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04-10
- 5259
의 견 서
사 건 2017헌바127 형법 제269조제1항, 제270조제1항 헌법소원
청 구 인 ○ ○ ○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는 위 사건에 관하여 사단법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아래와 같이 의견을 보냅니다.
아 래
가. 의견 취지
「형법 제269조제1항 및 제270조제1항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라는 결정을 구합니다.
나. 의견 이유
1.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임신중단 합법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형법 제269조 제1항 및 제270조 제1항(이하 ‘낙태죄’)은 여성의 임신중단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합니다. 이에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정하여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임신중단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 제5호에 따르면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는 임신중단 허용 사유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성폭력 피해자가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따라 합법적으로 임신중단을 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아래는 2017년 9월 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진행되었던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에서 임신중단에 관한 성폭력 피해자의 경험을 재구성하여 발언하였던 내용 전문입니다.
2012년 12월 18일, 나는 성폭력에 의한 임신으로 중절수술을 받았습니다.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에게 모텔로 끌려가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부모님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생리가 나오지 않아 산부인과에 갔더니 임신 4주라고 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인공임신중단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낙태죄’라는 법이 있어, 수술을 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은 모자보건법 상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사유지만, 먼저 내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폭력상담소에서 발급받은 상담사실확인서를 제출했지만, 병원에서는 가해자를 고소하고 고소사실확인서를 받아와야 한다며 수술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병원에서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는 조건으로 불법 수술을 해주겠다며 터무니없는 수술비용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돈도 없었고, 나에게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인공임신중단수술을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액을 주면서 불법 수술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어렵게 마음먹고 가해자를 고소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가해자 측은 합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공유산을 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고소한 것 아니냐’며 고소사실확인서를 빨리 발급해주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조급해지고 너무 불안했습니다. 결국 경찰이 기소의견을 송치하고 나서야 인공임신중단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임신주수가 14주를 지나있었고 수술의 위험성이나 비용도 임신 초기에 비해 훨씬 커져 있었습니다.
수술을 받기 직전에는 “성폭력 피해가 아님이 밝혀질 경우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작성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지, 가해자가 무죄 판결을 받으면 내가 낙태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인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당장 내 몸이 인질로 잡혀 있는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서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91년에 개소한 이래로 약 8만여 건의 상담을 진행해 온 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으로, 위와 같은 사례를 수도 없이 상담해 왔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임신중단은 법적으로 보장되는 권리임에도 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제때에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지 못해 곤란에 처하고 있습니다. 낙태죄의 법적 처벌을 우려하는 병원들이 시술을 거부하거나 성폭력 피해로 인한 임신임을 입증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불법 수술을 제안하며 거액의 수술비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원에 따라 성폭력 피해를 인정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도 문제입니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소사실확인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병원부터, 경찰이 해당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해야만 인정해주겠다는 병원, 심지어는 확정된 유죄 판결문을 가져올 것을 요구하는 병원도 있습니다. 이는 수사재판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임신은 진행되며, 임신주수가 길어질수록 피해자는 크나큰 신체적‧심리적 부담을 지게 된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성폭력 유죄 판결이 확정되려면 최소 1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데 그때는 이미 피해자가 출산을 마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점,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하여 가해자가 증거 불충분 등 사유로 불기소되거나 무죄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수사재판 결과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기준인지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는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임신 24주일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바, 병원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신속하게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로 하여금 법적 임신중단 허용 시기를 놓치게끔 만드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기 위해 가해자를 고소해야 한다는 사실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엄청난 부담을 줍니다. 성폭력은 명확한 물적 증거나 목격자가 남기 어려워 그 범행을 입증하기 힘들고,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 경험을 반복적으로 진술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불편하고 괴로운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피해자는 가족 및 주변인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거나 2차 피해를 우려하는 등 다양한 이유로 고소를 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왜곡된 성폭력 통념이 남아 있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낙인찍는 시선도 만만치 않습니다. 더불어 최근에는 가해자가 범행을 부인하기 위하여 피해자를 무고죄로 역고소(맞고소)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만일 임신중단 사실이 알려지면 가해자는 그것이 피해자가 무고죄를 저지른 동기라고 주장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위와 같은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서 고소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장 본인의 몸속에서 임신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고소장을 제출해야 하는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한편, 성폭력 피해자를 병원에 연계하는 지원기관은 상담사실확인서, 의견서 등을 통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보증하도록 요구받습니다. 피해자의 관점을 기반으로 성폭력 피해자의 치유‧회복과 권리 실현을 도와야 하는 지원기관에게 마치 수사재판기관과 같은 객관성을 요구하며 성폭력 피해 사실을 심사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지원기관의 상담지원자, 실무자로 하여금 심리적‧법적 부담을 안게 만들고, 지원자가 아닌 판단자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어 결과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적합한 상담 및 지원을 저해합니다.
