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9일 진행되었던,
<성폭력 가해자에 의한 대구 명예훼손재판 분석토론회> 발제자료 중 일부,
박선영교수의 [성폭력과 명예훼손-대구여성의전화사건을 중심으로] 입니다.
----------------------------------------------------------------------------------------------------------
성폭력과 명예훼손 - 대구 여성의 전화사건을 중심으로 -
박선영(가톨릭대학교 법학과 교수)
I. 序
1. 憲法과 女性
현행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성별에 따른 불평등이 잔존해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현행 헌법에 위 조항 외에도 여성의 근로 보호(제32조 제4항), 여성의 복지와 권익 보호(제34조 제3항), 혼인과 양성평등(제36조) 등 여성에 관한 4개의 조항이 더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대단히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헌법에 여성에 관한 조항이 네 개나 존재한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여성에 대한 차별과 권익 침해가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이며, 그 권익의 실현이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징표하고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제헌헌법에서부터 지금까지 비록 형식적·외형적이기는 하나 여성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조항을 처음부터 도입하였고, 그 결과 50여 년에 지나지 않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되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儒敎文化와 家父長的 傳統 속에서 힘겨운 고뇌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性과 관련된 제반 법문화가 더욱 그러하다.
2. 새로운 문제의 대두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성개방 풍조가 확산되면서 날이 갈수록 여성을 性의 도구로 사용하고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직장이나 학교 등 특별권력관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성범죄는 그 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으나,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의 性에 관한 談論이 공개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지난 1993년 소위 서울대 禹조교사건을 계기로 성희롱(sexual harassment) 등 여성의 성을 매개로 한 법적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등 성범죄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일련의 법률이 제정되었고, 특히 여성인 청소년의 보호와 관련된 입법과 정책에 있어서는 괄목할 만한 진전을 보였는데, 그런 반면 최근에는 관공서는 물론이고 직장이나 학교, 또는 단체 등에서 성희롱이나 성차별, 강제추행 또는 강간 등(이하 '성폭력'이라 통칭함)을 당했다고 폭로한 여성이나 그 관련자들을 상대로 가해자 또는 가해자로 지목된 자(이하 '성폭력가해자'라 통칭함)가 逆으로 명예훼손소송(本稿에서 명예훼손소송이라 함은 민사상의 손해배상청구와 형사고소를 모두 포함한다)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과연 이와 같은 소송이 정당한 것인가, 만일 부당하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며, 그에 관한 法理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話頭로 대두하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도지사의 성추행 사실을 공개한 피해자와 그를 도왔던 시민단체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고, 방송사 노조간부의 성폭력 사실을 공개했던 피해자와 사회단체 및 그 사실을 보도했던 언론사 기자에 대해 명예훼손소송이 제기되었으며, 부녀회장에 대한 里長의 성추행 사건에서도 피해자가 무고죄로 고소당했고, 대학교수가 조교를 강간한 사건과 또다른 대학교수의 제자 성희롱 사건에서도 사회단체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되었으며, 대학생이 동료 학생을 강간한 사건에서 그 사실을 대자보로 공개한 선배와 여학생회를 역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사건 등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대체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公論化시킨 피해자와 관련자, 시민단체 또는 언론사나 기자 등을 상대로 가해자가 명예훼손이라는 무기로 법적 대응을 시도하거나 가해자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本稿에서는 성폭력으로 촉발된 명예훼손 소송사건 가운데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대구지역의 두 대학 교수가 각각 제자와 조교를 성폭력한 사건(이하 대구사건이라 총칭함)과 이를 공론화시킴으로써 촉발된 명예훼손 소송에 대하여 이들 명예훼손소송이 지니는 문제점을 명예훼손의 위법성조각사유의 관점에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II. 사건의 개요
1. 제자 성추행사건(대구 제자사건)
대구 경북대 L모교수가 독문과 여학생에게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하자 시민단체인 대구여성의 전화는 2000. 8. 28. 인터넷홈페이지에 '2000년 7월 L교수가 같은 학과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L교수는 같은 학과 여학생 A에게 지속적으로 전화와 이메일 등으로 성희롱을 일삼았으며, 여름방학 중 과외를 해 주겠다고 자신의 연구실로 불러 강제로 껴안고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하고 키스를 하는 등 성추행을 하여 놀라 비명을 지르며 연구실을 나오는 피해자를 위협하였다. L교수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이 사실을 전면 부인하다가 일부의 사실만을 인정하며 A양이 자신을 유혹하여 합의가 이뤄진 애정행각이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는 내용을 게재하였다. 동일한 내용이 대구여성의 전화 소식지에도 게재되었다.
이러한 게재행위에 대해 명예훼손소송이 제기되었고, 1심에서 벌금 2백만원이 선고되었으며, 2심에서는 벌금 100만원이 선고되었다.
이하 이 사건을 대구 제자사건이라 한다.
2. 조교성폭력사건(대구 조교사건)
같은 대구 지역의 K대학에서는 조교를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하자 대구여성의 전화는 2000. 10. 13.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경일대학교 교수에 의한 조교성폭력사건-사건개요, 사건경과, 성명서'라는 제목으로 '이 대학 K교수가 2000. 5. 12. 조교 B를 경주로 유인하여 강간하면서 마취제를 피해자의 술에 넣어 실신시킨 후 강간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계획적으로 마취제를 술에 태운 것으로 보아 상습범일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을 게재하였다.
동 게재행위에 대해서도 역시 앞의 대구 제자사건과 같이 명예훼손소송이 제기되어 같은 사건으로 심리 선고되었다. 이하 이 사건은 대구 조교사건이라 하며, 위의 대구 제자사건을 포함하여 논할 때는 대구사건이라 통칭한다.
