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십 후기]
딱딱한 탱탱볼에서 지금은 바람 약간 빠진 고무공 정도의 부드러움을 갖게 된 인턴활동!
*이 글은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청년젠더 인턴십으로
상담소에서 뜨거운 여름을 함께 한 송윤정님이 작성하였습니다!
드르륵 드르륵. 아침부터 요란한 바퀴 소리를 내며 같은 골목을 오가기를 몇 번, 인터넷에 나온 주소와 돌담에 쓰인 숫자를 맞춰가며 고개를 갸우뚱하기를 몇 번. 힐끗 본 시계는 아침 9시를 넘기고 있었고 나는 더욱 애를 태웠다. 수차례 시도 끝에 아침 근무 중이셨던 여성주의상담팀 차차 활동가와 연락이 닿았다. 자세한 위치 설명에 덧붙여 대문 밖으로 마중까지 나와주신 차차 활동가 덕분에 우여곡절을 거쳐 상담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9시까지일 줄로 지레 짐작했던 출근 시간은 다행이 한 시간 뒤인 10시였고, 알고보니 인터넷에 나온 주소는 아직 공사중인 곳으로 상담소는 몇 블록 떨어진 임시 거처에 자리잡고 있었다. 일련의 해프닝은 내가 인턴을 시작하기 일주일쯤 전에 고지도 없이 훌쩍 해외로 떠나버렸고, 출근 날 새벽에야 한국에 돌아온 탓이었다. 이미 출근하기로 한 날짜는 약속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연락 없이도 약속한 날 상담소에 나타나면 되겠지하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무책임함에 실소가 나오지만,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했던 나의 태도는 그렇게 안일했다. 인턴을 마칠 쯤, 아침에 그렇게 온 모습이 오히려 성실해 보여 첫인상이 좋았다는 란 사무국장의 말에 나는 면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본의 아니게 소음으로 합정동 주민께 민폐를 끼쳤던 그 날, 집에 돌아가며 한번 더 요란하게 바퀴달린 캐리어를 끌었더랬다.
정식 출근은 상담소의 새로운 건물이 멋지게 세워진 후에 하게 되었다. 막 이사한 탓에 박스에 꽁꽁 쌓인 짐들이 빈 공간마다 들어차 있어도, 새로 칠한 벽과 새 가구들은 언제나 기분을 설레게 하는 기분 좋은 마력을 발휘했다.
▲ 아카이빙 전후 1층 모습
인턴인 나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아카이빙이었다. 상담소에는 아주 많은 양의 단행본과 자료집이 구비되어 있지만 이제까지는 잘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 보유 자료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다른 인턴과 함께 상담소에 있는 단행본과 자료집을 엑셀파일로 정리하고, 1층에 마련된 공간으로 옮겨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또 1992년에 발간된 창간호부터 2015년 가장 최근에 발간된 76호까지 상담소 소식지인 나눔터를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볼 수 있게 하였고, 6년치의 상담일지를 정리하는 작업도 했다. 상담일지는 틈이 날 때마다 상담소 활동가 분들과 함께 정리를 했는데 한 번 시작하면 모두 말 한마디 없이 구멍을 뚫고 줄을 엮었다. 한 활동가 분은 예전에 다이어리 공장에서 알바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때 생각이 난다고 하셨다. 그만큼 열심히, 쉼 없이 정리를 해도 양이 너무나 방대해 다 마치기까지 몇 주가 걸렸다. 한 달에, 아니 하루에 그렇게 많은 상담 전화가 걸려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성폭력 피해는 생각 이상으로 너무나 일상적이었다. 또 피해 상황, 피해 당시 나이, 가해자와의 관계, 후유증의 종류와 기간 등 사건들의 모양이 너무도 각양각색이었다. 너무나 다양한 사건의 양상에 성폭력이라는 것이 쉽게 일반화될 수 없는 일이란 것이 피부로 와 닿았다. 하지만 그에 비해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점은 너무도 획일적인 것만 같아 안타까웠다.
인턴으로 또 재미있게 했던 일 중 하나는 해외법률을 찾아 번역하는 일이었다. 상담소의 성문화운동팀에서 진행하는 몰카근절 활동과 관련하여 미국, 캐나다, 호주의 몰카법과 아동 성매매 관련 법을 찾아 번역하는 일이 주어졌다. 같은 범죄에 대해 서로 다른 나라의 법률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개인적으로 영어로 된 법문의 어투와 구조에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어서 유익했다. 인턴을 지원할 때 명시되어 있던 업무내용은 아카이빙이었기에 이런 일이 주어지리라 생각지 못했는데, 감사하게도 내 관심사를 고려하여 ‘맞춤형 업무’을 맡겨 주셨다.
▲월레포럼 현장.
상담소에서 일하기 전부터 국제적 인신매매와 노동이주에 관심이 있었기에 필리핀 이주여성들이 우리나라에서 처한 환경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들은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들이 처한 복잡한 경계와 중첩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새로운 관점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더 나은 삶을 위한 이들의 주체성이 ‘피해자다움’ 에 부합하지 않아 생기는 불합리함은, 역시 ‘피해자다움’이라는 편견에 들어맞지 않는 성폭력 피해자가 종종 마주하는 불합리함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판례뒤집기 좌담회 현장.
또 참여한 판례 뒤집기 좌담회는 업무상 위력과 보복행위와 관련하여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사건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릴 때 조차 기사 제목으로만 사건을 대했던 나다. 무슨 말이냐면, 기사 제목을 읽고는 거기까지. 클릭 할 관심 조차 가지지 않았다.너무나 일상적인 불합리함에, 또 공고한 권력의 반대편에 마주 선 피해자의 무력함에 관심을 가져봤자 스스로 화만 돋우고 가슴 답답해 할 것이라는 쓸데없는 걱정이 그 거리감에 대한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그러나 좌담회를 통해, 내가 보였던 그런 무관심이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한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또 한편으로는 나는 관여하지 않으려 했던 그 오랜 시간 동안, 피해자 편에서 부단히 노력해왔던 사람들이 있고, 그 부단한 노력이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었다.
여성주의 강의를 들어본 적도, 책을 읽어본 적도 없고, 젠더인턴 면접에서 “나중에 활동가가 될 생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속으로 ‘활동가? 활동가라는 직업도 다 있어?’ 했던,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가장 가까이에서 여성주의가 어떻게 삶에 녹아나는지, 활동에 밸 수 있는지 보고, 듣고, 느꼈다. 상담소에게 가장 고마운 것 중 하나는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답습하고 있던 불합리한 생각들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성폭력 사건에 있어 사법부와 성폭력 피해자 간의 공감대가 너무나 얕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폭력을 범죄로 보지않고 가볍게 여기는 태도나, 피해자의 정조를 운운하고, 피해자다움의 프레임을 들고 나오는 것은 가해자를 효과적으로 처벌하지도 못하지만, 앞으로의 성폭력을 예방하는데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법대로 해!”라는 말에는 법적 절차를 거치는 것이 가장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해결방법일 것이라는 자신만만함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 법대로 한다는 것이 때에 따라서는 얼마나 편파적일 수 있는지, 울분이 나도록 비합리적일 수 있는지 모른다. 상담소 이전의 나는 무관심하고 무감각했다. 하지만 나의 그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방어적인 구슬에 변화가 생긴 듯 하다. 이전에는 딱딱한 탱탱볼이었다면 지금은 바람 약간 빠진 고무공 정도의 부드러움일까. 아무튼. 성폭력에 대한 사법부의 인식이 바뀌고, 판례가 바뀌고, 사회적 인식이 바뀔 때까지 앞으로 상담소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응원할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