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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연대] 016. 여자들한테 피해 안 주고 다니게 조심한다는 열여덟 살, 익명의 남고생의 인터뷰
  • 2019-12-05
  • 1385


[보통의 연대] 함께 할 준비되셨나요?


▶ [보통의 연대]란?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 혹은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캠페인이에요. 모든 사람은 성폭력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터뷰하고자 해요. 성폭력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세요.


▶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없이 성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강간, 강제추행뿐 아니라 시각적·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피해자의 거부에 대한 불이익 조치, 불법 촬영, 비동의유포,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 등이 포함됩니다.



※ 성폭력 주변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윤문 및 편집 외에는 인터뷰 참여자의 말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논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인터뷰 취지에 맞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있을 경우 수정 또는 삭제 요청드리거나 관리자가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용기 있게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 참여자 분들께 비난과 질타보다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보통의연대] 016. 여자들한테 피해 안 주고 다니게 조심한다는 열여덟 살, 익명의 남고생의 인터뷰


저는 열여덟 살 남고생입니다.


Q. 나와 성폭력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요?


중간? 아무래도 누나들도 있고 아는 애들이 많다 보니까 그냥 막 멀다고는 안 느껴져요. 딱 중간. 멀지 않다는 느낌은 있어요. 가까운 것도 아닌 것 같거든요. 딱 중간인데, 말로는 표현을 잘 못 하겠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Q. 스스로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냥 딱히 그런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뭐, 그냥 뉴스 듣고 그런 게 다라서. 지금은 별다른 생각이 안 나는 것 같아요.


Q. 어떤 뉴스를 들었나요?


남자가 데이트하고 나서 여자가 반대했는데 계속 때리고 성폭력 했던 뉴스가 제일 인상에 남아요. 데이트 폭력 같은 거.


Q. 그 뉴스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남자가 이상한 놈 같고 여자가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힘없이 당했으니까. 남자가 이상한 놈이고……. (가해자는) 처벌을 강하게 받고, 여자가 막 당한 것처럼 똑같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벌을. 강하게. 범죄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서요.


사진출처:서울신문


Q. 대중교통에서 성폭력과 관련한 상황을 본 경험이 있나요?


그런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저는) 버스를 많이 타서, 지하철이면 모르겠는데 버스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Q. 만약에 그런 상황을 목격한다면 본인은 어떻게 할 것 같나요?


일단은 모르는 사람이라 제가 딱 대처할 자신감은 없어요. 일단은 가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사이를 띄어 놓으려고 어떻게든 있을 것 같아요. 그 사이에. 가해자한테 말해서 띄어 놓는 것보다는 억지로라도 사이에 들어가 있고 그럴 것 같아요. 그래도 안 되면 주위에다가 말하고. 그렇게 학교에서도 배웠고, 그게 제일 효과적이니까요.


토마 마티외 작가의 『악어 프로젝트』에 소개된 실제 성폭력 상황을 목격했을 경우 대응하는 방법. 사진출처: 푸른지식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성폭력 꼼꼼 대응 가이드북」에서 재인용


Q. 학교에서는 성폭력에 관해 어떻게 교육을 받았나요?


그냥……. 남녀가 있는데 여자가 반대하는데도 남자가 강압적으로 하는 것. 아무 사이도 아닌데 그냥 남자가 아무 여자한테나 하는 그런 짓? 그렇게 배웠어요.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많이 배워서 심각성을 느끼죠. 하면 안 되는 것.


Q. 주로 신체적 접촉이 있는 성폭력에 관해 배운 것 같은데, 혹시 언어적·정신적 성폭력에 관해서는 배우지 않았나요?


네. 그것밖에는 안 배운 것 같아요. 아, 교육 1시간 할 때 앞에서 좀 간략하게만 설명한 것 같은데. 인상 깊은 내용은 없었고, 앞에 잠깐……. 연락하는 것? 스토킹? 그런 정도만 들어서 기억에 들어오진 않았어요.


한국여성의전화 『데이트 폭력 대응을 위한 안내서』에 수록된 체크리스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여성에 대한 폭력은 신체적, 성적 폭력뿐만 아니라 언어적, 비언어적, 경제적, 정서적 폭력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에 대한 교육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진출처: SBS뉴스


Q. 미투 운동에 관해 주변 사람과 대화한 경험이 있나요?


제가 그런 쪽은 잘 몰라서 기억이 안 나요.


저는 그냥 뉴스에 나오면 애들이 욕하는 걸 듣죠. 나쁜 놈이라고. 그런 거 아니면 딱히 (성폭력에 관한) 이야기는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Q. 누나나 여성 친구들이 성폭력, 성차별에 관해 이야기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그냥……. (성폭력이나 성차별 이야기를 하는 게)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들고,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넘기는 것 같아요. 성폭력은 걱정할 수 있으니까. 나중에 혼자 살 때도 걱정되니까. 조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뭔가 걱정되고.


Q. 여성들이 조심해야 할까요?


남자들이 안 하면 되는데, 안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까요. 안 하는 사람도 많은데 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누나나 여성 친구들이) 조심했으면 좋겠어요. 당연한 건 아닌데 이상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주위에 쳐다보는 사람이나 갑자기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큰길로 나가거나. 아니면 너무 위험하면 소리치거나.


