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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젠더폭력 근절을 위한 여성·인권단체 공동 기자회견문
  • 2017-03-10
  • 3066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젠더폭력 근절을 위한 여성·인권단체 공동 기자회견문]

여성폭력 근절 없이 이 땅의 인권과 정의, 미래도 없다!

 

 

오늘 우리는 성별에 근거한 모든 억압과 차별, 착취의 종식을 촉구하고자 여기 모였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 여성인권운동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성차별적 억압과 폭력을 이야기한 수많은 여성들과 함께했다. 국가가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방지법 등 관련 제도와 정책을 마련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실상 한국은 여성에 대한 폭력의 공식적 정의와 국가 기본방침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사회다. 때문에 여성폭력에 대응하는 정책은 피해여성을 성평등 관점이 아닌 보호와 지원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다. 여성들은 성차별적 수사·사법기관으로 인해 신고를 망설인다. 어렵게 고소하더라도 제대로 된 신변보호와 가해자 처벌을 기대할 수 없다. 여성이 전 생애에 걸쳐 경험하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폭력 또한 간과됐다. 여성들은 유형과 대상별로 분절된 현행 여성폭력피해 지원 시스템으로 인해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됐고,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국가 정책은 가정 해체를 막고, 피해자를 선별해 보호하며, 이주민의 체류 자격을 따지는 것이 우선했다. 여성의 생존과 인권 문제는 뒤로 밀려났다.

이에 우리 여성·인권 지원단체는 현장에서 만난 여성들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성별에 근거한 모든 억압과 차별, 착취를 종식시키기 위해 차기 정부가 추진해야 할 국가 정책의 기본방향과 핵심 정책과제를 제안한다.

 

 

‘가정 보호’가 아닌 피해자 인권을 보장하라!

 

2013년 기준 가정폭력 발생률은 45.5%로, 2가구당 1가구 꼴로 가정폭력이 발생했음에도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1.3%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신고 뒤에 아무런 법적 조치를 받지 않은 경우는 58.3%에 달했다. 가정폭력사범 기소율은 2015년 기준 8.5%다. 사실상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정 보호와 유지를 최우선 가치로 삼은 국가 가정폭력 대응정책이 낳은 결과다.

지난 1월 30일,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세 차례 경찰 신고도 했던 한 여성이 아기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7월에는 법원이 가정폭력 가해자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가해자를 돌려보내면서 피해여성이 살해됐다. 가정유지를 우선해 피해자 의사를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범죄자 처벌은 물론, 피해자 신변 보호와 인권 보장이라는 국가의 기본 책무를 피해자에게 전가한 결과다. 국가가 방기한 책임을 왜 여성들이 죽음으로 져야 하는가.

국가는 더 이상 폭력을 방관하지 말고 가정 보호가 아닌 피해자 인권 보장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 정책을 실시하라. 이를 위해 목적조항 개정,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 폐지, 체포우선제도 도입, 피해자 의사 존중 관련 법조항 삭제 등 가정폭력처벌법을 개정하고, 이혼 과정 중인 피해자의 신변보호와 자립지원 제도를 강화하며, 사각지대에 놓인 데이트폭력 피해자 지원체계를 마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넘어 권리를 보장하라!

 

2015년 기준 성폭력 발생건수는 총 31,063건으로, 피해자 성별의 90%(27,959건)가 여성으로 나타났다. 2016년 성폭력 실태조사에서 지난 1년간 신체적 성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여성이 1.5%, 남성은 0.1%이며, 무단 촬영과 스토킹 피해를 경험한 비율은 각각 0.1%, 0.3%로 여성만 해당됐다. 평생 동안 신체적 성폭력을 경험한 비율 또한 여성이 21.3%, 남성이 1.2%로 나타났다. 극명히 성별화된 폭력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법 현실은 성폭력 범죄의 유무죄 판단에서 피해자의 항거가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을 요구하며, 피해자는 ‘정조’ 관념에 바탕을 둔 수사·사법기관의 왜곡된 통념과 편견으로 오히려 피해사실을 의심받고 비난당한다.

