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군대는 성소수자 여성 군인의 ‘미투’에 응답하라.
-성차별과 성소수자혐오가 성폭력의 원인이다.
지난 3월 26일, 성소수자 여성 장교에 대한 두 해군 간부의 성폭력이 보도됐다. 피해자는 직속상관과 지휘관으로부터 여러 차례 강간과 강제추행 피해를 당하고 이로 인해 임신과 임신중절을 하게 됐다. 이 성폭력범죄는 7년 뒤 비로소 수사가 시작되어 가해자들이 구속 기소되고, 피해자 김 대위의 언론 인터뷰로 구체적으로 알려졌다.
군대의 성폭력 조장과 은폐는 고질적 문제다. 김 대위의 목소리가 ‘군 첫 미투’라고 이야기될 만큼,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성차별과 동성애혐오가 만연한 군대 내 성폭력을 드러내는 데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김 대위는 자신의 성소수자 정체성이 다수에게 알려질 수 있는 부담을 감수하고, 더 이상 숨죽이거나 고립되는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며 용기를 내어 성폭력피해를 알렸다.
성소수자 군인은 성폭력에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 성폭력을 알리기도, 그 이후 제대로 사건을 해결하기도 어렵다. 이 사건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약점 삼아 성폭력을 저질렀다. 또한 많은 성소수자 피해자가 가해자의 아웃팅 협박, 그리고 동성애자인 피해자가 성폭력을 유발했으리라는 왜곡된 통념에서 기인한 2차 피해를 경험한다. 심지어는, 성폭력피해를 호소한 동성애자 군인이 군형법상 추행죄로 기소되어 처벌의 위험에 처하는, 믿기 힘든 인권침해마저 발생한다.
그뿐 아니다. 1년 전, 육군의 대대적인 동성애자 군인 색출은 그 자체로 성폭력이다. 수사관들은 부대훈령을 어기고 섹스 경험, 포르노 취향 등을 캐묻고 상세한 답변을 강요했다. 동성애자 군인의 성폭력피해를 군형법상 ‘추행’으로 수사한 것처럼, 그들이 동성애자 군인에게 가한 폭언과 언어적 성폭력도 군형법상 추행죄 ‘수사과정’이 됐다. 알려진 피해자는 군형법상 추행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A대위를 포함해 22명에 이르며, 불법적 수사·기소 및 그 과정에서의 인권침해에 국내외의 질타가 쏟아졌지만 국방부는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성폭력은 어느 누구를 향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다. 미투운동은 성폭력 판단에서 피해자의 행위와 정체성이 아닌, 가해자의 ‘성적 침해’ 행위에 집중해 사건을 규명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김 대위의 ‘미투’는 더 이상 성폭력피해자를 ‘조직 부적응자’로 낙인찍어 퇴출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여성과 성소수자가 부당한 폭력에 대항할 힘을 불어넣는 선례가 되어야 한다. 재판과정과 앞으로의 군 복무에서 김 대위에 대한 불이익과 2차 피해, 성차별과 성소수자혐오는 없어야 한다.
군대가 근본부터 바뀌어야 한다. 군형법상 추행죄가 성적 군기를 지킨다는 낡은 말을 되풀이해봤자, 성폭력관련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주범이 군대라는 사실은 감춰지지 않는다. 근거 없는, 현실에 맞지 않는 ‘동성애가 흐트러뜨리는 군 기강’ 타령을 멈추고, 이제라도 군대 내 성차별과 성소수자혐오를 철폐하는 노력을 시작할 때다. 여성과 성소수자 군인이 군대에서 경험하는 성폭력과 혐오폭력, 인권침해 실태를 파악하고 여성과 성소수자가 동등하고 안전할 수 있는 군대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바로 지금 군대에 요구되는 ‘위드유’다.
2018년 3월 31일
군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사)한국성폭력상담소/ 6개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