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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근절과 갈등해결 따라잡기
  • 2005-09-16
  • 3851


<성폭력 근절과 갈등해결 따라잡기>

-장윤경(본 상담소 자문위원)


1. 갈등해결도 학문이라고요?

갈등, 중재, 협상, 인간관계, 의사소통 등의 제목은 서점에 가면 주제별로 테이블에 진열해 놓고 홍보하는 책 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주제가 최근에 주목받고 있고, 때로는 몇몇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며 지나치는 경우가 다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인류의 긴 역사 속에 '갈등'이라는 주제는 늘 존재했고, 지금도 우리 모두의 문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수없이 많은 대결과 경쟁 속에서 살아왔고 그로 인해 전쟁, 인권의 침해, 환경파괴, 성폭력 등 많은 문제를 발생시켰다. 인류는 또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미순이·효순이,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이웃간의 각종 분쟁, 가족간의 갈등, 공공분쟁 등등. 이렇듯 싸움의 역사는 인류나 사회라는 커다란 구조뿐만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삶에도 존재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 살건, 여럿이 함께 무엇인가를 해가면서 우리는 다른 주장과 욕구를 가진 상대와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방향은 달라진다. 그래서 갈등해결의 과정과 결과는 중요할 수밖에 없고 인류의 역사는 각 분야에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 왔다.
특히 미국 등에서는 1970년대부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발전시켜 최근에는 학문으로까지 정착되었고, 갈등분쟁 해결을 전공으로 하는 과정도 여러개 개설되어 있다. 갈등해결학은 국제 분쟁에서부터 이웃이나 개인간의 분쟁 그리고 피해자·가해자 중재 프로그램 등 각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한국에서 여성단체와 시민단체가 갈등해결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4년전 갈등해결 방법론 소개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이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보다 집중적인 갈등해결 방법에 대한 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 결과 18개월에 걸친 '갈등해결 전문가 훈련 프로그램'이 진행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시민단체와 여성단체에서 실무책임을 맞고 있는 14명의 중견활동가가 참여하였고, 참가자들은 갈등해결 방법론을 배우면서 평화, 인권, 통일, 여성 등의 관심영역에 따라 한국사회에서 갈등해결을 적용시킬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고민하였다. 지금은 갈등해결 방법론과 이론을 적용하여 평화교육과 여성교육의 프로그램을 개발·실시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활동영역과 관심영역으로 확대할 수 있는 부분을 개발 중에 있다.


2. 갈등해결이 성폭력을 해결하는데 적용될 수 있다고요?

