신나고 즐거운 데이트가 끝나고, 죽전역까지 데려다 주시는 에프터 서비스까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제가 만나 뵌 박순복님은!!
정말 멋진 삶과 생각을 가진, 진정한 왕언니셨습니다!!
댓글(3)
박순복 선생님! 이렇게 인터뷰 기사로 다시 뵙게되어 참말 반갑습니다. 20여년전 캠퍼스에서부터 선생님의 따뜻함을 나눠주시더니, 이후 상담소 회원으로 쭈욱~~~ 그리고 선생님의 삶의 철학이 담긴 한마디 한마디가 이제는 삶의 중반을 훨씬 넘긴 제게도 새삼 많은 생각을하게하네요. 감사드려요. 포근하고 정겨운 선생님의 기운받아 오늘도 화이팅하겠슴다^^
박순복회원님 반갑습니다! ^^ 시간나실 때 상담소에 놀러오세요!! ^^
선생님, 인터뷰 글을 늦게 올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