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경험 이후 일상을 다시 살아가고 삶을 기획하는 데에는 다양한 욕망이 작용하지만, 현재 국가 차원의 지원 제도는 의료적, 심리적, 법적 분야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일상회복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피해생존자가 스스로 지원금의 규모와 지출 계획을 기획하고 실천하며 삶의 안정성과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2019년 일상회복 프로젝트 참가자 '사람 사는 세상'님의 후기를 전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
1. 일상회복 프로젝트의 기획내용과 실제 진행 내용은 무엇인가요?
일상회복 프로젝트로 제가 처음 기획했던 내용은 ‘1) 헬스 2) 템플스테이’였습니다. 그런데 진행 중인 재판에서 피고들이 저를 대상으로 추가 소송을 제기하여 ‘직장 내 성희롱 사건’으로 앓게 된 우울증 증상이 더욱 심해져 몸을 추스르기 힘든 상황에서 저는 밖을 외출하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떨어져 집에서 계속 누워 지내며 매일 울기만 했습니다. 체력적인 한계와 시간 부족 등으로 헬스나 템플스테이 할 수 없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재판 준비는 해야 하기에 집 근처 독서실을 끊어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매일 독서실에 가지는 못했지만 월권으로 끊은 독서실 때문에 최소한 일주일에 몇 번은 바깥출입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몸을 움직이게 되었고, 그런 후 컨디션이 점차 올라와서 집 근처 헬스장을 끊어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몸을 조금이나마 움직여서 운동을 다닐 수 있게 된 것만으로 기뻤습니다.
2. 일상회복 프로젝트를 통해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회사 근무 중 겪은 성희롱 사건으로 발생한 여러 가지 힘든 일로 인해 직장 생활을 지속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당장 현실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느낀 것은 ‘경제적 부분’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자꾸 뒤로 미루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으니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꺼리게 되었고, 우울증으로 누워 지내면서 엄청나게 불어버린 살로 변해버린 외모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 등 외부 활동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더 우울해지는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나의 힘든 점을 알고 그런 부분을 지원해주려고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치 저에게 일상회복 프로젝트가 ‘키다리아저씨’처럼 느껴졌습니다. 힘들 때나 지칠 때 저의 어려움을 알고 저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곳이 있다는 점에서 제 스스로 몸을 추스르기 힘들 정도로 우울한 상황에서도 일어나 움직일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씩이라도 몸을 움직이다 보니까 과거에 알았던 사람들을 만날 용기도 생기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을 만나 제가 그동안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감내해야했던 힘든 일들을 대해 한 개, 두 개 털어 놓다보니까 점차 마음도 가벼워지면서 암울하게만 느껴지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되면서 일상회복 프로젝트 덕분에 성희롱 사건을 겪은 후 오랜 시간 잊고 지내던 ‘삶의 희망’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저와 비슷한 피해를 겪으신 분들에게 일상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게 되었고, 이런 프로젝트가 있어서 ‘힘이 난다.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이런 말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3. 일상회복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낀 점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오랜 기간 신경정신과 약을 먹고 있으며, 긴 시간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병원에 몇 차례 입원하기도 하였습니다. 올 초에도 몇 차례 신경정신과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병증이 심해져서 힘든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올해 들어서는 아직까지 한 번도 신경정신과 병원에 입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건 일상회복 프로젝트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상회복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처음에 제가 스스로 기획했던 일들이 있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 일들을 똑같이는 하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나마 유사하게 그 계획을 생활 속에서 꾸준히 실천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저는 병원에 입원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 마음 때문에서인지 신경정신과를 입원할 정도로 힘든 고비가 있었지만 견뎠습니다.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꾹 참고 견디며 조금씩 제가 계획한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처음에는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들도 느리지만 점차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물론 아직도 일반인들에 비하면 일상적으로 간단한 일임에도,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주저하거나 망설이다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런데 이젠 무력감으로 무조건 포기하진 않게 되었습니다.
일상회복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소중한 삶의 에너지를 계속 유지하려면 아마도 더 큰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려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저 또한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