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연대] 함께 할 준비되셨나요? ▶ [보통의 연대]란?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 혹은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캠페인이에요. 모든 사람은 성폭력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터뷰하고자 해요. 성폭력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세요. ▶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없이 성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강간, 강제추행뿐 아니라 시각적·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피해자의 거부에 대한 불이익 조치, 불법 촬영, 비동의유포,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 등이 포함됩니다. |
※ 성폭력 주변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윤문 및 편집 외에는 인터뷰 참여자의 말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논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인터뷰 취지에 맞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있을 경우 수정 또는 삭제 요청드리거나 관리자가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용기 있게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 참여자 분들께 비난과 질타보다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보통의연대] 011. 성폭력 생존자이자 주변인으로서 ‘나’부터 바꾸기로 한 푸른나비의 인터뷰
이번 인터뷰 주제가 주변인이라고 얘기하셨는데, 저는 당사자이기도 해요. 올해 생존자로서 ‘친족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를 청원합니다!(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1049)’라는 국민청원을 올렸던 푸른나비입니다.
Q. 어떤 계기로 친족 성폭력 관련 국민청원을 하게 되었나요?
미투 운동을 제가 굉장히 기다렸어요. 미투가 와서 너무 반갑고 즐겁고 행복했어요. 집회도 여러 번 나갔어요. 사회 각 층을 다 뒤흔들고, 여성 인권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이슈화돼서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친족 성폭력에 대해서는 아직 공론화가 미비해요. 그걸 너무 절실하게 느껴서, 누가 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제가 하고 싶어서 국민청원을 했습니다.
친족 성폭력이 ‘미투 운동의 사각지대’라는 기사도 봤어요. 너무 화가 났습니다. ‘친족 성폭력 OUT’이라고 검색해보면 주르륵 기사가 나오는데, 거기서 ‘친족 성폭력은 사각지대’라는 말이 나와요. 저도 느꼈는데, 그게 또 기사화되니까, 이 사각지대를 뒤엎어야만 진정한 미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Q.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나요?
우선, 주변인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나는 당사자니까 안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저도 맨 처음 성폭력 피해생존자 모임에 갔을 때, 저와 같은 친족 성폭력 생존자나 저와 다른 성폭력을 겪은 생존자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었거든요.
생존자분들이 오해를 받거나, 스스로 ‘짧은 치마를 입거나 밤길을 걸어서 그런 일이 생겼다’라고 말하며 울 때 굉장히 분노했어요. 어쩔 땐 ‘나도 그렇게 생각한 부분이 있지 않나?’ 반성도 했고요. 그 당시에는 피해자를 탓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면 생존자를 절대적으로 지지해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왜 이런 마음을 갖나’ 자기 검열을 했어요.
‘왜 내가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을까?’ 생각해보니, 그전에 저는 제 피해를 ‘반항을 안 해서. 내가 착해서. 어린아이였고 힘이 없어서. 대응할 수 없어서’ 이렇게 느꼈거든요. 그러다 보니 가해자의 잘못이 100%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어요. 가해자의 잘못이 100%인데, 100%로 생각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본 거예요. 아무리 친족 성폭력이고 피해 당시 어린아이였다고 해도, 생존자들은 대부분 ‘내 잘못이 크잖아요’라고 자기 잘못을 찾는 경향이 있잖아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그때 사회의 인식 부족, 그리고 생존자를 바라보는 다른 지인들의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그 사람들 마음속에 어떤 게 있을까, 깊이 생각하게 되었죠.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스스로 탓하는 말을 하는 생존자를 봐도 화가 났고요. 제가 그동안 그런 생각을 가지고 반백 년을 살아온 것도 화가 났습니다. ‘시각을 정말 바꿔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부터 먼저 바꿨습니다. 당장. 생존자인 동시에 주변인으로서 절대적으로 그들을 지지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Q. 스스로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생각하나요?
네. 제가 피해 경험을 드러내기 이전에는 저 또한 제 잘못이라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 시각으로 다른 생존자를 바라봤다면 저도 충분히 주변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주변인이란 주변에서 바라만 보는 사람, 방관자라는 뜻 같아요.