III. 명예훼손의 法理와 대구사건
1.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
민주국가에서 개인의 언론·출판의 자유(또는 표현의 자유)는 여론을 자유롭게 형성하고 전달함으로써 다수의견을 집약시켜 민주적 정치질서를 생성·유지시켜 나간다는 점에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는 원초적 기본권(Urgrundrecht)으로서 다른 어떤 기본권보다도 우월한 지위(preferred position)를 누리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 등 私的인 법익의 보호 또한 중요하다(헌법 제21조). 이러한 맥락에 따라 우리 형법도 제307조에서 일반적인 명예훼손죄를 규정하면서, 제310조에서 명예훼손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위법성조각사유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도 공익에 관한 것으로서 진실하거나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명예훼손죄는 성립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법에는 이와 같은 규정이 없이 단지 명예훼손의 경우의 특칙(제764조)만을 규정하고 있어 명예훼손죄에 관한 형법상의 위법성조각사유가 과연 민법에도 적용되는 것인가에 관하여 논란이 일고 있으나, 판례는 형법의 위법성조각사유에 관한 이론이 민사상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명예훼손을 당한 경우에 피해자의 대응은 대부분 형사고소에 의한 처벌이 주종을 이루고 있을 뿐, 민사상의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제751조)이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제764조) 등에 의한 해결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에 관한 판례도 많지 않으며 명예훼손의 성립요건이나 위법성조각사유 또는 면책사유에 관하여도 불명확한 부분이 많고, 따라서 일관된 法理가 성립되어 있지도 못한 실정이다.
2. 명예훼손의 위법성조각사유
(1) 진실성
가. 사실의 적시
명예훼손의 위법성이 조각되기 위해서는 우선 적시된 내용이 진실할 것(진실성)을 요한다. 다만, 세부적인 부분까지 모두 진실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주요사항이 진실하면 세부사항은 다소 진실에 부합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진실성이 인정되며,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주된 사항이 진실하면 진실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오랜 입장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을 대구사건에 적용시켜 보면 대구 조교사건의 경우 대구지방법원은 1 2심 모두 'K교수가 술에 취한 조교를 강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술에 마취약을 태워 조교를 실신시킨 다음 강간하였다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 게재하면서, 대구 여성의 전화가 금교수의 전력을 조사한 바가 없으면서도 K교수를 상습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게재한 것은 허위의 사실로서 진실성이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강간사건의 경우 강간을 하였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강간을 하는 과정에 일어난 일에 대한 사소한 오해 또는 그와 부수되는 상황의 인식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바로 이 부분이 대법원이 말하는 '세부사항이 다소 진실에 부합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진실성이 인정되는' 것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살피건대 남녀의 성적 행위는 그 본질상 밀폐된 장소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증인이 없고, 대체로 직장상사 또는 선배 등 면식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심한 수치심과 자괴감에서 피해자는 더욱 당황하게 되며(심한 경우에는 정신과치료를 받기도 한다), 사건과 연관하여 자신의 향후 거취(휴학 또는 사직 등)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하다 보면 시간은 흐르고 증거보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성폭력가해자는 성폭력 사실에 대한 증인이나 물증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사실을 은폐하거나 오히려 피해자를 명예훼손죄나 무고죄(里長事件) 등으로 逆告訴하는 사례마저 늘고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여성회원 數人에 대한 성폭행이 일어난 경우에도 피해자들을 차례로 불러 회유나 협박을 통해 무마를 강요하거나 다른 조건을 내세워 訴의 取下를 강요하는 등 피해자를 위축시키는 일이 많고,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의 경우에는 피해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등의 노동권 침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성폭력사건이 정식으로 제소되었을 경우 증거라는 것은 피해자의 피해상황에 대한 진술과 정황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특히 직장이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교수나 직장상사, 선배 등에 의한 성폭력은 일반 성범죄와는 다른 각도에서 진실성을 파악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 아직도 유교적 사고방식이 강하게 남아있는 상황에서 신뢰와 존경을 바탕으로 또는 권력관계로 이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은 일반적인 성폭력사건과 동일시 할 수 없는 분명히 다른 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의 진술과 정황에 보다 무게를 실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요컨대 피해자는 물론이고 피해자를 도와 문제 해결에 나섰던 시민단체 등 관련자들이 피해자의 진술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성이 충분히 있었다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전제 하에 대구사건을 살펴보면, 전체적인 사건의 맥락에서 볼 때 교수가 조교에게 술을 먹이고 강간을 했다는 사실이 진실이면 그 밖에 술에 마취약을 탔는가의 여부는 강간사실의 진실성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아주 사소한 부분이다. 더욱이 강간을 당하는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그 순간의 일들이 대단히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운 일이어서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이 강간당했던 순간을 다시 돌이켜 볼 때 가해자가 자신에게 술을 먹이고 호텔방을 잡아 자신을 강간한 행위가 계획적이었음을 확신하게 되고 따라서 그렇게 진술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일련의 계획적인 강간행위를 돌이켜 볼 때 피해자인 조교로서는 자신이 먹은 술에 마취제와 같은 약물이 첨가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질 수도 있으며, 더욱이 미혼여성이 자신의 직장상사에게 강간을 당한 경우에는 그와 같은 계획적인 범죄행위에 더 무게를 두었을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은 어디까지나 강간이라고 하는 중요부분에 부수되는 사소한 부분에 다름 아니다. 주요부분이 진실이면 세부사항이 다소 진실과 부합하지 아니한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진실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한 정황으로 보건대 'K교수가 상습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인터넷에 게재한 부분이 문제될 수 있다. 단순히 사실적시만 하지 않고 K교수의 행동에 대한 추론과 함께 의견표현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나. 의견표현