'갈등해결 전문가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필자의 관심영역은 '성폭력을 근절하는데 갈등해결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였다. 그리고 또 프로그램을 수료하면서 추가된 관심영역은 '조직 갈등을 해결하는데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이다.
우선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데 갈등해결 방법론을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를 모색하면서의 가장 큰 고민은 스스로 성폭력 피해 자체를 갈등이라고 정의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일방적인 폭력을 상호간의 갈등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피해를 축소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갈등해결 방법론을 배우면서, 또 피해자들의 특징들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서구의 적용의 예를 보면서 적용 가능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서구에서의 피해자·가해자 중재 프로그램(Victim·Offender Mediation Program)은 1974년 캐나다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 300여개, 유럽 등 21개 국가에서 500여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가해자 프로그램(Sex Offender Treatment Programs)도 진행되고 있는데 프로그램 구성은 가해 행동 인지와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주로 개인 혹은 집단 상담이나 심리치료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3.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1) 상담 프로그램 개발
성폭력에 관한 피해자나 가해자에 대한 상담 프로그램이나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갈등해결의 원리에 의한 중재 프로그램은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다. 서구의 경험을 볼 때 우리사회에서도 성폭력 피해자·가해자 중재 프로그램과 가해자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갈등해결 전문가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초기단계에서는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중재 프로그램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피해와 가해라는 분명한 상황이 있고, 워낙 상반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조정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피해자가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본 상담소에는 피해자 혹은 가해자의 요구로 여러 차례의 중재를 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요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올바른 중재를 하기 위한 관련 프로그램 개발이 요구된다.
갈등해결 방법론은 참여 학습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가장 주요한 특징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깨달아 가는데 있다. 따라서 갈등해결 프로그램을 실시하면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고 예방이나 대응 등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역할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데이트 성폭력, 학내 성폭력 등 분명한 성폭력 피해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도 가해자도 성폭력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발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 교육 프로그램 개발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상담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교육 프로그램이 우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프로그램을 진행할 진행자가 양성되어야만 상담이나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 프로그램은 일반인 대상의 성폭력 예방교육 프로그램, 피해자 대상의 자기 강화프로그램, 가해자 대상의 재범 방지 프로그램, 성폭력 전문 상담원 양성 프로그램과 재교육 프로그램 등 4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여성단체나 시민단체의 교육 프로그램에는 민주시민교육 방법(Metaplan)이 도입되어 활용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 관련 교육 프로그램은 여전히 다른 분야에 비해 강의식이나 주입식 교육 형태의 지식 전달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성폭력의 경우 발생 원인이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문화, 권력관계, 성의 상품화와 남성중심적 성문화, 왜곡된 가족문화 등의 전반적인 우리 사회의 문화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를 바꾸어 가려면 강의식이나 주입식 교육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하겠다(김희은외, 2002).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 캠프에서 시범적으로 성폭력 관련 갈등해결 교육을 한 경험에 의하면, 성폭력에 관한 인식이 낮은 참가자의 경우도 프로그램 후에 자신이 성폭력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의식에 변화가 온 것에 대해 스스로 놀라워했다. 조금 더 목적의식을 갖고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일반인들의 인식을 전화하는데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성폭력 전문 상담원 교육 과정에서 갈등해결 프로그램을 일부 도입하여 교육하고 또 재교육에도 활용한다면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지원하는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갈등해결에서는 드러난 문제인 '입장(positions)'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익(interests)'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상담원 교육에서 갈등해결의 기본적인 훈련을 해 본 결과 상담원들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4. 성폭력 근절을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갈등해결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단편적인 소개이기 때문에 갈등해결 프로그램이 굉장한 능력을 가진 새로운 분야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갈등해결은 '어떤 문제에, 누가 혹은 누구에게, 얼마동안' 등의 사전 조사를 통해 프로그램을 얼마나 잘 만들어서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게 된다. 성폭력 근절을 위해 갈등해결 방법을 적용한다고 해서 관련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한 방법인 것이다.
미국의 경우 학교 폭력 문제에 갈등해결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많은 효과를 거둔 사례가 있다. 1993년 16.4%에 달했던 학교폭력이 클린턴 행정부의 '안전한 학교 만들기'(School Safety) 캠페인으로 진행한 또래 중재와 갈등해결 교육 프로그램의 실시로 1996년에는 학교폭력이 12.8%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강연진, 1999). 또래 중재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갈등해결 중재 교육을 실시하여 동료나 후배들이 두 사람 사이의 문제에 대해 중재자가 되어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것이다. 이렇듯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적절하게 시행한다면 생각보다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성폭력을 추방활동을 해 온지 벌써 10여년이 훌쩍 넘어섰다. 이제는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으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시기가 된 것 같다. 왜냐하면 최근 몇 년 사이에 성폭력 관련 환경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사이버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으며 인터넷 상담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성폭력 가해자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또한 학교내 특히 대학내 성폭력인 경우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성폭력 전문 상담원 교육에 참여하는 교육생들도 좀 더 새로운 내용과 방법을 기대하고 있다.
성폭력 관련 환경은 변화하고 있고 변화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빠르게 달라질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갈등해결의 이론과 방법론의 적용은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데 조금 더 새로운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