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의 단호한 시선]
피해자를 이용한 사이버성폭력,
강제추행죄 적용 가능 적시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 대법원 2018. 2. 8. 선고 2016도 17733 판결에 부쳐
피해자 협박해서 나체 사진 등 전송받는 것도 강제추행
지난 달 8일,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여 나체 사진 등을 찍어서 전송하게 한 경우에도 강제추행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됐다. 해당 판결은 강제추행죄의 해석을 넓혀 그동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사이버성폭력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으므로 매우 환영할 만하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은 2016도17733 판결(이하 ‘이 사건 판결’)에서 ‘강제추행죄는 사람의 성적 자유 내지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죄로서 정범 자신이 직접 범죄를 실행하여야 성립하는 자수범(自手犯)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처벌되지 아니하는 타인을 도구로 삼아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는 간접정범의 형태로도 범할 수 있고, 여기서 강제추행에 관한 간접정범의 의사를 실현하는 도구로서의 타인에는 피해자도 포함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피해자를 도구로 삼아 피해자의 신체를 이용하여 추행행위를 한 경우에도 강제추행죄의 간접정범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가해자가 직접 추행행위를 하지는 않았지만 피해자를 도구로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추행행위를 실현하였으므로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본 것이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사이버성폭력
그동안 피해자가 협박에 의해 스스로 나체 사진 등을 찍어서 가해자에게 전송한 경우에는 가해자를 성폭력으로 처벌할 수 없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3조(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는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하여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경우에 성립하므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나체 사진 등을 전송받는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았다. 동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도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경우에만 성립하기 때문에 설령 협박에 의한 것이라도 피해자가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경우는 해당하지 않았다. 협박 또는 강요죄로 신고할 수는 있지만, 수사재판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 어렵고 2차 피해도 심히 우려되는 현실이었다.
직접 행위접촉 없었어도 피해자 이용해서 추행행위 실현했나 평가해야
이 사건 판결은 위와 같은 경우에도 ‘강제추행죄의 범죄를 실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고, 피고인이 직접 위와 같은 행위들을 하지 않았다거나 피해자들의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원심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이용하여 강제추행의 범죄를 실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가려보지 아니한 채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접촉이 있는 경우와 동등한 정도로 성적 수치심 내지 혐오감을 주거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만을 들어’ 무죄로 판단한 것은 강제추행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 오해라며 파기 환송을 선고했다. 성폭력을 판단할 때 단순히 신체접촉을 중심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이용하여 성적 자유 내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였는지 여부를 평가해야 한다고 명확히 밝힌 것이다.
이로써 수많은 사이버성폭력 가해자에게 강제추행죄를 적용할 수 있는 판례가 생겼다. 강제추행죄의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인 강요죄의 법정형보다 훨씬 더 높다. 또한 피해자들은 수사재판과정에서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판례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수사재판과정에서 적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세상은 바뀐다 우리가 바꾼다
과거의 판례는 가해자가 최협의설에 따른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고 추행을 하는 경우에만 강제추행을 인정했다. 그러나 최근의 판례는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고 하여 강제추행을 넓게 인정하여 왔다(대법원 2002. 4. 26. 선고 2001도2417 판결 등). 이 사건 판결에 따르면 직접적인 행위나 접촉이 없었더라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이용하여 추행행위를 실현하였으면 강제추행으로 인정해야 한다. 남성/성기중심적인 성폭력 개념에 저항하고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죄임을 지속적으로 알려온 성폭력 피해자들의 말하기와 반성폭력운동이 이뤄낸 변화다. 우리는 앞으로도 말하고 또 말하며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다.
2018. 3. 19.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