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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관련 정책 현황-2002. 겨울
  • 2005-09-16
  • 4500

스토킹 관련 정책 현황

- 경찰대학 조교수 표창원

1. 스토킹을 '범죄'로 인식하여야 하는 이유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적절한 한국어 대체용어가 제시되지 않을 정도로 논의가 진척되지 않은 스토킹의 개념을 서구에서와 같이 "실질적인 물리적 폭력이나 협박 등이 사용되지는 않을지라도 지속적으로 피해자가 괴로움이나 공포심을 느낄 정도로 불쑥 나타나거나, 따라다니거나, 전화 및 기타 통신수단으로 일방적인 연락을 하는 등의 행위"라고 규정할 경우 수 많은 피해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스토킹의 구체적 행위로는 피해자 몰래 집요하게 병적으로 따라 다니거나 피해자의 집이나 사무실에 갑작스레 나타나거나 불필요하고 짜증나는 전화를 걸거나 협박적인 내용의 편지나 호의적인 선물을 지속적으로 보내는 등이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행위들이 지속되게 되면 협박이나 폭행, 강간이나 상해, 심지어 납치유괴나 살인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옛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살해되고 그중 90%가 살해되기 전 스토킹을 당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인터넷등 정보통신의 발달로 그 익명성과 신속성을 이용하여 전자메일 등을 통해 사이버 상에서 스토킹(cyber stalking)이 일어날 위험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렇듯 스토킹은 무서운 범죄행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심에 사로잡힌 피해자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불가능하게 하고 불안감, 불면증, 우울증 및 대인공포증 등 각종 심리적, 정신적 질환을 야기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자살에 이르기도 하는 등 그 폐해가 심각하다.
비록 스토킹 문제가 사회의 이목을 받게된 이유는 소수 유명인에 대한 정신이상자의 애정망상형 내지 집착형 스토킹이지만, 가장 심각하며 많이 발생하는 스토킹 행위는 가정폭력에 동반되거나 헤어진 부인이나 애인 또는 직장 동료 등 서로 아는 사람 사이에 얽힌 감정과 복잡한 관계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에 의해 악의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럴 경우 대개 자신이 하는 행동이 전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렇듯, "현행 법체계의 미비를 틈타서" "고의적으로 상당히 심각한 심리적, 정신적 피해를 야기하며" "살인, 강간, 납치, 폭행 등 흉악한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새로운 유형의 공격행위"인 스토킹은 당연히 "범죄"로 규정하고 그에 걸 맞는 처벌법규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2. 스토킹 관련 정책수립에 있어서의 고려사항

미국에서는, 1990년에 캘리포니아주에서 최초로 "반 스토킹 법"을 제정하였고 점차 대부분의 주에서 이와 유사한 "반스토킹 법"을 제정하여 현재 48개 주에서 이를 시행하기에 이르렀으며 이에 따라 각 지역 경찰당국은 스토킹 사건 전담 부서를 발족시켜 스토킹 피해자의 법익보호에 앞장서게 되었다. 호주에서는 1993년 퀸즈랜드 주에서 최초로 '반 스토킹 법'을 도입한 이래 1990년대 중반까지는 호주 전역에서 '반 스토킹 법'을 제정,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스토킹 행위 처벌을 위한 법규 마련과 시행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스토킹 행위 자체가 물리력의 행사나 신체적 피해 없이 오직 '정신적, 심리적 피해'라는 다분히 주관적인 요소를 대상으로 하고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이나 행위"에 대해 형벌을 부과한다는 부담을 안고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유형적 피해가 없는 상황에서 가해자의 "고의"를 어떻게 입증할 것이냐의 문제 역시 부담으로 작용하며 구성요건으로서의 행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의 문제도 존재한다.
반 스토킹 법에 반대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데 실제로 위헌소송이 제기된 적도 있다. 이들의 주장은 반 스토킹법이 지나치게 모호하고(vague) 그 대상 행위가 광범위(broad)하기 때문에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계속적인 행동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지 알지 못하는 수가 있고 경찰에게 지나친 자유재량을 부여하게되어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법집행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증거수집도 쉽지 않으며 경찰관도 그 행위에 대한 인식과 개념정립이 되어 있지 않아 사실상 그 법은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신종범죄에 대한 개념규정과 그 적용에 있어서의 기술적 문제들을 지적하는 통상적인 우려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는 것으로 신종범죄로서의 스토킹의 심각성과 위험성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다. 아울러, 고의의 입증문제나 무형적 피해의 문제는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다른 범죄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면, 명예훼손의 성립 여부와 뇌물죄의 대가성, 문학이나 예술품에 있어서의 음란성의 판단 등.
그러므로, 반 스토킹 법에 대한 반론들은 반 스토킹 법의 제정과 집행에 있어 보다 치밀하고 면밀한 검토와 현실성을 반영하는 등 고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특히, 스토킹 범죄의 구성요건을 정함에 있어서는 가능한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현장에서의 경찰의 판단과 일반인의 법인식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그 처벌에 있어서도 정신·심리적 문제로 인한 경우에는 정신·심리 치료로 대체하거나 처벌에 병과하는 등의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3. 외국의 정책·입법 사례