지난해 8월, 성폭력 피해 검찰조사 중 무고죄로 기소된 성폭력 피해자 B씨의 무죄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사건 발생 후 2년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B씨는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 권리를 보장받는 대신 무고죄 피의자로 피해사실을 의심받고 추궁 당했다. B씨가 ‘성폭력 피해자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수치스러워하거나 고통 속에 괴로워하는 ‘피해자다운’ 모습이 아니면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무지와 통념을 드러내는 것도 모자라, 그에 어긋나면 피해사실을 허위로 둔갑시키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인가.

국가는 더 이상 피해자를 선별해 ‘보호’하는 것이 아닌, 피해자 권리 보장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 정책을 실시하라. 이를 위해 형법상 ‘강간과 추행의 죄’를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죄’로 변경하고, 형사사법절차에서 피해자 (과거) 성 이력의 증거 채택을 금지하는 조항을 마련하며, 가해자 혹은 검사에 의한 무고와 명예훼손 등 역고소 남발을 방지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고, 무단촬영 범죄 관련 현행법 개정 및 스토킹범죄처벌법을 제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성매매여성을 비범죄화하고 수요를 차단하라!

 

성매매/성산업 착취 구조의 문제는 심각하다. 성매매가 범죄라는 인식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매매업소 집결지는 온존하고, 여성들의 인권상황은 나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지구적 성착취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상화된 성산업 착취 구조는 젠더 불평등 사회에서 취약한 상황에 처한 저연령대 여성들을 유인하고 있으며, 성산업 규모는 영화산업의 5배가 넘을 정도다. 또한 디지털 기술과 SNS의 발달은 성매매/성산업 구조를 더욱 키워나가는 동시에 여성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는 매체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성매매여성들은 사회적 낙인·배제와 함께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성매수자에 의한 성희롱·성폭력과 폭행 및 살해 위협 등의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에 처해 있다. 성매매에 대해선 피해를 입증해야만 ‘피해자’가 되는 이유로, 여성들은 처벌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법적 지원을 멀리하게 된다. 반면 성매수자들은 재범방지교육이나 얼마 되지 않는 낮은 벌금으로 오히려 면죄부를 받고 있다.

지난 2014년 11월, 경남 통영에서 경찰의 성매수자 위장 단속 과정 중 한 20대 여성이 추락 사망한 사건 또한 경찰이 갑작스런 위장 단속을 행함으로써 여성을 극도의 두려움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건이다. 성매매는 성별·계급적 권력관계와 착취구조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며, 그 중심에는 성매매 알선과 수요가 있다. 수요 차단이 아닌 취약한 위치의 여성을 표적으로 한 단속 행태는 폭력과 착취 현장에는 눈감으며 성매매/성산업의 확장에 공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는 성매매여성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고, 성매수자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수요를 차단하는 것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 평등과 인권의 관점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이를 위해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성적 착취임을 분명히 하여 성매매여성을 처벌하지 않는 비범죄화로 성매매처벌법을 개정하고, 성매매 알선 및 매수 행위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강화하며, 국내외 성착취 피해자 인권 보장을 위한 인신매매방지법을 제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다문화가족 중심이 아닌 모든 이주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라!

 

2016년 12월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2,049,441명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46%(932,235명)이며, 결혼이주민 인구는 전체 이주민 인구의 14%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문화가족을 중심으로 한 정부 정책으로 다양한 상황에 놓인 이주여성들의 인권은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

2013년 기준 이주여성노동자의 10.7%가 성폭력을 경험했으나, 성폭력을 이유로 한 사업장 변경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여성들은 사업장 이탈로 미등록 상태가 된다. 또한 예술흥행 비자로 들어오는 여성 중 다수는 성매매/성산업에 유입되면서 체류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경우는 자녀 유무에 따라 체류가 유동적이며, 가정폭력으로 재판이혼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이혼 뒤엔 체류가 허용되지 않는다. 지난해 말 기준 외국인 인구의 10.2%를 차지하는 미등록 체류자 중 결혼이민과 예술흥행, 방문취업 비자에서 여성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다. 더구나 미등록 상태로 체류하는 경우라면 폭력피해를 입어도 신고하기란 쉽지 않다. 정부는 2004년 고용허가제 시행 이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및 추방을 대대적으로 벌이며 공장과 주거시설 급습, 심야 단속 등 반인권적 단속으로 이주민들의 인권을 짓밟고, 이주민들을 신체적 안전과 생명의 위협 속에 몰아넣었다.

