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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8일(토) 조경란 '혀'
  • 2008-11-03
  • 3201
 
지난 소설읽기모임에서는 천명관 작가의 '고래'를 함께 읽었습니다. 벌써 10월 11일이었군요!
 
사무실에 출근할 때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지하철 입구로 뛰어갈 때 항상 도는
모퉁이의 서점. 고려서점으로 '고래'를 사러 들어갔습니다.
소설 코너에서 눈으로 책을 마구 찾다가, 결국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구석에 앉아 티비를 보시던 서점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저기.... 고래... 라고요..."
 
심드렁하게 걸어나오신 주인 언니. 제가 찾던 소설 코너를 그대로 하나씩 손으로 훑다가
띄엄띄엄 말을 하기 시작하셨는데. 
 
"그게..... 참 재밌는 책인디... "
"한 사오년 됐나? 문학동네에서 나온 거지 아마"
"요새는 그거 안 읽어서 안 갖다놨는데.. 필요해요?"
"주문해 놓을 테니 거그 번호나 좀"
 
진열하고 팔고 있는 모든 책에 대해 다 알 것만 같은 포스가 느껴진 와룡거사.
다음날 문자메세지로 '주문하신 책이 도착했습니다- 고려서점' 이 도착.
서점으로 냉큼 달려가 받아왔지요. 두껍고 시뻘건 그 책, 고래.
 
이야기의 힘, 어느 기존 소설의 문법과 형식에 포획되지 않는 살아있는 말,
판타지와 영화와 구전이 하이퍼링크된 새로운 텍스트...
책 뒤에 붙은 해설을 읽거나 블로거들의 리뷰를 살짝 챙겨보아도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는 압도적인 즐거움을 주고
기존의 문단의 평론가와 작가들에게는 충격을 주었나 봅니다.
 
 
소설모임에 온 지선과 당고, 오매는 이 책을 얼마나 '즐겼는지'로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접어두었던 책갈피를 하나씩 열어 마치 낭독회를 열듯이
"나를 배꼽잡게 한 문단들" 을 서로 읽어주었어요.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걸 다시 소리 내서 읽는게
혼자 방에서 낄낄대며 배꼽잡았던 그 순간 보다 더 재밌지는 못했습니다.
작가의 그 문단과 문장들은, 텍스트를 가로지르는
깊이 있는 해학과 풍자, 위트와 블랙코미디라기 보다는 
문장이 말장난이 되어 엉뚱한 곳으로 파고들고 집착하고 달라붙으면서
구라와 과장의 한바탕 말잔치를 펼치는 지라, 그랬을까요?
여튼 신기한 구라빨 가득한 허풍과 말장난이 인물론이 되고 소설론이 되어
짐짓 의문을 품고 책표지를 다시 살피고, 작가 얼굴을 다시 살폈던 독자들조차
그저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포복절도에 함께하도록 잡아 먹는.. 말. 말. 말.
 
 
천명관은 남자인 소설가이지만, 그의 소설에는 여자들이 참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냥 여자들이라기보다, 뭔가 주류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세상천하 유아독존 박색 노파,
박색 노파의 딸이면서 벌떼를 몰고 다니는 은발의 애꾸,
열살이 넘기전 백킬로그램의 거구로 자라나는 농아 춘희,
천재적인 장사꾼의 배짱과 수완을 가지고 타고난 파란만장한 트랜스 금복,
코끼리와 셋이 한평생 살다가 떨어지게 된 후 낮과 밤으로 동생이 언니가 되고 언니가 동생이 되고 동생이 언니가.... 쌍둥이자매.
 
 
작가는 이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살이를 서로가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우연히 만나고
필연적으로 찾아갔다가 도망오고, 떨어져 살다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고....
거짓말 같이 교차되고 구라처럼 연결되는 수십년간의 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우리가 중요한 게 본 건, 이 주변적인 여자들의 속내와 사연들은
쉽게 대상화되거나 남성작가의 피상적이고 식상한 시선으로 재현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천대받았고 원한과 저주, 복수의 서사의 신산한 인물로 살게 된 여자들은,
그런 외모와 그런 운명, 그런 부모, 그런 가난을 타고난 만큼
자기만의 인격과 내러티브를 작가로부터 부여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 인생이 얼마나 잘나가든, 고난과 지랄의 연속이든, 악행과 업보의 적립이든 
그 자신들은 직접 그 인생의 행로를 하나하나 제 손으로 지어나갔던 것 같아요.
부인할 수 없는 그녀들 하나하나 인생의 개연성이 
우리를 배꼽잡는 걀걀거림 밑에서 침묵으로, 공감으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하게 된 여자(인물)는 딱히 꼽을 수 없더라도 
시종일관 긴장과 걱정, 애틋함과 공감으로 그들의 생로병사에 함께한 것이었지요.
 
 
우리는 춘희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찾아오는 이도 없는, 언어의 세계도 사람의 세계도 아닌
그 외딴 유폐의 땅에서 혼자 벽돌을 지어
온 들판과 계속과 산에 가득히 쌓아 올라가게 했던
그 시간을 침묵으로 느끼며,
 
고래의 마지막 책장을 덮었습니다.  
 
 
 
 
춘희의 벽돌 공력을 지켜보는 한 독자의 깊은 상념은
하루
이틀
사흘...
 
일주
이주
삼주....
 
 
 
시간은 어느덧 흘러, 아이구! 다음 소설모임이 벌써 이번 주말로 다가왔네요!!
 
 
 
 
 
이번 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은 바로
조경란의 '혀', 입니다.  
 
사실 위작? 도작? 표절? 논쟁으로 한참 뜨거운 감자가 되어 있는 소설입니다.
도작의혹의 피해자가 된 소설가의 책을 한권이라도 더 사 보아야 할 듯한 심정이지만,
찰나의 결정으로 - 깊은 고민은 아니었는데 흡 - 조경란의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벌써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조선일보는 성급하게도 이 책에 동인문학상을 수여한다고 합니다.
 
혀는 말하기도 하고, 핥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맛보기도 합니다.
달콤함을 말하기도 마시기도 하고, 거짓말과 상처를 안기기도 하는 혀.
요리와 이별, 미각과 관계, 음식과 감정의 곁들을
겨울부터 여름까지의 시간의 흐름으로 시시각각 교차시키다가
여름의 어느날, 반전을 꿈꾸는 그 소설.
 
그 소설은 도대체 어디에서 신인작가의 글을 도작, 위작, 표절한 것이었을까요?
읽어갈 수록, 마지막 페이지로 달려갈 수록
몹시 애가 닳게 궁금해지고 화가 솟구치게 하는 그 책.
 
그 책을 읽고 11월 8일, 이번주 토요일 오전 11시
상담소 2층 따사로운 테이블에서 만나요.
 
(상담소는 2, 6호선 합정역 7번 출구 근처에 있습니다.
  018-411-3113으로 문자주시면 마중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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