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일, <고독의 우물>, 레드클리프 홀
허참, 2월이면 겨울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갈 때인데, 비는 오지 않고 날씨는 벌써 따뜻합니다. 최근 몇 년째 부쩍 기상예보에 등장하고 있는 표현대로, ‘예년과 달리’ 말이죠. 이럴 때면 사람들은 변화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세상이 어떻게 되려구 그래’ 하는 다소 상투적인 말로 담아 내곤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변화가 다 불안한 것은 아닙니다. 비록 자기가 경험하지 못했을지라도 ‘그럴 수 있지’ 라고 인정하는 변화, 타인의 삶과 취향을 포용하여 폭력으로 압제하지 않는 바뀜이라면 가히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걸로 믿습니다. 세상에는 한 빛깔로 그리기에는 너무나도 다채로운 영혼이 살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동성애’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떨까요? 다음 달 우리 소설 모임은 이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기 위해 레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을 읽어볼 참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변화가 다 불안한 것은 아닙니다. 비록 자기가 경험하지 못했을지라도 ‘그럴 수 있지’ 라고 인정하는 변화, 타인의 삶과 취향을 포용하여 폭력으로 압제하지 않는 바뀜이라면 가히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걸로 믿습니다. 세상에는 한 빛깔로 그리기에는 너무나도 다채로운 영혼이 살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동성애’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떨까요? 다음 달 우리 소설 모임은 이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기 위해 레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을 읽어볼 참입니다.
이 책은 여성으로서 여성을 사랑한 스티븐슨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책이 처음 출간(1928년) 되었을 때는 성적 묘사가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외설’로 치부되어 금서가 되었다지요. 하지만 혹독한 시간을 견딘 이후 미국에서 재출간 되었을 때는 100만부 이상이 팔렸고 11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니 책에 대한 대우가 참 경이롭게 ‘변화’한 셈입니다.
저서명 “고독의 우물”에서 느낄 수 있는 끝간데 없는 막막함에도 사정이 있습니다. 저자인 홀 역시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규정됐지만 사회학적으로 남성이기를 희망하고 실천하며 살았던, 그래서 시대로부터 끊임없이 고독하였던 사람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아팠지만 그 중 사랑하는 것이 가장 아팠던 주인공의 이야기가 피를 토하는 진정성을 품고 있는 이유지요.
그렇다면 책의 등장에서 80년이 흐른 이 시대의 스티븐슨 그리고 스티븐슨을 둘러싼 이들은 얼마만큼 고독의 우물을 메웠을까요. 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댓글(6)
숨은댓글찾기 : 소설모임 회원님들, 요 광고글 누가 썼는지 아세요? 문득 궁금하여서!
오오오 윤주 회원님. 대환영입니다. 스티븐이 만능 스포츠X라지요? 호호
저 역시 소설모임에 참여하고자 열심히 읽고 있답니당~ 크크크. 다들 3월 4일날 만나요~!!! :)
우왕 굳- 점점 번창하는 소설읽기모임 좋아요- 홍보도 우왕 굳-
책표지가 많은 느낌을 갖게 하네요. 꼭 넘겨보고 싶어지는...
와우~~~ 읽고 싶은 책이었어요! 읽고 꼭 가야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