국가는 다문화가족 중심이 아닌 모든 이주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 정책을 실시하라. 이를 위해 여성폭력 피해 등 다양한 상황에 놓인 이주여성의 체류권을 보장하고, 이주여성의 여성폭력 피해를 지원하는 이주여성 통합 상담소를 마련하며, 이주여성노동자의 주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복합적 폭력에 대한 통합적 관점의 정책을 실시하라!

 

가정폭력·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2010년 기준 장애여성이 평생 가정폭력 피해를 경험한 비율은 35.4%, 성폭력 피해 경험 비율은 20.4%였다. 2014년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성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여성이 3.0%, 남성은 0.3%로 나타났다. 장애여성은 성차별과 장애차별이 교차하는 복합적 차별을 경험하며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

가정폭력에 노출되는 장애여성은 전 생애적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누군가의 도움 없인 탈출이 어렵다. 장애여성은 공공 서비스와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박탈당했고, 피임과 불임시술을 강요받으며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다. 장애여성 중 유산 경험은 2014년 기준 48.4%이며, 주위의 권유로 임신중절을 하는 경우가 46.6%에 달한다. 성폭력에 노출되는 장애여성 중 70%를 차지하는 지적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60% 가량은 친족이나 지인 등 주변인이다. 그러나 수사사법기관은 지적장애여성 성폭력 사건 가해자에 대해 연이어 무죄 판결을 내리며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과 지적장애여성의 장애특성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었다.

국가는 장애여성이 성별과 장애가 교차하는 가운데 경험하는 복합적 폭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통합적 관점에서 정책을 실시하라. 이를 위해 집단 거주시설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책 마련 및 장애여성 성폭력피해자 지원체계를 강화하고, 장애여성 가정폭력피해자 지원정책을 마련하며, 형법상 ‘낙태죄’ 폐지 및 장애와 질병이 있는 경우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조항을 전면 개정하여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권리를 보장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미디어에 의한 여성폭력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책을 강화하라!

 

2016년 상반기, 지상파와 종편 메인뉴스 모니터링 결과 전체 성폭력 사건 보도 151건 중 2차 피해를 유발한 보도 건수는 절반에 가까운 47.7%(72건)를 차지했다. 여성에 대한 폭력 중에서도 성폭력 사건 보도에 담긴 성차별적 통념과 편견은 일상적으로 유통되며 매우 심각한 수준에 있다. 사건을 흥미 위주로 상세히 묘사하거나 사건과 무관한 자극적인 내용을 보도함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보도,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내용의 인터뷰 보도, 여성이 조심하면 된다는 시각의 보도, 가해자 입장을 대변함으로써 성폭력 피해를 무고로 몰고 가는 보도는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과 몰이해를 재생산하며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는 미디어에 의한 여성폭력 2차 피해를 방지하고, 성차별적 미디어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정책을 실시하라. 이를 위해 지상파 방송사 및 미디어 정책결정 구조에 참여하는 여성 비율을 50%로 할당하고, 성평등 관점에서 미디어 사업자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며, 미디어 분야 종사자와 미디어 이용자에 대한 성평등 관점의 미디어 교육을 실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우리는 여성이 성별, 장애, 이주경험 등을 이유로 권리를 제약받거나 신체적, 정신적 위협에 노출되지 않는 사회를 요구하며, 한 사람의 존재가 그 어떤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를 요구한다. 우리는 차별과 억압에서 자유로울 권리를 열망하는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를 종식시키기 위한 국가 정책의 행보를 만들어낼 것이다. 곧 19대 대선이 다가온다. 우리 유권자들은 성평등 실현을 위한 요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국가는 제대로 된 정책마련으로 현장의 목소리에 분명히 응답하라.

 

 

2017년 3월 7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성매매근절을위한한소리회,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장애여성공감,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전국 67개소),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국 126개소), 전국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전국 29개소),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