문제의 진술이 사실의 적시인가 또는 의견인가를 구별함에 있어서는 언어의 통상적 의미와 용법, 입증가능성, 문제된 말이 사용된 문맥, 그 표현이 행하여진 사회적 상황 등 전체적인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사실의 적시와 의견표명을 구분하는 것은 의견이나 논평, 만평은 명예훼손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의 적시와 의견 또는 논평의 구별이 필요한데, 우리 대법원은 "의견 또는 논평을 표명하는 표현행위로 인한 명예훼손에 있어서는 그 의견 또는 논평 자체가 진실인가 혹은 객관적으로 정당한 것인가 하는 것은 위법성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고, 그 의견 또는 논평의 전제가 되는 사실이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진실이라는 증명이 있는가, 혹은 그러한 증명이 없다면 표현행위를 한 사람이 그 전제가 되는 사실이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가 하는 것이 위법성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므로, 어떠한 표현행위가 명예훼손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경우 그 표현이 사실을 적시하는 것인가 아니면 의견 또는 논평을 표명하는 것인가, 또 의견 또는 논평을 표명하는 것이라면 그와 동시에 묵시적으로라도 그 전제가 되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아니한가를 구별할 필요가 있고, 신문 등 언론매체가 특정인에 대한 기사를 게재한 경우 그 기사가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인지 여부는 당해 기사의 객관적인 내용과 아울러 일반의 독자가 보통의 주의로 기사를 접하는 방법을 전제로 기사에 사용된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 기사의 전체적인 흐름, 문구의 연결 방법 등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인데, 이는 사실 적시와 의견 또는 논평 표명의 구별, 의견 또는 논평 표명의 경우에 전제되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인지 여부의 판별에 있어서도 타당한 기준이 될 것이고, 아울러 사실 적시와 의견 또는 논평 표명의 구별, 의견 또는 논평 표명의 경우에 전제되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인지 여부의 판별에 있어서는 당해 기사가 게재된 보다 넓은 문맥이나 배경이 되는 사회적 흐름 등도 함께 고려하여야 할 것이므로, 신문기사 가운데 그로 인한 명예훼손의 불법행위책임 인정 여부가 문제로 된 부분에 대하여 거기서 사용된 어휘만을 통상의 의미에 좇아 이해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증거에 의하여 그 진위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 타인에 관한 특정의 사항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바로 해석되지 아니하는 경우라도 당해 부분 전후의 문맥과 기사가 게재될 당시에 일반의 독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 내지 경험 등을 고려하여 볼 때에 그 부분이 간접적으로 증거에 의하여 그 진위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 타인에 관한 특정의 사항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이해된다면 그 부분은 사실을 적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이를 묵시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라고 이해된다면 의견 또는 논평의 표명과 함께 그 전제되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은 대법원의 입장을 대구 조교사건에 대입시켜 보면, K교수가 계획적으로 강간한 정황을 미루어 보건대 'K교수가 상습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그 내용을 인터넷에 게재한 것이므로 이 부분은 의견판단으로서 논평에 해당한다. 대구 여성의 전화가 이렇게 판단하게 된 까닭은 K교수가 사전에 호텔방을 예약하고 조교에게 술을 먹이는 등 계획적으로 강간행위를 한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표현행위를 한 사람(대구 여성의 전화)이 그 전제가 되는 사실(강간)이 중요한 부분(계획범죄)에 있어서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므로 의견표명으로 인정되는 데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 더욱이 대구 여성의 전화는 여성들의 권익향상과 여성에 대한 범죄예방활동을 지속적으로 펴온 단체인 만큼 성범죄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K교수에 대한 여성들(특히 학생과 조교 등)의 주의를 촉구하는 관점에서 그와 같은 의견을 개진한 것이므로 위법성이 조각된다.
(2) 상당성
보도된 내용이 비록 진실한 사실은 아니지만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상당성)에도 명예훼손은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이다. 다시 말해 형법 제310조상의 위법성조각사유는 진실성과 공익성만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대법원은 판례로서 '상당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형법이 위법성조각사유로 진실성과 공익성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례가 그 사유를 확대하여 '상당성'까지 인정하는 것은 인격권으로서의 개인의 명예보호와 헌법 제21조에 의한 정당한 표현의 자유보장이라고 하는 상충되는 두 법익간의 조화를 꾀하면서도 민주사회에서의 여론형성이라고 하는 언론사의 기능을 강조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 상당성이 위법성조각사유냐, 책임조각사유냐에 관해서는 판례의 태도가 일관되지 않고 엇갈리고 있다.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명예를 훼손하였다면 일단 위법성이 있는 것이고, 다만 적시된 사실을 행위자가 진실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믿은 데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명예훼손의 고의, 과실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므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책임조각사유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나, 최근에는 진실성과 상당성, 공익성을 모두 함께 명예훼손의 위법성조각사유로 통칭하여 논하는 것이 보통이다.
상당성의 기준에 관하여 대법원은 "행위자가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의 여부는 적시된 사실의 내용, 진실이라고 믿게 된 근거나 자료의 확실성과 신빙성, 사실 확인의 용이성, 보도로 인한 피해자의 피해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행위자가 보도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적절하고도 충분한 조사를 다하였는가, 그 진실성이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자료나 근거에 의하여 뒷받침되는가 하는 점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상당성이 인정된 구체적인 사례로는, '자료의 확실성과 표현방법', '정보원의 신뢰성 또는 피해자와의 對面性', '사전조사와 점검' 등이다. 또 상당성을 판단하는 시점은 그 사실을 공표할 당시를 기준으로 하나, 그 이후에 드러난 객관적 사실이나 자료도 참고한다.
명예훼손의 위법성조각사유로서 상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풍문이나 억측에 의거해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진실을 뒷받침할 만한 합리적인 자료나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까지 진실 여부를 확인하여야 상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가? 우리 대법원은 ㅈ대학의 총학생회장이 거문도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것과 관련하여 안기부직원이 관련되었다는 추측성기사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그럴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하여 상당성을 인정하였다. 사실을 인정할 만한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사건의 정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상당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몇 개의 대법원판례를 대구사건에 대입시켜보자.
먼저 대구 제자사건과 조교사건 등은 모두 대학당국으로부터 해임결정을 받거나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았다. 대학당국이나 법원의 판단보다 더 확실한 진실성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물론 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리거나 대학당국이 해임결정이나 제명처분을 내리기 이전에 피해자 또는 시민단체가 성폭력 사실을 공론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시민단체는 피해자가 상담 또는 法的 助力을 받기 위해 來訪해 진술한 내용을 듣고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성'이 전혀 없었는가?