병원이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엄격하게 해석하고 법적 절차에 의한 성폭력 피해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임신중단이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병원 측은 모자보건법 제14조에 해당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 형사 처분의 위험을 무릅쓰고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로 인해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는 매우 제한되고 있으며,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하려는 과정에서 병원, 수사재판기관 등에 의해 상당한 2차 피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고서는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법적으로는 성폭력 피해자의 임신중단 권리가 인정되지만 사실상 그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낀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2012년도에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성폭력 피해로 인한 인공임신중절수술 지원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해당 연구는 “근본적 개선방안으로서의 인공유산 합법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아래와 같은 연구 결과를 남겼습니다. 이 사건 결정에 꼭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본 연구에서 살펴 본 성폭력 피해로 인한 인공유산 지원 실태의 문제점은 크게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피해 여성의 권리 차원에서의 시각이 부재하고, 둘째, 인공유산 허용한계에 대한 판단을 기존 형법상의 성폭력에 대해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하여 피해로 인한 인공유산 지원이 어려우며, 셋째, 성폭력 피해 판단의 책임이 지원기관으로 전가되어 피해자 지원기관이 수사기관의 역할을 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넷째,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인공유산 등 의료지원 과정에서의 심리적‧사회적 2차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폭력으로 인해 임신한 피해 여성들의 인공유산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임에도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현재 모자보건법상의 허용조항이 전혀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현행 낙태죄는 성폭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한 협박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또한 의료진이 져야하는 법적 부담을 이유로 피해자에게 고비용의 수술비를 부담, 의료기록 누락 및 조작, 목숨을 담보한 불법시술 등으로 피해자의 안전 및 건강권을 침해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성폭력, 임신, 인공유산의 어려움, 출산과 양육 등으로 이어지는 연속성은 온전히 성폭력 피해자의 몫으로 남아있는 현실이다. 이 문제는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인공유산이 불허되고 있는 배경 속에서는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재생산권, 선택권, 안전한 의료서비스 접근권 등 역시 제대로 보장될 수 없다. 또한 예외적 사유안에서의 지원 기준을 만들고 제도화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에 해당하지 않는 유형의 피해자 및 여성 일반의 권리를 제약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 인공유산의 합법화 없이는 성폭력 피해자의 인공유산과 관련된 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낙태죄를 비범죄화하고 인공유산이 합법화되어야만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인공유산을 합법화하는 경우 해외의 입법례와 마찬가지로 임신 초기(주로 12주 이내) 인공유산에 대해서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피해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에도 별도의 성폭력 피해의 입증책임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고 비교적 쉽게 인공유산을 통한 신체적 통합성의 회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와 함께 고려되어야 할 점은 건강권과 재생산권에 기반한 안전한 인공유산을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실현되기 위해 임신초기 인공유산에 대한 적극적인 국민 홍보일 것이다. 또한 이와 함께 임신초기의 대처의 일환으로 사후피임약에 대한 홍보도 가능하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피해 직후 피해자를 위한 의료지원 하에서 사후피임약을 복용할 수 있다는 점이 적극적으로 홍보될 필요가 있다.
인공유산의 합법화는 사후피임약을 복용한 후에도 피임에 실패하거나 준강간 피해와 같이 피해사실 자체를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한 경우, 또는 피해 직후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의 피해회복을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경우에는 피해자들이 성폭력 피해여부를 입증하는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초기에 성폭력 피해회복의 일환으로 인공유산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것이다.
(밑줄은 인용자 강조)
2. 낙태죄는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합니다.
‘낙태죄’는 여성의 임신중단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합니다. 이는 여성의 행복추구권과 재생산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입니다. 임신에서 출산까지 이르는 과정은 여성에게 신체적‧정신적‧사회적‧경제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여성은 삶의 주체로서 출산 또는 임신중단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피임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뤄지고 있지 않아 피임실천율이 낮고 잘못된 피임법으로 인해 피임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현실입니다.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는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낙태죄는 여성의 임신중단을 무조건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이 스스로 삶을 결정하고 통제할 권리를 빼앗고, 여성은 임신과 그에 뒤따르는 변화를 무조건 수용해야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라고 규정하는 일입니다.
완벽한 피임법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낙태죄는 사실상 여성의 성행위 자체를 억압하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여성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될 경우 모든 책임과 사회적 비난을 떠안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성은 성적 욕망을 느끼더라도 적극적으로 성행위에 임하기 어렵고, 피임을 철저히 한 경우에도 일상적인 임신 공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여성의 성적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뿐 아니라 여성의 정신 건강을 해치며, ‘여성은 성적 욕망이 약하다’, ‘여성은 성행위에 소극적이다’ 등의 성차별적인 성규범과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시킵니다.