미국의 많은 주는 스토킹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가해자로부터 폭력의 위협이 이루어졌다고 믿을 만한 정황으로부터 야기되는 '살인이나 중상해에 대한 합리적인 우려'(reasonable fear of death or grave bodily injury)"를 요구한다. 그리고 어떤 주는 스토킹 자체를 단순한 경죄(misdemeanor)로 취급하기도 하고 또 다른 주는 중죄(felony)로 여기기도 한다. 대개의 주에서는 둘 다 규정을 두어 처음 스토킹 행위를 한 자는 경죄로 처벌하지만 전과가 누적된 상습범이나 접근금지명령이나 가택연금 등의 보호조치를 위반한 경우, 미성년자에 대한 스토킹이나 흉기를 휴대한 스토킹인 경우에는 중죄로 다스리고 있다.
호주 역시 각 주마다 다른 법규정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빅토리아, 퀸즈랜드 및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반 스토킹 법들을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호주 빅토리아, 퀸즈랜드 및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의 스토킹 처벌 규정 비교]
(출처 : http://www.aic.gov.au)

4. 우리나라의 경우

스토킹 행위는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인간성의 황폐화와 성적위주의 교육으로 인한 대인관계 문제의 확산, 가상과 현실의 구분을 어렵게 하는 정보화의 촉진과 개인정보의 노출, 대중적인 흥행위주의 매스미디어 등의 영향으로 더욱 기세를 부릴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스토킹이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스토커의 처벌에 관한 입법논의가 없지는 않았으나 아직은 적극적이며 구체적인 움직임이 일어나지는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 법규 하에서는 스토킹 행위 그 자체만으로는 실제 처벌이 어려우며 그 행위가 심각하고 명백하며 범증이 확실하여 형법상 폭행이나 협박죄 또는 경범죄처벌법이나 성폭력특별법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처벌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어떤 위험인물이 누군가를 계속하여 뒤따라 다니고 악의적인 편지나 전자우편을 보내고 다소 위협적이고 협박적인 태도로 행동할지라도 그것이 명백히 현행법상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 한 경찰이 그를 체포할 수는 없으며 현재로서는 이를 처벌할 분명한 법적 근거나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대개의 개별적인 스토킹 행위는 실제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구체적 피해가 발생하기 전 까지는 그 자체만으로는 처벌하기 어렵고, 또한 일련의 계속적인 스토킹 행위로 인해 피해자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 및 공포심을 느끼지만 가해자는 '애정의 표현'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커다란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는 가운데,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차지한다"등의 잘못된 사회적 속설이 스토킹 행위를 부추기거나 용인해 주고 있다는 데 커다란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법적 공백과 구시대적 인습 및 관행의 그늘아래 오늘도 사회 이곳 저곳에서는 수많은 "인정받지 못하는" 스토킹 피해자들이 호소할 데도 없이 공포에 떨고 있으며 일부의 경우에는 살인이나 강간, 폭행 등의 강력범죄나 자살 등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진 이후에야 경찰이나 언론의 관심을 받게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형법이나 다른 특별법의 규정들이 적용되기 힘든 신종범죄인 스토킹 행위에 대하여 '반 스토킹 법'의 입법(형법 내에 '스토킹 죄' 규정의 신설 혹은 별도의 "스토킹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 등)을 통하여 명백하게 그 개념을 정립하고 그 구성요건을 명확히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물론, 입법과정에서는 일련의 행위가 어떤 관련을 가지고 어느 정도나 누적, 반복되어야 범죄로 볼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집합적으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바라보아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위협이나 괴롭힘이 되는 것인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또는 그 위협이나 괴롭힘에 대한 통상인의 합리적인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충분히 도출되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스토킹 범죄에 대한 적절한 경찰의 개입수단, 예컨대 접근금지명령 등 예방대책이나 형사 사법적 처리절차가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 소개한 미국과 호주의 입법 사례는 이러한 우리의 반 스토킹 입법 노력에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사료된다.

* 저자 표창원님은 경찰대학을 나와 경찰청 경위를 거쳐 영국 Exeter 대학에서 석, 박사 과정을 이수했으며 현재 경찰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The Police and Crimewatch UK, 경찰홍보론, 피해자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