저도 그전에는 주변에서 바라만 봤죠. 제 피해 경험을 감추고, 피해 경험이 없는 것처럼 살려고 애썼어요. 분노는 했지만 바꿀 생각은 없었죠.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나 하나만 참으면 되는 일이라고. 누군가 바꿔주길 바랐지만, 바꾸기엔 좀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했죠. 그런데 그냥 저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누굴 기다리지 못하겠더라고요. (웃음)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금.
Q. 내 삶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어휴~ 0입니다. 너무 밀착되어 있어요.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괴롭습니다. (웃음) 일상을 유지해야 하는데, 너무 밀착되어 있습니다.
Q. 성폭력과 관련된 SNS나 기사를 공유하기도 하나요?
네. 제가 아는 분들이나 성폭력 피해생존자 모임에서 만난 분들 중에 저를 이해해주실 분이 계시면, 막 힘든 일이 있거나 기사를 공유하고 싶을 때 자주 공유를 합니다. 그게 저한테는 제가 할 수 있는 제일 큰일이라서요. 댓글도 썼습니다. ‘가해자 위주로 기사를 써라’라는 댓글을 기사에 달았어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친족 성폭력 피해생존자이기 때문에, 친족 성폭력에 대한 글에 굉장히 예민해요. ‘근친상간’이라는 표현에 화가 나서 ‘근친강간’이라고 바꾸라고 댓글을 쓰기도 했어요. 무슨 심리학 하는 사람의 동영상이었는데, 심리학 공부하는 분들이 아직도 그런 단어를 쓴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친상간’의 ‘상’ 자는 ‘서로 상(相)’이에요. 강간인데. 단어부터 제발 좀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웬만하면 조용히 문제제기를 합니다. 그런데 많이 드러내지는 못해요. 그 전의 삶이 워낙 드러낸 삶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은 굉장히 노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되게 어렵습니다. 그전에는 조용히 살다가 지금은 제가 막 드러내려고 하니까 조금 쑥스럽습니다(웃음).
Q, 스스로 자극을 받거나 힘들지는 않나요?
아니요. 그런 단계는 너무 지났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참았습니다. 너무 참아서, 남들이 힘들어할까 봐 그게 걱정이지,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Q. 미투 운동에 관해 주변 사람과 대화를 나눠본 경험이 있나요?
네. 매우 활발하게 합니다. 지금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저는 2017년부터 미투 운동에 관해 관심 있게 뉴스를 봤는데, 우리나라에 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되게 안타깝게 생각했어요. 외국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된 것을 보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간절하게 바랐어요. 제가 참다 참다 왜 아직 안 터지나 의문이 들어서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분들한테 직접 ‘왜 미투 운동 안 오냐고’ 질문한 적도 있습니다. 너무 답답해서. 저 원래 질문 같은 거 잘 못하거든요. 쑥스러워서.
2018년 2월에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터졌죠. 아싸~! 정말 신났습니다. 저 혼자 집 안에서 춤을 췄습니다. 저는 굉장히 오랫동안 성폭력을 고발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거든요.
왜 안 드러나나. 제가 성폭력 피해생존자 모임에 가게 되고, 막 얘기하게 되면서, 늘 의문점이었습니다. 왜 이런 게 드러나지 않을까. 왜 우리가 울면서, 숨어서 얘기해야 하나. 왜 우리가 안전한 장소를 찾아야 하나. 왜 우리가 피해있어야 하나. 가해자를 가둬야 하고, 가해자를 처벌해야 하는 상황인데, 왜 피해자들이 다 울고 있고 도망가듯이 숨어 있고 두려워하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그리고 남들이 성폭력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을 때 왜 이렇게 꺼리는지, 물론 저 자신도 꺼리면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해가 안 됐습니다. 이해 안 가는 일 아닌가요?
미투가 광화문 광장에서 울렸을 때는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어요. 사회 각층에서 미투를 다 했을 때는 분명히 제가 경험한 친족 성폭력에 대해서도 나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다렸습니다. 친족 성폭력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그냥 어디서나 들렸으면 좋겠다는 염원입니다. 분명히 이뤄지지 않을까요?
