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즐거움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윤상(한국성폭력상담소 신임소장)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이 무척 떨립니다. 이런 떨림을 허락해주셔서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17년 전 자원활동가로 상담소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상담소는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거침없는 여자들의 이야기와 움직임이 제게 주는 에너지가 참 소중했습니다.
2년 전 차기 소장을 하겠다며 다시 발을 들인 저를 상담소는 문을 활짝 열고 맞이해주었습니다. 리더로서의 경험이 일천한 저에게 상담소는 차근차근 지혜를 건네주면서 성장의 기쁨과 용기의 무한함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제가 소장으로 다시 자리를 옮깁니다. 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제 삶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지혜, 새로운 용기, 새로운 포부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설렘과 부담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18년간 활발하고 다각적인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그 크기만큼 기대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도전적인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법과 제도가 정비되고 각종 분야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여성운동이 앞으로 더 할 것이 무엇이 있겠냐고 반문하는 이도 많아졌습니다. 상담소가 받는 기대의 크기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서로가 갖는 기대의 차이 때문에 마음 아프고 흔들리는 경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더욱이 나라 살림이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보니 우리의 마음과 몸이 자꾸 위축된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시민사회에 호의적이지 않은 기운에 자꾸만 두려움이 엄습해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잠시만 마음을 가다듬고 잘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돈이 우리 활동의 궁극적 목표이거나 원천적 동력이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기존질서와 절차가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질문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마음을 잘 가다듬으면 불필요한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두려움에서 자유로우니 우리가 해야 할 일들도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제 상담소는 여러분과 더욱 가까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상담소는 평등과 정의의 존엄한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분들을 만나고, 그 분들과 지혜와 용기를 나누는 과정을 거쳐 성과를 만들고 신뢰를 쌓았습니다. 이렇게 만들어낸 가치는 공동의 자산이며 공동의 이익을 위해 더욱 많이 기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숨 쉬고 여러분과 함께 토론하면서, 우리의 성과는 그 가치를 더욱 빛내게 될 것입니다.
상담소는 더욱 신명나게 운동하겠습니다. 우리가 만든 성과와 신뢰에 안주하지 않고, 우리의 성과는 열심히 나누고, 나누면서 그 크기를 더욱 키워가겠습니다.
상담소는 더욱 용기를 내겠습니다. 상식과 관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문제를 낯선 눈으로 바라볼 때, 바로 그 때 변화가 시작됩니다. 안주하지 않는 용기, 낯설게 바라보는 즐거움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혁신적 대안과 새로운 가치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활동은 눈부신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법과 제도의 정비, 공감대의 확장은 단연 돋보이는 성과입니다. 이제는 이런 성과가 자칫 요식과 형식에 빠지지 않고, 우리 삶의 가치를 높이고 풍요롭게 하는 인프라로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더욱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부단히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혁신적 힘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즐거운 실험을 계속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실험을 저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상담소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들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신뢰만 있다면 이 싸움에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싸움이 지난해진다 하여도 인간 존중의 가치를 더욱 갈고 닦아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가운데 기쁨과 즐거움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을 다시 한 번 뜨겁게 환영합니다.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합시다. 용기와 지혜를 나눕시다. 기쁨과 신명을 잃지 않고 삽시다.
대중과 함께하는 신명나고 혁신적인 반성폭력운동을 기대하며
이미경(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먼저 제 인생의 한가운데를 이곳,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가로 일할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2002년 소장의 역할을 맡으면서 여러분들께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행복한 활동가로 다시 시작’하겠노라고 다짐하며 인사드렸습니다. 사실 이 역할을 맡기 전에 많이 망설였어요. 더 준비된 인력으로 함께하고 싶었고, 개인적으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소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담소의 활동가로, 여성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다시 출발하는 것은 다른 어떤 일 못지않게 의미있는 일임을 알기에 기쁜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삶에서 상담소는 늘 우리사회의 성문화를 바꿔가는 엄청난 일을 하는 곳이고 그 상담소의 식구라는 사실이 큰 긍지이자 자랑이었습니다. 또한 창립멤버로서 상담소를 시작할 때부터 상근활동가, 상담자원활동가, 자문위원, 소장 등으로 함께해오면서 우리 상담소가 저에게 주는 의미는 해가 갈수록 큰 비중을 차지해왔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일했던 시간이나 노력 이상으로 상담소는 늘 제게 배움과 깨달음,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 하는 터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멋지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하게 한 곳이었구요. 