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3(화) 실비나 오캄포, 천국과 지옥에 관한 보고서
지난 모임 뒷풀이에서는
우리 여성소설읽기모임에도 예쁜 이름이 필요하다며, 치열한 논쟁이 오갔습니다.
omm : YSM이 어떨까. 우리 모임의 영어약자야
yj : 왜 영어에 집착하는 것인지 난 반대
jaju : 토렴, 어때? 국수를 뜨거운 국물에 적셔낼 때 토렴이라고 하잖아
r.e. : 토닥의 표절이라고 오해할 것 같은데.. 이게 아니야... 있어봐..
많은 후보들이 오르내렸는데 기억에 거의 남는 게 없는 걸 보니 한차례 더 수다를 나눠야 하나봐요. 뭐 좋은 이름이 없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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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여성소설읽기모임은
13일(화) 실비나 오캄포, 천국과 지옥에 관한 보고서를 읽고 이야기 나눌 예정입니다.
일시 : 2009년 10월 13일(화) 늦은 6시반
장소 :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실 혹은 인근 까페 (문자문의환영 : 010-2229-0073)
<네이버 책소개 중>
라틴 환상문학의 계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아르헨티나 여성 작가 실비나 오캄포의 단편선집. 실비나 오캄포는 남미의 다른 남성 작가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환상문학을 구축해온 작가로서, 여성과 아이들 같은 주변부 인물들을 악과 잔인성의 중심에 놓아 새로운 서사를 전개해왔다. 문학적 엄숙주의를 거부하고 공포와 쾌락의 결합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미의 가능성을 펼쳐 보이는 오캄포 특유의 잔혹성은 보르헤스와 비오이 같은 남성 작가들의 ‘품격 있는’ 환상담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불온한 아름다움을 체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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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쿳시 <추락>을 읽고.
내게는 특별한 독서 습관이 없다. 그래서 막연히 손 가는대로 책을 짚이는 대로 읽는 편이다. 지난 독서 모임의 책 선정하기 전, 내가 추천한 책도 그러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호기심과 검증된 서적이라는 점에서 나는 존 쿳시의 <추락>을 추천했고, 독서모임 친구들도 딱히 선택할 여지도 없이 정해져 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2003년도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차지한 <추락>이였다. 이제와 돌아보니, 왜 내가 노벨문학상에 대한 환상만을 가지고 그 책을 ‘양서’라 생각했던가 회의감이 밀려온다.
내게는 특별한 독서 습관이 없다. 그래서 막연히 손 가는대로 책을 짚이는 대로 읽는 편이다. 지난 독서 모임의 책 선정하기 전, 내가 추천한 책도 그러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호기심과 검증된 서적이라는 점에서 나는 존 쿳시의 <추락>을 추천했고, 독서모임 친구들도 딱히 선택할 여지도 없이 정해져 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2003년도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차지한 <추락>이였다. 이제와 돌아보니, 왜 내가 노벨문학상에 대한 환상만을 가지고 그 책을 ‘양서’라 생각했던가 회의감이 밀려온다.
책에 내용은 이러하다. 남아공에 사는 한 앵글로족의 교수가 니그로 여성에게 성매매를 하다가 그것을 사랑으로 미화시키고, 자신의 수업을 듣는 니그로 여성 제자를 수차례 사랑이라는 명분아래 간음을 하다가, 학교 위원회에 회부되어 겪게 되는 한 앵글로족의 수난?시대를 표현한 것이였다.
이쯤해서 그 다음 내용이 감이 잡힐 것이다. 저자는 앵글로족의 교수와 제자와의 잠자리를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매우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감정을 치밀하고도 조직적으로 다루웠다. 사랑? 이 점에 대한 고려는 아무리 거듭 언급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 매우 개인적이며, 동시에 사회적인 것임에 이 글을 통해 새삼 깨닫기도 했다. 앵글로족들의 사회적 힘이 남아공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또한 저자의 의도는 아마도 코너에 몰린 엥글로족의 감성과 지성은 위대하였고, 니그로족의 여성들은 사랑의 대상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니그로의 무지함으로 그 대상적 가치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갈수록 가관인 것은 이 앵글로족 교수가 딸이 있는 니그로족의 지역으로 들어 가면서 더욱 생생하게 앵글로 중심주의를 알 수 있게 된다. 교수의 딸은 어김없이 앵글로족이다. 이 딸은 땅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표현된다. 딸 루시는 어느 날 니그로족 남성들에게 겁탈을 당하고, 결국 그로 인해 임신을 하게 되며, 침입자의 집에 둘째 부인으로 들어가려고 결심한다. 즉 그녀는 니그로 지역속에 융화되기 위해 자신을 성폭행한 이들과 관계 맺고 살아가고 싶어한다. 앵글로족 교수는 그러한 결심을 한 딸을 답답해 하고, 계속 그녀에 대해 그리고 침범자들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이렇게 내용은 단순한데, 할 말은 많아진다. 주인공들이 너무나 편향적이고,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 왜 니그로족을 엥글로족에 대한 폭력 가해자로 표현했는가라는 의문점, 딸 루시의 선택은 과연 무엇을 나타내려는 의도인가라는 절망적인 덫에 걸리고 만다. 딸 루시의 선택을 단편적으로 생각해도, 그건 답이 나오는 쉬운 문제인 듯 하다. 저자는 딸 루시를 통해 니그로족은 야만적이고, 그들과 함께 소통하려면 위와 같은 비합리적이며,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존 쿳시가 싫든 좋든, 노벨이 울든 말든 문학상 수상은 허구였던 것이다. 권위있는 상에 대하여 구역질이 나올 지경이다. 저자가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고작 현재 남아공에 있는 엥글로족의 대변을 함과 동시에 엥글로족의 우월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임에 분노에 떨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분노는 모임에서도 회자되었으며, 이 분노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하늘과 땅으로 이어지는 이분법적 논리가 지배적인 글, 저자의 훈련된 글 솜씨로 인해 가려진 치밀하게 조작된 진실 없는 글 그 자체였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던지자면, 이 책을 읽으려면, 이 책을 던져 버릴 용기 또한 필요하다고.
2009년 9월 28일 래이로부터
댓글(5)
저.. 소설읽기모임에 관심있습니다만.. 다음 모임은 언제인가요?;ㅁ; 11월의 모임은..
이제야 여기에 들어왔네요.. 래이의 감상평 신랄하고 멋지고, 얼굴 보고싶고 그래요. 저는 래이처럼 그 책에 대해 명확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어요. 뭔가 너무 복잡하게 느껴졌달까? 새 책은 아마 모임시간까지 못읽을 듯 ㅜㅜ
그런데 래이의 분노가 진짜 절절히 느껴져요. 책 선정 과정에까지 거슬러올라가는, 분노에 대한 책임감까지 느껴져서 마음이 꿀꿀;; 그치만, 특별히 소중히 느껴지는 후기입니다. 야근으로 바쁜 래이를 쫑구어 얻어내서 그럴까요 흐흐
그럼 kkb 혹은 kcb 정도가 되겠군요.
저는 깨끔발? 까치발? 뭐 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까치발을 들고 서서 담장 밖의 세상을 훔쳐보는? 뭐 그런 이미지라고나 할까요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