Q. 성폭력 피해자 간에도 서로 타자화하는 경험이 있나요?
글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불법촬영 피해의 당사자가 아니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데 안 가니까. 나는 그렇게 촬영될 리가 없으니까. 그건 남일 거야.’라고 타자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도 주변인으로서 머무는 삶이 되기 때문에 굉장히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 마음이 들면, ‘내 경험도 누군가가 남의 일로 볼 것이다’라는 생각이 같이 들죠. 그래서 굉장히 신중했던 것 같아요.
성폭력 피해생존자 모임에서, 제가 ‘친족 성폭력 생존자입니다’라고 말하자 어떤 분이 울면서 ‘저는 그렇게까지 심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가신 분이 있어요. 그분한테 다시 한번 얘기하고 싶은 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성폭력에 경중을 따질 수는 없어요. 그분이 그런 마음을 갖고 가신다면 자기 고통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을뿐더러, 자기 고통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면 남의 고통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자기가 정말 아팠다면 그 아픈 부분이 왜 아팠는지 한 번 생각해보고 자기 자신이 그 아픔을 온전히 해결해야지만 남의 고통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만약에 경중을 나눈다면 한 번 정도 자기 자신을 생각해봐야 해요. 아주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일이에요. 성폭력은 하나의 폭력이고, 폭력 안에는 모든 게 다 들어가기 때문에, 경중을 나누면 절대 안 돼요. 심각한 사람과 안 심각한 사람,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 오랫동안 봐온 사람을 나눈다면 다 주변인이 되는 겁니다. 저 또한. 생존자가 스스로도 주변인이 돼요.
가해자의 시선으로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셔야 해요. 고통의 무게뿐 아니라, 시선의 무게도 됩니다. 시선이 잘못되면 나도 똑같은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주변인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걸 꼭 염두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도 굉장히 조심합니다. 늘 저 자신을 점검합니다. 누군가를 타자화하지 않는지. 먼저 저 자신을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래 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늘 주변인으로 머물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모든 고통에 예민하게 촉각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내가 아는 사람이 성폭력을 겪었거나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경험이 있나요?
친구가 그런 적 있고요. 그때 많이 위로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위로만 했지, 해결은 없었습니다. 친구가 그런 일을 겪었다고 했을 때 같이 울어주고 안타까워하고 그랬습니다. 위로만 해주고, 그 당시에는 법적인 절차나 이런 걸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생각할 수조차 없었죠.
저는 성폭력 피해생존자 모임에 와서 법적인 절차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늘 참고 사는 게 일이었던 것 같아요. 데이트 폭력이라는 것도 몰랐고. 데이트 폭력이란 말도 저희 나이 때는 뭐, ‘남자가 좋아해서 한 일, 하룻밤 자면, 남자가 다 책임져주면 끝나는 일’ 이런 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폭력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성폭력 피해생존자 모임에 와서, 법적인 절차도 밟을 수 있고 폭로도 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신이 났겠어요.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잘 한다. 응원해주고 싶었습니다. 아쉽게도 제 일은 해결이 안 됐지만. 아무튼, 누구든지 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모든 사람들이 다 들고일어났으면 좋겠어요.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아져야 해요. 그저 아픈 이야기라고 직면하지 못하는 건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친구 얘기해도 되나요? 제가 친구에게 제 개인적인 피해 경험을 얘기했더니 그 친구가 제 얘기를 듣고는 갑자기 저와 만난 5시간의 기억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동안 나를 외면했던 모든 친구들, 평범하고 순탄한 삶을 살아온 친구들이 제 얘기를 들으면 놀라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거나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한 척 행동하는 것과 비슷하게, 이 친구는 좀 더 고차원적으로 아예 내 앞에서 기억을 잊어버린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차라리 외면하는 게 고맙다는 생각도 들어요. 외면해서라도 네가 행복하다면 그냥 행복해라. 솔직히 제 얘기 때문에 누군가가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것보단 차라리 외면해주는 게 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물론 제 아픔이 아프긴 하지만, 이 아픔은 다른 사람들과 연대해서 치유할 수 있으니까요. 제 아픔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앞으로는 제 얘기가 그렇게 기억을 잃을 정도로 나쁜 얘기가 아니라, 일상다반사로 있을 수 있는 얘기고, 미투의 사각지대도 아니고, 알고 보면 많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그때 외면했던 친구들이나 ‘부모를 원망하지 말라’고 얘기했던 사람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날이 오겠죠. 그래서 저는 더 드러나길 바랍니다. 말해도 되는 이야기인데 여태껏 숨기고 있었던 그 세월이 너무 통탄스러워서 화가 나거든요. 이런 이야기들이 자꾸 나와줘야 내 삶에도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말하기는 나만 좋은 게 아니고요. 듣는 이들에게도 인생이 바뀌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Q. 성폭력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역할로든 직접 참여한 경험이 있나요?