특히 이번에 세 번째로 입사해 다시 상근 활동가로, 소장으로 일하게 된 것은 제 삶에서 또 다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장 역할을 맡을 당시 저는 우리상담소가 새로운 전환기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폭력이란 개념조차 생경했던 1991년에 성폭력 피해생존자를 지원하고 우리사회의 성문화를 바꿔가고자 출발한 우리상담소는 그동안 우리사회에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려내고 대책을 촉구하는 여러 활동들을 펼쳐왔었지요. 조직적으로도 24시간 운영되는 성폭력위기센터(1993), 생존자 보호시설인 부설 열림터(1994), 부설 성폭력문제연구소(1997), 21세기미디어센터와 성평등교육문화센터(1998) 등으로 활동범위를 확장해왔습니다. 그런데 1991년 개소당시 우리가 유일한 성폭력상담소였다면, 2002년에는 전국에 100여개의 상담소들이 생겨나고, 여성위기전화 1366도 24시간 운영되는 등 정부도 강력한 의지를 갖고 정책을 마련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외형적으로 발전해가는 반성폭력운동의 흐름의 내용을 채워가는 구체적인 고민과 실천이 요구되는 시기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폭력의 개념, 상담의 전문화, 성문화를 바꿔가는 기반이 되는 조사, 연구, 교육 등의 사업을 장·단기 계획을 세워서 진행해가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성폭력 추방운동을 해가는 여성인권운동 단체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그 방향을 어떻게 잡아갈지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해가겠노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이런 각오로 시작했던 소장으로서 지난 6년 4개월을 돌아보면 사실 아쉬움과 부끄러운 순간이 더 많습니다. 어찌 보면 상담소 창립멤버이고 상근활동만 12년 가까이 해온 저 자신이 외연으로는 제법 오래된 활동가로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졌어야 마땅함에도, 오히려 ‘우리 상담소의 지나온 역사’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았나 반성이 됩니다. 특히 우리가 목소리 높여 외쳤던 법과 정책이 마련되었지만 그 복병으로 ‘제도화의 그늘’을 만나 대항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있습니다. 정부보조금을 일부 지원받는 대신, 과도한 정부의 ‘지도·감독’을 받고, 피해생존자의 인적사항 등이 전산처리되어 중앙집적되는 ‘새올행정시스템’처럼 정보인권을 침해당하는 등 NGO 활동의 정체성이 도전받고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얼마나 대중과 호흡하는 활동을 해왔는가, 과연 여성들은 자유롭고 안전한 삶을 확보하고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자신에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다행히 반짝이는 활동가들의 혁신적이고 신명나는 아이디어들로 ‘생존자말하기대회’(2003~)와 ‘작은 말하기’(2007~), ‘다른몸되기 프로젝트’(2004~), ‘춤세라피 & 욕망찾기 & 꿈찾기 프로젝트’(2007~), 여악여락 콘서트(2004, 2008) 등 여러 실험적이고도 의미있는 활동들을 펼쳐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량강화(empowerment)를 위한 활동들은 생존자뿐만아니라, 우리 모두의 힘을 내게 하였습니다. 더불어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밤길되찾기 달빛시위’(2004~)도 이제는 매년 여름 전국적으로 함께하는 틀이 잡혀가고 있음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상담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채팅상담, 이메일상담, 야간상담 등을 줄이는 결정과, 열림터 퇴소자들을 위한 자립지지공동체인 ‘하담’은 3년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타기관에 이관하는 결단 등은 지난한 논의과정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간 활동이 없었던 미디어센터, 교육센터 등도 줄이고(연구소도 해소계획), 상담소의 몸체를 가볍게 하면서 재정자립의 3개년계획을 세웠습니다. 특히 몇 년 동안 진행되었던 미래전망을 작년에 집중적인 워크숍을 통해 기본틀을 마련한 것은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이제 여성운동에서의 ‘여성’은 단일화된 여성이 아니고,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이 인식하는 성폭력의 의미나 대응전략도 매우 다양합니다. 그리고 여성들의 적극적인 사회참여현상에 대해 가부장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의 반격(backlash)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찌 보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난 18년 동안 우리 상담소가 변화의 물결로 깊숙이 흘러왔던 경험과 고민의 시간들이 이러한 위기를 견뎌가고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내는데 힘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간 상담소와 함께해오신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회원님, 상담원선생님, 이사님, 자문위원님, 나눔이, 지킴이, 법정지원팀, 각종 행사의 기획단 등 모든 분들께 온 마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세상아 들어라, 나는 말한다’며 아주 특별한 용기와 지혜로 치유의 여정에 계신 생존자분들과의 만남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늘 상담소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함께해주신 여러분들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상담소와 함께해주시리라 믿기 때문에 든든합니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부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충분히 준비된, 사려깊고 추진력있는 이윤상 신임소장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드리고 마음 깊이 응원과 지지를 보냅니다. 지금의 MB정권에서 여성운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노력과 용기를 내야하는 지를 생각하면, 소장의 역할을 기꺼이 맡아준 이윤상 소장의 결의가 정말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함께하는 활동가들의 열정과 의지, 혁신적인 활동으로 꾸려갈 우리 상담소의 3년 후, 10년 후의 모습을 기대하고 꿈꾸는 기쁨이 큽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6년 동안이나 부족한 저에게 상담소 소장이라는 중책을 맡겨주시고 따뜻한 응원과 지원을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상담소는 늘 제 가슴을 뛰게 하는 소중하고 멋진 현장이었습니다. 그동안 반성폭력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의 하루하루가 참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늘 함께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