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의 “재와 빨강” 독서 이후 이야기
by 미케코코
키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앤트라사이트’라는 카페에서 두나, 마도, 오매, 그래, 윤주, 미케코코, 그리고 라브님이 모였다. 클님은 갑작스런 미팅으로 불참을 하시게 되었단다. 라브님에겐 오늘이 우리소모임 첫 나들이. 첫 걸음엔 물리적인 운동에너지 이상의 어떤 것이 요구되기에, 짧지만 속깊은 환대의 말들을 낳는것같다.
이번의 소설 ‘재와 빨강’ 에 대해 회원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작품 뒤쪽에 붙여진 차미령이란 비평가의 비평에 대한 불편함이라고 난 기억된다. 그 비평을 괄호치고 작품만을 가지고 읽은 느낌은 다양했지만, 주인공의 소통에 대한 욕구와 외로움의 농도, 상태에 대한 공감이 우세했던것같다. 만약 작가가 여성이 아니었더라면, 지나쳤을 섬세한 심상의 결이었다.
“ 그는 전처에게 서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외로움에 대해, 서로가 알아도 될 법한 것만 털어 놓으면서 생겨버린 깊은 외로움에 대해 얘기할 기회를 영영 잃은 거였다.(100)”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쥐라도 만날 것같은 기분이 들 때면 등대처럼 환하게 불을 켠 공중전화부스로 달려갔다. 순전히 불을 밝힌 곳이 거기뿐이어서였다. 좁은 사각형의 유리상자 안에서 그는 공연히 떠오르는 이름들을, 전처의 이름이나 유진의 이름 혹은 자신의 이름을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동전을 넣지 않으면 어떠한 신호음도 떨어지지 않는 수화기는 묵묵히 그가 부르는 이름을 들어주었다.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유리상자 안에서 가볍게 공명했다. 그 이름들은 닿을 수 없는 먼 과거와 유일하게 이어진 것이었다. (234)”
그 외 여성주의적인 의식을 전제하고 보았을땐 성별의식이 없는 남성주의적인 작품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작가가 여성이었을 경우, 우리가 기대하게 되는 여성주의적인 작품이 드문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라는 궁금증도 거론이 되었지만, 이런 유사이론적인 관심사를 논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에 슬그머니 우리의 식탁에서 사라졌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오매님이 제기했던 궁금증 때문에 재미가 있었다. 과연 이 부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 아니 어떻게 이해되어야하나...하는 의문이었는데, 막상 질문을 받은 대부분의 회원들이 답하기가 순간 곤란했었던 것같았다. 이것이 이번 이야기의 꽃이 아니었나 하고 다시 읽어 본다. 문제의 그 부분은,
“ 그 일들로부터 수년이 흐른 지금, 그는 덥고도 더웠지만 계속해서 아내를 안고 싶게 한 파란 날개 선풍기 때문에 울 것 같았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음이 떨려 좋은 줄도 모르고 들은 쏘나타 때문에, 지붕에 던져올린, 새가 물어갔는지 쥐가 물어갔는지 알 수 없는 부러진 앞니 때문에, 빨간색 매니큐어가 발라진 발톱 때문에 울 것만 같았다. (168)”
다시 이 부분의 해석을 이 부분의 말미에 있는 저자의 말에서 찾아 보아야 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 지나간 생애가 너무나 사소하고 볼품없어서, 그런 인생에 회환이 느껴져서는 아니었다. 사소하고도 사소한 일로 채워진 현실의 시간으로부터 떨어져나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영영 멀어지게 될지도 몰랐다. 그의 불행은 이처럼 사소하고 미세한 생활의 결을 다시 매만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이 그를 짓눌렀다.(168) ”
* 다음 여성소설읽기모임은 11월 5일(금) 늦은 7시 입니다.
다음 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은 엘프리데 옐리네트의 "연인들" 입니다.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어 한국 독자들에게 낯설지 않은 <피아노 치는 여자>의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은 결코 읽기 편한 글은 아니다. 이 작품도 특유의 독설적이고 작품 속의 이야기와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듯한 차가운 어조로,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을 다루며 기성사회를 통렬히 비판한다.
두 여자 주인공 파울라와 브리기테는 지극히 우매하다. 사회적 신분 상승의 수단인 남자를 낚으려고 발버둥치는 브리기테와 재단일을 배우며 '더 나은 것'을 위한 사랑을 꿈꾸는 파울라의 모습이 처음엔 대조적으로 비치지만, 파울라 역시 결국은 소유하고 보여 주기 위한 사랑을 꿈꾸는 것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지만 동일하게 끊임없이 죽음을 향해 기계적으로 갈망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독자는 섬뜩함을 느낄 것이다. 이런 읽기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조금만 감내한다면, '자연의 자연적인 순환'을 끊으라는 작가의 손짓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댓글(4)
후기를 읽을 때마다 저도 그 자리에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두나, 마도, 오매, 그래, 윤주, 미케코코, 그리고 라브 그리고 또 옆에 유령처럼 앉아있는 푸른들판... ㅋㅋ 넘 무서워마시구요, 그저 모임을 사모하는 멤버가 있다 정도로 기억해주시면 좋을듯 모임에서 읽은 책은 인기가 좋은 것인지, 구하기 어려워서인지 이곳 창원 도서관에서 빌려보기 쉽지 않답니다. 그래서 도서 예약 신청을 하곤 하지요. '재와 빨강'은 근처 도서관에선 빌릴 수 없어 아직 못 읽었고, '연인들'은 비치되어있지 않네요ㅜㅜ 아무래도 자린고비인 제가 책을 사야 할까 봅니다. ㅋㅋ
마땅히 쓸 때가 없어서리,....11월 30일 부터 내년 1월 27일까지, 남인도 마이솔에 가 있을 예정입니다. ....모임에 빠지게 되서 죄송합니다. ...회원분들 모두, 연말연시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다녀와서 뵐께요..
기다리던 후기 잘 읽었습니다. 진짜 11월 모임은 말하기대회 다음날이네요. 소설모임 식구들을 떠올리며 골라온 네팔 엽서와 함께 갈게요.
소설 모임 멤버들! 소설 모임 전날이 말하기대회네요. 말하기대회에서도 만나길 고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