살피건대 한국에서의 性에 관한 의식이 과거에 비해 많이 변했다고는 해도 아직도 여성의 순결과 정조가 강조되고 있고, 성범죄를 논의함에 있어 가해자에 대한 비난보다는 피해여성의 誘發責任을 거론하는 경향(加害者 溫情主義)이 농후할 뿐만 아니라, 성담론과 실제 생활과의 괴리가 심각한 우리 현실 속에서 여성이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 자신이 성폭력의 피해자였다고 주장하고 나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피해자 개인적으로는 육체적인 상처는 물론 무력감, 자아손상감, 수치심, 분노 등 정신적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는 해고되거나 따돌림받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며, 학교에서는 학점과 졸업, 학생활동 등에서 고립되거나 불이익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아니하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혈연관계가 유독 강한 한국사회에서 부모형제 등 가족이 받게 될 피해와 고통까지 감안한다면 자신이 성폭력의 피해자임을 당당히 밝히고 나온다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을 뿌리뽑고 성적 자율권을 실현하고자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돌이키고 싶지 않은 순간과 그 이후의 과정을 타인 앞에서 눈물로 호소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여성에게 당시의 정황과 진술만 있을 뿐 직접적인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검찰이나 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무혐의처분, 기소유예 또는 무죄 등을 선고하듯이 시민단체들도 도움을 거절할 수 있는가? 설혹 성폭력범죄행위에 대하여는 기소과정과 재판 결과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무죄가 인정될 수도 있지만, 피해자의 구체적인 당시 진술과 정황(예컨대 가해자가 사전에 방을 예약했다는 등)을 듣고 성폭력 사실을 공론화했다는 이유로 피해여성을 도운 시민단체에게 명예훼손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온갖 비난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드러낸 피해자의 구체적인 진술과 정황을 듣고 이를 공론화했다면 그 진술과 정황은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구 조교사건의 경우 K교수가 미리 호텔방을 예약 한 후 조교에게 술을 먹이고 호텔로 데리고 가 강간하는 등 계획적으로 범행을 한 점이 인정되는 상황에서 피해자인 조교는 '술에 마취약도 타지 않았겠는가' 하고 충분히 의심할 만하며, 그러한 피해자의 말을 듣고 의학적으로 강간사실을 확인(정액채취 등)한 대구 여성의 전화 측에서도 그 사실에 심증을 굳히게 되었으며, 특히 예방적 효과를 위해 마취약이라고 하는 의문과 함께 상습범의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라고 믿어진다. 다시 말해 '술에 마취약을 태워 조교를 실신 시킨 후 강간하였으며, K교수는 상습범이다'라고 믿을 만한 상당성이 충분히 인정된다. 미혼여성이 자신을 관리 감독하는 지위에 있는 자에게 강간을 당하는 위기적이고도 대단히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사후에 생각해 보면 '자신이 마신 술에 마취약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쉽게 의식을 잃었던 것 같다'는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가해자가 상습범일 수 있다고 사실을 오인할 수도 있는바, 이는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강간이라고 하는 중요범죄행위에 부수되는 사소하고 경미한 사실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오인할만한 충분한 상당성이 인정되므로 역시 위법성조각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3) 공익성
가. 개념과 내용
언론의 자유는 그것이 여론을 형성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민주국가에 있어 절대적이고도 본질적이며 모든 자유의 基底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기본권(finales Grundrecht)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라도 그것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공익성)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형법 제310조). 이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요체인 언론의 자유는 비판의 자유를 그 핵심으로 하고 있고 공정한 비판이야말로 사회 발전의 불가결한 요소인데, 적시되는 사실이 진실이고 또한 그 적시가 공익성을 지닌 경우까지 처벌한다면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가 중대한 제한을 받게 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형법의 이러한 태도는 인격권으로서의 개인의 명예보호와 민주정치에 필수불가결한 언론의 자유라고 하는 두 법익이 충돌하였을 경우 사회의 여러 이익을 고려하여 언론의 자유에서 얻어지는 이익과 인격권의 보호로 달성되는 이익을 비교형량하여 그 규제의 폭과 방법을 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公益이라는 용어는 대단히 多義的인 개념이어서 한마디로 공익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를 단정하기가 어려우며, 구체적인 사항에서 공익성의 여부를 가리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따라 우리 대법원도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라 함은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주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적시한 것이어야 하는 것인데,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에는 널리 국가·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하는 것이고, 적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 여부는 당해 적시 사실의 내용과 성질, 당해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 그 표현의 방법 등 그 표현 자체에 관한 제반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하며,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私益的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거나 또는 세부에 있어 진실과 약간의 차이가 나거나 과장되어 있더라도 공익성은 인정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일반론에 따라 지금까지 우리 법원이 판례를 통해 인정한 공익성으로는, 公人의 정치적 이념, 광복 50주년을 맞아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에 헌신한 백범 김구선생의 일대기를 통하여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왜곡된 역사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삼기 위한 것, 정치현안이나 정치헌금, 선거운동, 국회의원의 기자회견·강연·후보자 합동연설회 등에서의 발언, 방송사 프로듀서의 역사관, 시민단체의 財源, 북한사회 동향보고, 음주운전, 노조위원장의 업무처리내용 중 근거자료가 불명확한 부분에 대하여 대자보를 작성·부착한 행위, 아파트주민이 관리업체의 명예를 훼손한 유인물을 작성·배포한 행위, 교수 및 교사가 학교법인의 문제점을 비판한 유인물을 교직원에게 배포한 행위 등이 있다.
결국 우리 법원은 공익성에 관하여 반드시 국가나 사회 전체의 이익에만 국한하지 아니하고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범위는 피해자와의 상관관계 하에서 정하여지지만, 발언의 전체적인 내용과 발언동기·경위, 시기 및 목적 등에 따라 종합적으로 공익성을 평가한다고 분석할 수 있다.
나. 국민의 알권리와 公人
공익성을 명예훼손의 위법성조각사유로 인정하는 까닭은 바로 국민의 알권리(right to know)를 보장하기 위함이며,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와 그로 인해 침해되는 개인의 인격권으로서의 명예보호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모색된 것이 '알권리와 公人'의 이론이다.
우리 헌법은 알권리에 관한 명문조항을 두고 있지 아니하나, 학설과 판례가 모두 헌법해석상 알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알권리에 관하여 학자들은 '모든 정보원으로부터 일반적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할 수 있는 권리',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원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듣고, 보고, 읽을 자유와 권리',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원으로부터 의사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자유'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알권리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독립된 한 인격체로서 인격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사상이나 의견, 정보 등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서 인정되는 권리이다. 다시 말해 알권리는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기초적 욕망을 충족하여 줄 뿐만 아니라 견문과 지식을 확대하여 자유로운 인격 발현의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면 개인주의적 사상을 母胎로 하는 것이지만, 개인이 올바른 사상을 갖고 이를 표현하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책임의식 있는 인간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바로 시민 개개인의 행위능력과 결정능력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적 요구에도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정되는 권리이다.