또한 낙태죄는 여성에게 원치 않는 출산을 강요합니다. 이는 약 10개월의 임신 기간 동안 여성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자궁 확장, 장기 이동, 체중 증가, 호르몬 분비 등의 변화는 물론 그에 따르는 지속적인 통증과 불편함까지 감수하라는 요구와 같습니다. 출산 또한 좌우 골반이 벌어지는 등 엄청난 신체적 변화를 수반하며, 출산 시 진통이 끔찍한 고통이라는 사실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임신‧출산으로 인해 산모가 사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중대한 신체적 변화와 고통, 생명‧건강의 위험이 따르는 문제에 대하여 여성은 마땅히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원치 않는 출산을 강요하는 낙태죄는 여성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여성 노동자의 40%가 1년 미만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을 정도로 여성의 고용안정성이 낮고, 출산‧양육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이 고질적인 사회문제입니다. 특히 임신중단을 고려하는 여성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있거나 양육을 도와줄 수 있는 인적 자원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여성에게 원치 않는 출산‧양육을 강요하는 것은 그로 인한 고용 및 근로 상의 불이익, 기회 박탈, 경제적 손해 등도 감수하라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이는 여성의 생계권을 위태롭게 합니다.
위와 같은 현실에서 낙태죄는 형벌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예방 기능 및 억제 효과가 없습니다. 해외의 사례를 보더라도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법은 결코 임신중단을 감소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성을 위험하고 신뢰할 수 없는 불법 임신중단으로 몰아넣고, 심한 경우에는 사망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예를 들면 루마니아는 1966년 낙태금지법을 시행하였다가 불과 20여년 만에 모성사망비가 7배 이상 증가한 바 있습니다. 1989년 낙태금지법이 철폐되자 루마니아의 모성사망비는 이전의 절반으로 감소하였습니다.
이처럼 낙태죄는 여성의 생명권을 위협합니다. 여성을 안전하지 않은 불법 임신중단으로 몰아넣기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도 우리나라 모성사망비(출생아 10만명 당 모성 사망의 수)는 8.4명으로 OECD 평균인 6.8명보다 높습니다. 2012년 11월에는 임신한 고등학생이 낙태 수술을 받던 중 사망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생명을 잃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낙태죄는 여성의 건강권을 위협합니다. 첫째로, 상술하였듯이 낙태죄는 여성에게 임신 공포를 심어주고 스스로 삶을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을 저해하여 정신 건강을 해칩니다. 둘째로, 낙태죄는 여성이 임신중단을 하기 위한 안전하고 전문성 있는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고, 수술로 인한 감염, 후유증, 의료사고 등에 대응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불법 임신중단 수술은 시술 병원을 찾기 어렵고 비용도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특히 저연령층, 저소득층의 여성들이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해외에는 미소프로스톨, 미페프리스톤과 같은 약물을 이용하여 비교적 합리적인 비용으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990년 프랑스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임신중단약 미프진(Mifegyne)은 현재 66개국에서 승인 후 판매 중이며, 2005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필수의약품 목록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수술에 의한 임신중단 방법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약물에 의한 임신중단 방법은 2017년 10월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미프진 도입’을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겨 이슈화 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여성이 적절한 의료 서비스 및 관련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저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임신중단약을 판매하는 시장은 매우 음성적으로 형성되고 있으며, 그 중에는 가짜 약을 판매하는 사기꾼도 많습니다. 그러나 임신중단이 불법인 현실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판매처가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므로, 당장 임신중단이 필요한 여성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약물을 구매‧복용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낙태죄는 여성을 부당한 폭력과 협박에 노출시킵니다. 형법 제269조는 임신중단을 한 여성은 처벌하는 반면, 그에 이르게 한 남성은 처벌하지 않습니다. 상담 사례를 살펴보면, 위와 같은 사실을 악용하는 (남성) 가해자에 의해 데이트폭력 또는 가정폭력, 협박 등에 시달리는 (여성) 피해자가 상당히 많습니다. 임신중단 당시에는 중절수술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권유하였거나 소극적으로 동의하였던 남성이 연인 관계가 틀어지거나 이혼을 요구 받은 이후에 돌변하여 여성에게만 임신중단에 대한 책임을 씌우고 ‘말을 듣지 않으면 낙태죄로 형사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여성은 성폭력, 정서적 학대, 경제적 착취 등 다방면의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3.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낙태죄로 인한 여성의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할 수 없습니다.
