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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단호한 시선] 2018 지방선거, 성평등을 찾아라
  • 20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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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월 단호한 시선]

 

2018 지방선거, 성평등을 찾아라

#VoteForFeminism #나는_페미니즘에_투표한다

 

다가오는 613, 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이하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올해 수많은 여성들이 #미투 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성폭력을 고발했다. 거리로 나선 여성들은 달라질 세상은 우리가 만든다’, ‘성폭력 정치인 안 뽑는다등의 구호를 외치며 남성중심적 사회구조와 여성혐오 문화를 규탄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성평등 정책 수립과 여성 대표성 확대가 중요하게 요구되었던 지방선거지만, 선거 운동이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매우 실망스럽다.

 

우선 여성 후보 수가 너무 적다. 광역단체장 후보 71명 가운데 여성 후보는 6(8.5%)에 불과하다. 기초단체장 후보 756명 가운데 여성 후보는 35(4.6%)뿐이다. 지방선거와 함께 열리는 12개 지역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국회의원 후보 46명 가운데 여성 후보는 고작 3(7%)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여성 광역단체장 후보 또는 여성 국회의원 후보를 단 한 명도 공천하지 않았다.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정치 구조를 실감할 수 있는 현실이다. 50-60대 기득권 남성이 독점하고 있는 정치가 나이, 성별, 계급, 학력, 장애 여부, 성적 지향, 성정체성 등에 따라 다양한 시민들을 대표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공직선거법 제47조는 지방선거에 국회의원 지역구마다 1명 이상의 여성 후보를 의무적으로 공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법상으로는 공천만 강제되고 등록은 강제되지 않는다. 이에 형식적으로 여성 후보를 공천한 뒤 공천 받은 여성 후보가 등록을 포기하게 만드는 등 여성할당제를 우회하는 수법이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다. 부부끼리 각각 비례대표 후보 3, 4순위로 등록하고, 3순위인 아내가 당선되면 바로 의원직을 사퇴하여 4순위인 남편에게 승계하도록 합의한 악용 사례도 밝혀졌다. 그동안 정치 영역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들이 동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발판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성평등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여성할당제의 취지에 완전히 반하는 일이다.

 

한편, 성평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여성 후보에게는 몰상식한 공격이 쏟아졌다. 이미 경선/공천 단계에서부터 여성 후보에 대한 공격은 끊이지 않았다. 성차별주의자들은 지속적인 온라인 괴롭힘으로 '메갈이라서 안 된다', '페미질 하지 마라' 등 여성 후보를 비방했고, 위키백과에서 여성 후보의 경력을 삭제, 왜곡함으로써 여성 후보는 정치적 능력이나 경쟁력이 없다는 인식을 조장했다. 심지어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밝힌 여성 후보의 벽보와 현수막을 수십 회 훼손하기도 했다. 선거 벽보 훼손 및 철거는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범죄 행위로, 공직선거법 제240조에 따라 범인은 최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단순히 벽보를 떼어 버리는 수준을 넘어서 벽보 속 여성 후보의 얼굴을 칼로 찢거나 담뱃불로 지지는 등 심히 폭력적이고 악의적인 훼손도 이어졌다. 여성 후보의 신변을 위협하고, 성평등을 추구하는 모든 여성에게 두려움을 심어 정치 영역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심각한 여성혐오 범죄이다.

 

더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일부 정당과 후보가 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인 선동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은 혐오 선동 세력이 보낸 질의서에 '낙태 반대', '동성애 반대'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정의당은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고, 녹색당은 직접 찾아가서 문제제기하는 답변을 제출하며 항의집회를 벌였다.)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는 '아름다운 여성도 매일 가꿔야 하듯이 도시도 항상 다듬고 옆집과 비교해야 한다', '세월호처럼 죽음의 굿판을 벌이고 있는 자들은 물러가라' 등 무분별한 발언을 하며 성차별주의자를 비롯한 혐오 선동 세력의 표심을 모으고 있다. 장대범 전라남도 광양시 가선거구 시의원 후보는 공보물에 '동성애 치유 및 치료센터 설립 지원'을 공약으로 기재하여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낙인찍고 사회적 편견을 부추기는 혐오 선동에 앞장섰다. 정의당은 장대범 후보의 모든 직무를 정지하고 후보 사퇴 명령을 내렸으나, 공직선거법상 중앙당은 이미 등록된 후보를 사퇴시킬 수 있는 법률상의 권한이 없다.

 

반면 지방선거에서 성평등 정책에 대한 논의는 거의 전무하다. 성별 고용격차 해소나 성평등 문화 확산에 관한 정책은 물론이고, 지난 몇 년 동안 여성들이 문제제기해 온 여성폭력 근절 및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정책조차 사실상 공백이다. 기껏해야 저출산, 보육, ·가정 양립 등에 관한 정책이 명목상 여성정책으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여성정책을 출산, 양육, 가정과 같은 영역에만 한정하는 것은 가부장적 성역할을 고착하고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대다수 후보가 성평등 정책을 핵심 의제로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주최하는 TV 토론회조차 성평등을 토론 주제로 다루지 않는다. 후보들이 혐오 선동 세력의 표심을 잃을까봐 일부러 언급을 피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마저 든다.

 

정치가 혐오와 결탁하거나 혐오를 묵인할 때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지난 만행을 살펴보면 명백하다. 성차별적 사회 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양성평등을 남녀 간 기계적 평등으로 해석한 경상남도는 양성평등 행사를 여성단체에게만 맡길 수 없다며 관련 예산을 절반으로 삭감했다. ‘성평등은 성소수자 옹호하고 양성평등은 성소수자 배제한다성평등 NO, 양성평등 YES’를 외치는 혐오 선동 세력의 주장을 받아들인 여러 지역은 성별 이분법을 깨고 성에 대한 포괄적인 평등을 함의하고자 도입된 성평등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양성평등 기본 조례를 만들었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인권조례 조항이 동성애를 조장하고 일부일처제 질서를 파괴한다며 전국 각 지역마다 인권조례 폐지 또는 개악에 나섰다.

 

오늘날 한국에서 대의민주주의는 실패했다. 주권을 가진 모든 국민을 대표하여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인권을 수호해야 하는 정치는 특정 집단만의 파이 나누기로 변질됐다. 특정 연령성별계층에 해당하는 집단의 입장은 과도하게 대변되지만, 그 밖의 국민들의 입장은 비현실적인 상상으로 얼버무려지거나 손쉽게 배제되고 있다. 애초부터 후보들의 변별성이 떨어지므로 선거를 하더라도 마땅히 찍을 후보가 없다.

 

작년 봄,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성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 나는 페미니즘에 투표한다고 선언했다. 참여자들은 성평등을 향한 열망과 확신을 담아, 페미니즘이 만들 세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페미니즘은 가해자를 처벌하고 폭력 피해자 지원 시스템을 강화하는세상을 만들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다양한 욕구를 정책에 반영하는세상을 만들 것이다. 페미니즘은 인권 교육, 성인지 교육을 전 연령에 확대하여 실시하는세상을 만들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자아이들이 모든 종류의 여성 롤모델을 볼 수 있는세상을 만들 것이다. 페미니즘은 약자에게 목소리를 주는, 민주적인세상을 만들 것이다. …….

 

우리는 차악이 아닌 최선에 투표해야 한다. 성평등에 찍은 한 표 한 표를 선언적으로 남겨야 한다. 투표 이후에도 당선자와 정당에 끊임없이 성평등 정책을 요구하고 시행 여부를 감시해야 한다. 2018613, 다시금 선언하자. #나는_페미니즘에_투표한다


2018. 6. 11.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