국민의 알권리와 개인의 명예권 보호의 관계는 국가에 따라 상이한 내용과 유형으로 발전해 왔는바, 미국에서는 주로 어떤 경우에 국민의 알권리가 개인의 명예권보다 우선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 하는 人的 區分論에 따라 이론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면, 독일에서는 주로 인격이 보호될 수 있는 영역을 구분하는 이른바 人格領域論(Sph rentheorie der Pers nlichkeit) 또는 공적인 영역( ffentliche Daseinssph re)論으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국민의 알권리는 公人의 공개적인 영역에만 미칠 뿐, 개인의 은밀하고도 내밀한 영역(Intimsph re, Geheimsph re) 즉, 사생활의 영역(Privatsph re)에까지는 미치지 아니하는 것으로 이론적 접근이 되어 있다. 그러나 개인의 지극히 은밀한 영역이라도 그것이 언론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뉴스가치가 있거나 합리적 관심(legitimate concern)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당황스러운 私的 事實(embarrassing private facts)'의 출간 및 발언도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이 된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학설이나 판례가 아직 정착되어 있지 아니하다고 할 수 있으나, 최근 대법원은 이와 관련하여 公人理論을 수용하는 듯한 판례를 내놓고 있어 주목된다. 즉, "언론·출판의 자유와 명예 보호 사이의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 표현된 내용이 사적(私的) 관계에 관한 것인가 공적(公的) 관계에 관한 것인가에 따라 차이가 있는바, 당해 표현으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인 존재인지 사적인 존재인지, 그 표현이 공적인 관심사안에 관한 것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으로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닌지 등을 따져보아 공적 존재에 대한 공적 관심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간에는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야 하며, 당해 표현이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그 평가를 달리하여야 하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하며, 피해자가 당해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의 여부도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요컨대 공인과 사인간에는 명예훼손의 적용이 달라질 수 있으며, 발언내용이 공적인 것인 경우에는 그 평가도 달리 하여야 하고, 피해자가 그러한 발언을 자초한 것인지도 따져 보아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그 동안 대법원이 피해자가 공인인가의 여부는 고려대상이 아니라거나 또는 공인이기 때문에 더욱 일반인보다 두텁게 명예를 보호받아야 한다고 하던 종래의 태도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동시에, 미국의 명예훼손의 법리와 상당히 근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미국이 지금까지 인정해 온 공인이론과 공적 관심사이론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 公人의 개념 및 이론적 기초
公人이라 함은 공무원이나 정치인, 연예인 등을 포함하는 公的인 人物(public figure)을 말한다. 이 이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행위자의 책임을 가능한 한 완화시켜주기 위하여 신분에 따라 다른 기준(status based standard)을 적용하면서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이론은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는 신분에 따른 구분보다는 내용에 따른 구분(content based standard)을 적용하여야 한다고 하여 公的 關心事 또는 공익(public interest)을 다룬 언론보도인 경우에는 私人에 대한 명예훼손소송에서도 원고가 '現實的 惡意'(actual malice)를 입증하여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으로 점차 확대, 발전되었다. 공적 관심사란 피해자의 신분에 관계없이 보도내용에 따라 일반대중이 진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을 말하며, 흔히 시사성이나 뉴스가치가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다고 하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할지 모르나, 개인의 명예를 보호하는 데는 소홀하다는 반론과 비판에 따라 판례는 다시 피해자의 신분에 따른 구분방식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논의의 사안에 따라서 非自發的(involuntary)으로 공적 인물이 되는 '제한적 공적 인물(limited public figure)'론도 제기되어 私人도 자신이 범죄자가 되거나 공인의 배우자가 되는 등 사안에 따라서는 공인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여전히 신분에 따른 기준에 변화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요컨대 미국에서는 명예훼손의 경우 피해자가 공인인 경우에는 가해자의 '현실적 악의'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승소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어, 일반 사인에 비해 명예권이나 사생활권의 보호 등 인격권의 보호가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명예훼손소송에서 공인을 달리 취급하는 까닭은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공직과 공무 또는 그의 도덕성이 정책에 영향(government affliction test)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이 인정되는 것이며, 공인은 사인보다도 언론에의 접근권(right to access)이 용이하다는 점과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assumption of the risk rationale)는 이유에서도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라. 대구사건에의 적용
이상과 같은 공익성의 원리를 대구사건에 적용시켜 보면, 첫 번째 제자사건의 경우는 가해자인 L교수가 국공립대학인 경북대학교의 교수인바, 그 신분자체로서 公人이며 공인의 경우에는 사생활의 자유가 확고하게 보장되는 일반 사인과는 달리 국민의 알권리가 충족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게다가 제자를 성추행했다고 하는 사실은 공지의 사실로서 비록 피해자와 합의가 되어 정식재판에 이르지는 아니하였으나 성추행사실로 인하여 경북대로부터 해임되는 등 사실인정에 있어서 異論이 없었다. 또한 대학 내에서의 성폭력, 특히 제자에 대한 교수의 성희롱과 성폭력사태의 심각성은 2000년대를 기점으로 국내에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러한 성폭력사실의 공론화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성문화정착이라는 점에서 공익성이 충분히 인정되는 것이다.
오랜 유교적 사고방식과 가부장적 전통 속에서 남녀불평등이 만연되어 온 우리 사회에서 남녀평등을 인식시키고 주장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여성의 性談論을 公論化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있어서 그 자체로서 공익성을 갖는다.
本稿의 첫머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 헌법은 제헌헌법에서부터 남녀평등을 규정하고 있었으나, 정치적·사회적·법적으로 진정한 남녀평등의 진전이 이루어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고, 남녀의 성에 대한 평등한 인식과 관심이 본격화된 것은 더더욱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공개적인 여성의 성담론은 그 자체로서 우리 사회에서는 공익성을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의 性에 대한 호기심과 표현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라고 하겠으나, 남녀간의 성적 불평등이 고착화된 사회에서 무분별한 성표현물이 도처에 범람하고, 그로 인해 가정이나 사회에서 무의식적·의식적·제도적으로 일어나는 여성의 성적 착취와 학대, 왜곡, 비하, 증오, 상품화, 도구화, 범죄대상화(성희롱, 성차별 등의 성범죄) 현상이 빈발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올바른 성문화의 평등 실현을 위해서도 여성의 性을 주제로 한 성담론이 공론화되어야 하며, 이러한 공론화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개인의 성적 자율권과 평등권이 확립될 수 있음은 재론을 요하지 아니한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제도적 언론(institutional press)의 표현의 자유보다도 넓게 보장되는 미국에서도 직장과 학교에서의 성희롱과 가정폭력을 공론화하는 것은 명예훼손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많다. 기본적으로 은밀히 자행되는 각종 성폭력행위는 그것을 공론화시키지 아니하는 한 진실을 밝히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해결책을 찾기도 어렵고 대책 마련이나 동일한 범죄의 방지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법원도 실명으로 성폭력사건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위법성조각사유를 인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주지방법원은 ㅂ시인이 후배 여자시인을 강제추행한 사건을 실명으로 보도한 ㅇ신문사에 대해 '文壇內 음주문화와 남성문인들의 후진적 성의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 위한 의도로 기사화한 것은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인정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대구 제자사건은 가해자의 신분이라는 측면에서 보거나 또는 범죄행위의 태양이라는 점에서 볼 때에도 '행위자(대구여성의 전화)의 주요한 동기(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만연) 내지 목적(대학사회의 건전한 성문화 정착)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공익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된다.