'여성이 조심해야 한다'는 인식은 여성 안심 귀갓길, 여성 안심 택배함, 여성 안심 화장실 등 국가 정책 및 공공서비스에도 반영되어 있다. 여성 안심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여성은 일상 생활에서 안전하지 못하거나 최소한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인가구의 범죄피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1인 가구가 남성 1인 가구보다 범죄 노출 위험이 85.5% 더 크고, 33세 이하 여성 1인가구의 주거침입 피해 가능성은 남성에 비해 11.226배 높고, 개인범죄 피해 가능성은 남성에 비해 2.27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출처:경찰청(왼쪽상단), 우먼스플라워(오른쪽상단), 내손안에서울(왼쪽중간), 연합뉴스(오른쪽중간), 여성신문(하단)


Q. 예를 들어 큰길로 다니지 않고 골목길로 다니거나 밤늦게 다니는 여성은 조심하지 않은 걸까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경우에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집이 골목 쪽에 들어가야 한다면 그럴 수 있으니까. 늦게 끝나서 늦게 오는 경우는 어쩔 수 없으니까.


Q. 남성도 성폭력과 관련해서 조심하는 점이 있나요?


저는 여자들한테 피해 안 주고 다니는 게 제가 (조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평범하게 다니는 것 같아요. 피해만 안 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말조심하고. 제가 친한 사이가 아니면 여자를 좀 무서워해서 잘 안 쳐다보고 말도 거의 안 해요. 처음에 거리를 좀 두고 있는 것 같아요.


(남자는) 여자들한테 피해만 안 끼치게 행동하면 되는 것 같아요. 그것만 조심하면 되는 것 같아요.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만 25~59세 1인 가구 고객 2천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20~50대 모두 '안전' 걱정이 3-4위로 나타났으며 안전상 어려움을 체감하는 여성 1인가구가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남성은 20~50대 모두 '안전' 걱정이 6위로 낮게 나타났으며 '안전상 어려움이 없다'고 응답한 남성 1인 가구 비중이 20%를 초과했다. 사진출처:KB금융 경영연구소


Q. 성폭력이 걱정돼서 주변 사람의 행동, 옷차림을 지적하거나 통제한 경험이 있나요?


아는 여자애가 파인 옷을 좀 많이 입어요. 그냥 나랑 놀 때나 편하게 갈 때는 대충 입으라고 그런 지적밖에 안 한 것 같아요. 여성이 파인 옷을 입으면 안 되는 건 아닌데, 누가 그렇게 입고 나오면 계속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느껴져서요. 그 뒤로부터는 계단에서도 시선이 느껴져서요. 제가 (파인 옷을) 입지도 않았는데 그 시선이라는 게 느껴지니까 그냥 걱정되는 식으로 한 말이었어요. 통제라기보다는 그냥 사람 많은 데서는 조금씩이라도 줄이라고 말한 거예요.


Q. 그 경우에 경고를 들어야 하는 쪽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람 아닐까요?


그래야 하긴 하는데요. (저도 본질적인 문제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있다고 생각해요.


친구들한테는 경고한 적 있어요. 축구 대회였는데요. 상대(측 선수들의) 여자친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명인가 그렇게 옷을 입고 있었어요. 애들이 계속 그쪽으로 공을 차는 것 같더라고요. 여자애들 보려고. 제가 그때 주장이었는데, 기분 나빠하시는 게 보여서 가서 사과드리고 온 것 같아요. 애들 보고도 사과해, 하고 사과시켰어요. 아직 한 살 어린 애들이라, 후배들이 아직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하면 안 되니까.


과거 불법촬영 근절 광고는 피해자에게 조심하라고 하거나, 피해 상황을 불필요하게 재현하거나, 피해자의 불행과 고통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아 대중에게 비판과 문제제기를 받았다. 최근 캠페인 광고는 불법촬영을 하는 가해자에게 시선을 되돌려 보내고 불법촬영의 불법성을 알리는 내용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사진출처 :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Q. 내가 아는 사람이 성폭력 피해자라면 어떻게 할 것 같나요?


위로 많이 해주고, 자주 연락할 것 같아요. 다시 그런 일이 있을까 봐 걱정을 많이 할 것 같아요. 제가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라 그냥 위로되는 말들 해주고, 트라우마 같은 거 고쳐주려고 하고, 같이 어딜 가주거나, 힐링시켜주거나, 그럴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해줄 것 같아요.


Q. 성폭력 피해자는 너무 슬프고 힘들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나요?


네. 아무래도 (피해를) 당한 사람도 슬플 것 같아서요. 다가가서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는 게 제일 많이 위로가 되는 것 같아서.


Q. 내가 아는 사람이 성폭력 가해자라면 어떻게 할 것 같나요?


어이가 없을 것 같아요. 실망이 일단 제일 클 것 같고, 한심할 것 같기도 해요.


Q.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데, 지금은 내 삶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요?


가까운 것 같아요. 이야기하다 보니까. 내 주변에 아는 애들도 그런 일을 겪을 수 있겠구나, 생각도 들고요. 그냥 가까워진 것 같아요. 중간이 아니라.


(사진)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보통의 연대] 릴레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이 인터뷰 진행자로 함께 하며,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2019 양성평등 및 여성사회참여확대 공모사업인 "성폭력,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 율빵님이 진행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