네. 다른 생존자분들이 법정에 가거나 하면 늘 지지해주고, 이야기 나눌 때 말로든 마음으로든 늘 열심히 응원했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제 일에 대해서 국민청원까지 했으면 저는 직접 참여했다고 봅니다.
집회, 시위는 늘 참여했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 작은말하기(성폭력 피해생존자 자조모임)에 오면서부터. 그 이후로 계속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저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 후원자입니다. 여성단체에서 하는 활동은 꾸준하게 참여해요. 그동안 저는 종교적인 활동을 많이 했던 사람이라 이런 주제를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여기 와서 처음으로 ‘LGBT’라는 말을 들었고 그게 무슨 약자인지도 처음 알았어요. 공부를 많이 하려고 애썼습니다. 성소수자 문제라든지, 소수의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내 일 같이 생각됐었죠. 저도 소수이기 때문에. 암수범죄. 소수 아닙니까? 그러니까 공감할 수밖에 없었죠.
끊임없이 생존자를 만나면서 생존자를 들쑤시고 다니죠. 말하자고. 그동안 전도는 전도사님이 한다고 전도는 절대 안 하던 제가 생존자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말하세요~ 말하세요~ 쑥스럽습니다만. 말하면 행복해집니다. 말해야 변합니다. 드러내십시오!
Q. 그밖에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경험이 있나요?
젊은 분들이 성폭력 피해생존자 모임에 와서 울고 계실 때마다, 제가 딸을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고, 나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런데 이 아픔은 제가 울어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물론 감정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제도가 바뀌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결연히 분노하고 있고요.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 하나만이라도 제 일상을 잘 유지하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있어요. 저는 그래요. 멀리는 못해요. 제가 막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머리가 아주 좋거나, 연구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가 제일 잘 만나고 있는 생존자들만이라도 우선 들쑤셔 놔서(웃음) 그들이 가해자의 잘못 100%라는 말을 머리로 외우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알고 다 들고일어서기를 바라요. 그분들이 ‘내 탓’이라는 생각, 마음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건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고요. 물론 개인의 불행으로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2차 피해는 결코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해요.
생존자는 충분히 일상도 잘 유지하고 누구보다도 더 잘 살 수 있다는 거, 누구보다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거, 인격이 완성되는 그 지점까지, 아무튼 생존자들 스스로가 정말 잘 지낼 수 있는 귀한 존재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제야 저도 저 자신을 귀하게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솔직히 애써야 해요. 그동안 너무 눈치 보고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피해를 겪은 사람처럼 안 보이려고 애쓴 세월이 너무 길었거든요. 제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폭력을 당한 상황이라서 두려움과 무서움이 많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소수가 같이 연대하면 분명 큰 힘을 얻을 수 있어요. 나만 구해지는 게 아니라 함께 헤쳐 나가고, 함께 힘을 기를 수 있다는 생각을 이번 일을 하면서 느꼈어요. 제가 계속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느꼈어요.
같이 얘기하고, 드러내고, 바라만 보는 주변인이 돼서는 안 돼요. 늘 어떤 폭력이든 성폭력 안에 있는 모든 상황에서 주변인으로 남아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져요. 나도 방관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늘 촉각을 세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Q. 인터뷰를 마치는 지금 시점에서는 내 삶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요?
0……0……0…….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터뷰로 참여하게 돼서 정말 감사하고요. 제가 주변인이자 당사자이기도 해서 이렇게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게 돼서 정말 좋아요. 얘기하면 할수록 저 스스로도 응원이 되는 것 같아요. 다들 이런 일들을 거침없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나, 여기 있어요. 함께 합니다!!
[보통의 연대] 릴레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이 인터뷰 진행자로 함께 하며,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2019 양성평등 및 여성사회참여확대 공모사업인 "성폭력,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 민지님이 진행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