더욱이 우리 대법원은 공익의 판단기준에 대하여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은 국가 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한다'고 하여 그 범위를 대단히 넓게 인정하고 있으므로 설혹 대학사회의 잘못된 성문화가 대학사회라고 하는 일부에 관련된 관심사라고 하더라도 공익성을 인정받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두 번째 제자 강간사건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경일대학이 사립대학이기는 하지만 대학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여론을 주도해 나가는 지식인으로서 그가 저지른 행위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주요 관심거리(공적 관심사, public issue)가 되고 있는 대학교수의 성폭력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공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대법원은 명예훼손을 판단함에 있어서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다른 사적인 경우와는 다른 심사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으며, 또한 '피해자가 당해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의 여부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명백하게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대구사건은 모두 공인 또는 공적 관심사에 관한 사안으로서 가해자들이 스스로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행위(성폭력 또는 강간)를 한 자들이므로 어느 정도 명예훼손적인 기사를 감수하여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대학사회에서 더 이상 학생 또는 교직원 중에서 희생자가 나와서는 아니 된다는 판단 아래 실명을 거론한 것은 더 큰 공익을 실현하고자 함이었음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다.
개인의 사생활을 제도적 언론의 보도의 자유보다 우위에 놓는 미국에서도 그것이 뉴스가치가 있거나 합리적 관심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비록 '당황스러운 지극히 은밀한 私的 事實의 공표'도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하여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앞에서 본 바와 같으며, 그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 밝힌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지나치게 상세하고도 노골적인 언론보도도 전혀 명예훼손으로는 거론조차 되지 아니하였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많다.
3. 비방의 목적
(1) 개념과 내용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신문, 잡지 또는 라디오 기타 출판물에 의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단순명예훼손보다 가중처벌된다(형법 제309조).
우리 법이 '신문, 잡지 또는 라디오 기타 출판물'(이하 '출판물 등'이라 함)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일반 명예훼손죄보다 중벌하는 이유는 사실 적시의 방법으로서의 출판물 등의 이용이 그 성질상 다수인이 견문할 수 있는 높은 신뢰성 및 장기간의 보존가능성 등 피해자에 대한 법익 침해의 정도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출판물'은 그것이 등록·출판된 제본인쇄물이나 제작물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와 같은 정도의 효용과 기능을 가지고 유통·통용될 수 있는 외관을 가진 인쇄물이어야 한다. 따라서 장수가 2장에 불과하며 제본방법도 조잡한 것으로 보이는 催告書 사본은 출판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외관과 기능을 가진 인쇄물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같은 이유에서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되어 프린트된 A4 용지 7쪽 분량의 인쇄물도 '기타 출판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비방'은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을 깎아 내리거나 헐뜯는 것을 의미하며, '비방의 목적'은 단순히 어떠한 사실을 적시하여 상대방의 명예를 해한다는 것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의 저해를 의도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란 가해의 의사 내지 목적을 요하는 것으로서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는지 여부는 행위자가 자백하지 아니하는 한 직접적인 증거로써 이를 입증할 수는 없기 때문에 행위자가 비방의 목적을 부인하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고,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에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비방의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당해 적시 사실의 내용과 성질, 당해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 표현의 방법 등 그 표현 자체에 관한 제반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요컨대, '비방의 목적'은 주관적인 내심의 생태이기 때문에 그 입증이 대단히 어렵고 따라서 주변상황을 종합해서 간접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나, 이 비방의 목적은 앞서 설명한 공익성과 관련하여 문제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우리 대법원은 '인간의 행위와 동기는 복잡하므로 다소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나 私益을 위한 것이 숨어 있다 하더라도 그 주요한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반면에 타인을 비방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나 동기가 된 경우에는 그에 의한 명예훼손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하여 위법성이 조각될 수는 없다. 비방의 목적은 가해의 의사 내지 목적을 요하는 것으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과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의 방향에 있어 서로 상반되는 것이므로,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의 목적은 부인된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표현이 지나치게 악의적이거나 과격한 경우에는 흔히 비방의 목적이 있는 것으로 오인되기 쉽지만, 전후 문맥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에 대한 경멸적 평가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되지 아니한다.
(2) 대구사건에의 적용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 외에도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고자 하는 주관적 요소로서의 犯意도 있어야 하는데 과연 대구사건의 경우에 성폭력가해자들의 행위를 공표한 대구 여성의 전화가 가해자들의 사회적 평가와 명성을 침해하고자 한 행위였는가? 다시 말해 명예훼손의 고의가 있었는가, 에 대해서 쉽사리 인정하기 어렵다.
그 까닭은 우리 사회가 아직은 여성의 성적 피해에 대해 효과적으로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완비되어 있지 못한 관계로 직접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여성은 우선은 당황하게 되고, 법적인 대처방안을 몰라 주변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다가 여성단체 등 유관단체에 연결되는 경우가 많으며,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성폭력 사실을 사회에 널리 알림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된 잘못된 성문화를 바로잡고자 노력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사례들은 대부분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 일어난 경우가 많아, 크게 보면 公人의 德目이라고 하는 도덕성과 자질에 관한 문제들이었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주로 권력관계(교수와 학생, 교수와 조교 등) 아래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점에서 문제의 구조적 심각성이 있으며, 이를 근절하고 건전한 성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公論化할 필요성도 상당부분 인정되는 바다. 이에 관하여는 앞에서 이미 詳論했으므로 부연설명하지 아니한다.