앞서 서술한 의견 이유 1.에서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에 해당하는 성폭력 피해자조차 임신중단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보더라도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고 예외적으로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것은 그 한계가 명확합니다. 따라서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낙태죄 폐지의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그 자체로도 문제가 많은 법입니다. 우선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로 한정하고 있어 성폭력에 의한 임신을 매우 협소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모자보건법 제14조에 해당하지 않아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면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에 의하여 임신한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형법 제302조), 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간음(형법 제303조)은 형법상 ‘강간과 추행의 죄’로 규정되어 있는 성폭력 범죄입니다. 이로 인해 임신한 피해자는 마땅히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따르면 이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죄형법정주의의 한계 때문에 현행법 상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 성폭력 피해도 많습니다. 가령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 또는 협박’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가해자와의 관계, 권력의 차이 등 때문에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행위를 하게 된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혹은 합의 하에 성행위를 하였으나 가해자가 피해자의 동의 없이 피임기구를 제거하거나 훼손하는 스텔싱(Stealthing) 피해로 인해 임신된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현행법상으로는 이러한 경우에 성폭력으로 인정받기 어렵지만 많은 여성들은 이를 성폭력으로 인식하고 피해를 호소합니다. 지난 2월 제네바에서 열린 UN CEDAW(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강간죄를 규정한 형법 제297조에서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기준 대신 ‘피해자의 자발적 동의 없이’라는 기준을 넣어 이를 우선시하도록 수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법상으로는 위와 같은 경우에도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없습니다.
또한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배우자(사실혼 포함)의 동의를 받아야만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임신한 여성을 기혼 여성으로만 전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본인의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에 해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는 비혼 여성의 임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혼 여성의 임신만을 합법적․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순결 이데올로기’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와 연세대학교에서 발표한 “2011년도 전국 인공임신중절 변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임기 여성의 인공임신중절 사유’로 응답자의 26.4%가 ‘미혼’이라고 응답하였고, ‘원치 않는 임신’이라고 응답한 50.7%의 응답자 중 70.1%가 비혼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배우자의 동의를 요건으로 함으로써 법조문상 비혼 여성을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수술의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의 요건으로 배우자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매우 성차별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본인과 배우자의 의사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신은 본인의 신체에 막중한 변화와 부담을 주는 일이므로 임신중단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본인의 의사를 우선시하고 있지 않으며, 법의 주체 또한 ‘임신한 여성’이 아닌 ‘의사’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에서 여성은 마치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야만 의사에게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는 피동적인 존재처럼 규정되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의 신체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독립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법에 따르면 여성은 배우자가 임신중단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원치 않는 출산을 강요당하게 됩니다. 사실상 여성의 삶을 (남성) 배우자의 의사에 종속시키는 일이며,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성차별적 인식을 강화하는 일입니다.
한편,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우생학적’이라는 전근대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점, 장애인 또는 감염인의 출생 및 재생산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는 점, 여성이 임신중단을 고려하는 가장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인 사회경제적 사유를 배제하고 있는 점 등의 이유로 많은 지적과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장애 여성, 전염성 질환이 있는 여성 등은 임신 중단을 원치 않는 경우에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강요받는 반면, 사회경제적 사유로 임신중단을 할 수밖에 없는 여성은 합법적인 임신중단이 불가능하여 안전하지 않은 고비용의 불법 수술로 내몰리게 됩니다.
게다가 모자보건법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임신중단을 하는 경우에도 인공임신중절수술에 관한 의사의 기술 및 전문성을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임신중단이 불법이다 보니, 산부인과 커리큘럼이나 임상 실습, 수련과정에서도 인공임신중절시술을 교육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수술의 경우에는 전문 병원이나 임상 경험이 많은 의사를 고르기 마련이지만,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시술을 해주는 병원이 있다면 어디든 따지지 않고 찾아가야 합니다.
또한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인공임신중절수술만을 합법적인 임신중단 방법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해외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약물에 의한 임신중단을 상용화하고 있습니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유일한 임신중단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중단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빼앗고, 여성으로 하여금 불필요하게 (훨씬 더 비싸고 위험한) 외과적 수술을 받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위와 같이 모자보건법 제14조는 그 자체에 내재된 문제점과 한계점도 명확합니다. 따라서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낙태죄로 인한 여성의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할 수 없으며,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낙태죄를 폐지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의견 취지와 같이 「형법 제269조제1항 및 제270조제1항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라는 결정을 구합니다.
헌법재판소 귀중
참 고 자 료
2. 2017. 09. 29. [기자회견문] ‘낙태죄 폐지’를 위한 연대와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전문 보기 클릭)
3. 2017. 11. 09. [기자회견문]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 낙태죄를 폐지하라! (전문 보기 클릭)
4. 2018. 02. 14. [언론기고_페미니스트저널일다] ‘인권이 아닌 인구’에 따라 임신중단 담론이 바뀌다 (전문 보기 클릭)
5. 2018. 02. 26. [언론기고_페미니스트저널일다] ‘저출산 문제’ 해결하려면 ‘낙태죄’가 필요하다고? (전문 보기 클릭)
6. 2018. 3. 12. [언론기고_페미니스트저널일다] ‘낙태죄’ 폐지가 끝이 아니야…패러다임을 바꾸자 (전문 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