더욱이 명예훼손소송에 있어서는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자가 당해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의 여부도 고려하여야 한다'는 최근의 대법원의 판결을 염두에 둔다면, 대학사회에 만연된 교수가 학생 또는 제자에 대한 성폭력 사실을 공개하고 그에 대한 각성과 대책을 촉구하며,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하여 그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이 시대의 성담론 공론화가 갖는 공익성 문제 이전에 우리 대법원이 인정한 (학교사회)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해당되므로 공익성이 충분히 인정되어 비방의 고의성은 없다고 판단된다.
IV. 입증책임
명예훼손의 보호법익은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이른바 외부적 명예이고, 그 명예훼손의 입증은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주장하는 자가 입증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여 형사사건에서는 검사가, 민사사건에서는 원고가 입증책임을 부담하게 된다(libel-proof plantiffs). 그러나 적시된 사실이 진실인지의 여부, 그리고 행위자가 진실이라고 믿는 데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의 여부 등 진실성과 상당성의 입증을 누가 할 것인가에 관하여 우리 대법원은 명예훼손 행위자가 부담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대법원은 "위법성이 조각되어 처벌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행위자가 증명하여야 한다"고 하여, 진실이라고 믿은 데 상당한 이유가 있었음에 대한 입증책임 또한 행위자에게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태도이다.
생각건대 行爲反價値論(Handlungsunwert)에서 보든 結果反價値論(Erfolgsunwert)에서 보든 진실성과 상당성이 있음은 행위자가 입증하여야지 그러한 진실성과 상당성이 없음을 상대방이 입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법원의 이와 같은 태도는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단순한 진실성의 입증이 아니라, 公人과 관련된 진실성의 인정은 행위자가 그 내용이 허위임을 알았거나 이를 무분별하게 무시한 경우에만 상당한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 명예훼손에 있어서의 위법성조각사유로 공익성과 진실성, 그리고 상당성까지 인정하는 취지와 입법목적, 그리고 판례의 정당성에 보다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미연방대법원이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에서만 요구하는 이론이라고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최근 우리 대법원은 이와 같은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듯한 판결을 하나 선고하였는바, 이미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언론·출판의 자유와 명예보호 사이의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 표현된 내용이 사적(私的) 관계에 관한 것인가 공적(公的) 관계에 관한 것인가에 따라 차이가 있는바, 즉 당해 표현으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인 존재인지 사적인 존재인지, 그 표현이 공적인 관심사안에 관한 것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으로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닌지 등을 따져보아 공적 존재에 대한 공적 관심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 간에는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야 하며, 당해 표현이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그 평가를 달리하여야 하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하며, 피해자가 당해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의 여부도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다시 말해 공적 사안과 사적인 사안간에는 심사기준을 달리해야 한다고 밝혔을 뿐만 아니라, 그 심사기준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피해자가 그러한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의 여부 또한 고려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생각건대 대학교수 등 공인의 공적 사안에 대한 명예훼손사건에 있어서 위법성조각사유 가운데 진실성과 상당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행위자가 허위임을 알았거나 이를 무분별하게 무시한 경우', 즉 허위 또는 허위가능성에 대한 고도의 인식(high degree of awareness of probable falsity)이 인정되는 경우, 다시 말해 '惡意'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상당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입증책임을 보다 완화하여야 할 것이다. 공인이 성희롱이나 강제추행, 강간 등 성폭력을 행사한 점이 문제가 되어 그것을 공론화한 피해자와 피해자의 법적 조력을 위해 도움을 준 시민단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행위는 가해자가 '그러한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와 시민단체를 위협하고 협박하는 수단으로 법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특히 공인의 정치적 이념이나 도덕성 등에 관하여는 '정확히 입증해 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이에 대한 의혹의 제기나 주관적인 평가가 진실에 부합하는지 혹은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따짐에 있어서는 일반의 경우에 있어서와 같이 엄격하게 입증해 낼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되고, 그러한 의혹의 제기나 주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는 구체적 정황의 제시로 입증의 부담을 완화해 주는 것'이 법의 목적이나 이념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물론 명예훼손에 있어서 '허위'의 입증은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검사가, 민사사건의 경우에는 허위의 주장자가 하여야 한다.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적시한 사실이 허위이고, 행위자가 그와 같은 사실이 허위라고 인식하였어야"하므로 그 사실이 허위임을 주장하는 자가 입증책임을 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는 前述한 바와 같이 공인과 공적 관심사에 관하여 '現實的 惡意'論을 견지하고 있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입장이기도 하다. 더구나 대부분 밀폐된 공간에서 증인 없이 일어나는 성폭력범죄의 경우 구체적인 일시와 장소, 방법 등이 확실하게 제시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그로 인한 명예훼손소송에까지 불리하게 피해자 또는 피해자를 도운 시민단체가 모든 입증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불합리한 일이다. 따라서 비방의 목적도 사실은 시민단체에서 비방의 목적이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가 그러한 행위에 비방의 목적과 고의가 있었음을 입증하여야 하는 것이다.
Ⅳ. 부당제소 및 부당고소에 대한 대책
1. 최근 들어 국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과거에 비해 소송사건이 급증하기도 했지만, 당사자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한 경우 대화나 타협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기보다는 승소의 기대심리 아래 일단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민사사건의 경우 원고승소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6.8%에 머물고 있다. 원고 패소율이 전체 소송사건의 증감에 비례하지 않고 매년 높아가고 있는 것은 그만큼 濫訴의 폐단이 늘고 있다는 것을 反證하는바, 이와 같은 '억지소송'과 같은 남소의 경향은 국민의 권리의식 향상에는 기여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당사자들 사이에 시간적·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법관들의 업무도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해결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부당제소로 인하여 정신적·경제적 피해를 입었다며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는바, 이와 같은 부당제소에 대해 법원은 "소의 제기가 재판제도의 취지와 목적에 비춰 현저하게 상당성을 잃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상대방에 대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밝히고 있다.
법적 분쟁의 당사자가 법원에 대하여 당해 분쟁의 종국적인 해결을 구하는 것은 법치국가의 근간에 관계되는 중요한 일이므로 재판을 받을 권리(헌법 제27조)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고, 제소행위가 불법행위가 되는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적어도 재판제도의 이용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결과가 되지 아니하도록 신중하게 배려하여야 한다. 법적 분쟁의 해결을 구하기 위하여 소를 제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정당한 행위이고, 단지 제소자가 패소의 판결을 받아 확정되었다는 것만으로 바로 그 소의 제기가 불법행위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면 소를 제기 당한 사람 쪽에서 보면, 應訴를 강요당하고 이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변호사 비용을 지출하는 등의 경제적·정신적·시간적 부담을 지게 되는 까닭에 應訴者에게 부당한 부담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소의 제기는 위법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민·형사소송을 제기한 사람이 패소판결을 받아 확정된 경우에, 당해 소송에 있어서 제소자가 주장한 권리 또는 법률관계가 사실적·법률적 근거가 없고, 제소자가 그와 같은 점을 알면서, 혹은 통상인이라면 그 점을 용이하게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를 제기하는 등 소의 제기가 재판제도의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현저하게 상당성을 잃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부당제소로 인한 손해배상을 하여야 한다.
부당제소로서 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첫째, 실체상 권리보호의 청구권이 없고, 둘째, 권리보호청구권이 없음에 관하여 고의가 있거나 과실로 인하여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으며, 셋째, 당해 제소에 의하여 상대방 또는 제3자의 법익을 침해하고, 넷째, 그 법익 침해에 관하여 고의 또는 과실이 있어야 하는 등의 요건을 구비하여야 하지만, 최근에 정부정책이나 공직자의 자질 또는 도덕성 검증 등의 문제제기를 막기 위해 비판의 대상이 된 공인들이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소송이라는 법적 수단을 남발하는 추세를 볼 때 부당제소에 대한 법원의 보다 탄력적인 법해석이 요구된다. 특히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위법성조각사유를 인정하고 있는 명예훼손소송에서는 위법성조각사유가 있음을 알면서도 성폭력가해자들이 피해자와 시민단체를 명예훼손이나 무고죄로 逆告訴하는 최근의 풍조는 법의 이름으로 피해자를 끊임없이 괴롭히고자 하는 악의적인 일인 동시에 타인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서 마땅히 억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학당국으로부터 문제의 행위가 인정되어 해임 등의 조치를 받은 대구 제자사건이나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은 대구 조교사건 등의 경우 피해자를 도운 시민단체(대구 여성의 전화)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행위도 위와 마찬가지로 부당제소에 해당하여 피해자와 관련자에게 오히려 위자료를 지급하여야 한다.
2. 한편, 고소·고발을 함에 있어 피고소인 등에게 범죄혐의가 없음을 알았거나 과실로 이를 알지 못한 경우 그 고소인 등은 그 고소·고발로 인하여 피고소인 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물론 고소·고발에 의하여 기소된 사람에 대하여 무죄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해서 그 무죄라는 형사재판 결과만을 가지고 그 고소인 등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었다고 바로 단정할 수는 없으나, 고소인 등의 고의 또는 과실의 유무에 대한 판단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기준으로 모든 증거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최근에 문제되고 있는 성폭력사건에서 가해자들이 인간의 본성과 도덕성에 근거하여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한 번만 더 검토해 보았더라면 과연 그들을 명예훼손으로 제소함에 있어 경솔하지 않았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에게 범죄혐의가 있다고 하여 고소를 하는 경우 그 타인으로서는 수사기관에서의 조사와 법원에서의 재판을 받게 되는 관계로 일단 고소권을 행사한 후 피고소인에 대한 범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국가형벌권의 발동에 의한 국가기관이 담당하는 업무라 할지라도, 고소가 수사의 단서가 되는 이상 고소권의 행사에는 신중한 책임이 따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고소권을 남용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는바,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고소권의 행사를 방지하여야 할 필요성 또한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순수하게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익적인 관점에서 공론화된 사실에 대하여 부당하게 고소함으로써 피해자와 관련자를 위협하거나 협박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기본권남용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효과(chilling effect)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마땅히 억제되어야 한다.
Ⅴ. 맺는 말
현대 민주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통해 건전한 여론이 형성되며, 그러한 여론의 형성은 '자유로운 사상의 시장터(free market of idea)'에서 '언론의 자유로운 흐름(free flaw of speech)'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새삼 논의할 필요도 없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그 언론의 내용이 公人 또는 공적 관심사(public issue, public concern) 등 공익에 관한 내용일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의 우위를 지켜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이 생활 속에서 지각하고 사고한 결과를 자유롭게 외부에 표출하고 타인과 소통함으로써 스스로 공동사회의 일원으로 포섭됨과 동시에 자신의 인격을 형성하고 발현하는 주관적 공권을 실현하는 것이며, 국민의 알권리에도 봉사한다고 하는 측면에서 가장 유효하고도 직접적인 수단으로 기능한다. 특히 사회구성원으로서 평등한 배려와 존중을 기본원리로 공생·공존관계를 유지하고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회적 가치인 自己統治를 실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개인의 표현의 자유는 객관적 가치질서 형성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위한 기본권은 公人에 대한 비판의 자유도 보장하는 것이며, 공적 관심사나 공적 문제 등에 대한 활발한 토론은 결국 공익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게다가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이념상 동일한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지도자들이 내리는 결정이나 행동에 관해서 충분히 지식을 가지고 있는 국민대중을 필요로 하며, 자연스러운 표현체계의 유지는 개인의 자기실현을 확보하고 진리에 도달하는 수단이며, 사회구성원의 정치적·사회적인 결단의 형성에 참가하는 것을 확보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비판을 수렴함으로써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음"을 상기할 때, 대학교수 등 公人이나 비자발적으로 公人이 된 자(확정판결에서 유죄가 확정된 자)에 대한 비판이나 그에 따른 문제의 公論化, 談論化는 그것이 허위가 아닌 한 폭넓게 인정되어야 한다.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명예 보호라고 하는 상반되는 두 권리를 비교 형량함에 있어서는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한 자가 공적 인물인지의 여부와 그 발언내용이 공적 관심사에 관한 것인지, 피해자가 당해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 그 내용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알권리의 대상으로서 여론 형성에 기여하는 것인지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시대적 상황에 필요한 公益的 談論에 대하여 '개인의 사생활 보호'라는 이유로 일률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에 대한 재갈을 물리는 것이 된다. 하물며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무고죄 등으로 부당제소를 남용하는 것은 국민의 귀와 입을 막으려는 의도인 동시에, 濫訴로 인한 국가기관의 기능 저하와 일반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 및 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