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연대] 함께 할 준비되셨나요? ▶ [보통의 연대]란?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 혹은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캠페인이에요. 모든 사람은 성폭력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터뷰하고자 해요. 성폭력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세요. ▶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없이 성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강간, 강제추행뿐 아니라 시각적·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피해자의 거부에 대한 불이익 조치, 불법 촬영, 비동의유포,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 등이 포함됩니다. |
※ 성폭력 주변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윤문 및 편집 외에는 인터뷰 참여자의 말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논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인터뷰 취지에 맞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있을 경우 수정 또는 삭제 요청드리거나 관리자가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용기 있게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 참여자 분들께 비난과 질타보다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보통의연대] 017. 성폭력에 대항해본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도와줄 힘을 갖게 되었다는 충열의 인터뷰
저는 여성주의 현대미술가 이충열이라고 합니다.
Q. 성폭력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본 경험이 있나요?
네. 매우 많고요. 일상에서 많이 접하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택시 운전을 하시는 60대 여성분이 승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는데, 판사가 60대 여성은 사회적 경험이 많아서 성적 수치심이 적을 거라면서 또 가해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선고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Q. 성폭력과 관련된 기사 등을 공유하거나 댓글을 쓰기도 하나요?
일상인 것 같아요. 좀 전에도 페이스북에서 보고 공유를 하고 그랬어요. 제 주변 사람들은 유유상종이라서 (웃음) 다 성폭력 사건들에 대해서 분노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많이 공유하고 분노를 표현하고 있어요.
Q. 성폭력과 관련된 책이나 작품도 보았나요?
네. 매우 많은데요. 성폭력 생존자이신 필자가 일다에서 되게 오래 연재하셨다가 책으로 나온 『꽃을 던지고 싶다』도 있고. 아니면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같은 책도 보고. 성폭력에 대해서 조사한 책들.
오히려 연극 같은 데서는 잘 못 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재현의 윤리에 관해서 공부하고 고민하고 있는 중인데요. 성폭력 생존자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연극처럼 직접 관객하고 배우가 만나는 자리에서는 그게 더 고민이 되어서 그런지,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Q. 미투 운동에 관해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본 경험도 있나요?
네. 매우 많습니다. 제 주변에는 대부분 여성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고 젠더 감수성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아서 드디어 미투 운동이 시작된 것에 대해 되게 환영하는 분위기예요.
그런데 좀 첨예했던 게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었어요. 가까운 지인은 아니지만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나 갈등을 보면 피해자의 입장보다는 가해자 부인의 입장에서 고민하거나 의심하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았어요. 그렇게 섬세한 문제로 들어가면 자기가 처한 위치에 따라서 갈등들이 있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돼서 충격이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어요.
Q. 대중교통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는 장면을 본 경험이 있나요?
제가 피해를 당한 경험도 있어요. 중학교 때. 제 경험을 이야기해도 될까요?
제가 중학교 때 이사를 했는데, 전학이 되기 전에 전철을 많이 타야 했어요. 전철에서 내리려면 자리를 바꿔야 해서 제가 ‘자리 좀 바꿔주세요’ 하면서 문 앞까지 갔는데, 저한테 친절하게 자리를 양보해준 어떤 아저씨가 저를 뒤에서 골반을 잡고 끌어당기더니 안 좋은 행동을 했어요.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저에게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입에 막 침을 모았어요.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가해자한테) 침을 뱉고 내려서 도망쳤는데 정말 너무 무서웠어요.
저를 잡아서 죽일 것 같은 공포를 느꼈지만, 제가 성폭력에 대해서 대항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 이후에도 저에게 되게 큰 자신감 같은 게 되었어요. 그런 행동이 엄청 나쁘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거든요. 나쁜 행동을 당했을 때 그것에 대해서 반드시 대응할 수 있어야 하겠다는 필요성도 좀 일찍 알게 된 것 같아요.
그 이후에 대중교통에서 성폭력을 하려는 사람을 보거나 피해자분이 어떻게 못 할 때 (그런 상황에서 보통은 되게 얼게 되잖아요) 제가 좀 도와드릴 수 있게 된 힘을 갖게 한 첫 번째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Q. 공중 화장실에 있는 구멍을 화장지, 스티커, 실리콘 등으로 막아놓은 것도 본 적 있나요?
네. 어딜 가든 공중 화장실을 가면 다……. 특히 휴게소나 이런 화장실에는 끝도 없이 많죠. 그런데 더 충격이었던 건 남성들은 그런 것에 대해 아예 모르시더라고요. 본 적이 없다고. 그래서 제가 막 사진을 찍어서 보여드리기도 했었어요.
Q. 성폭력이 걱정돼서 주변 사람의 행동, 옷차림 등을 지적하거나 통제한 경험이 있나요?
보통은 저는 그냥 남자든 여자든 몸은 몸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성적으로 해석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노출이라 하는 옷차림을 봐도 특별히 지적하거나 제한하거나 하진 않는데, 딱 한 번이 기억나요. 물론 더 있을 수도 있지만.
예전에 ‘슬럿 워크(Slut Walk, 잡년 행진)’라는 게 있었어요.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는 건 슬럿(Slut, 잡년)처럼 입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한 경찰관에 대응해서 세계 곳곳에서 했던 시위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했었거든요. 그때 저도 참여했는데, 저랑 같이 공부하던 아직 법적으로 미성년자인 친구가 되게 용감하게 상의 탈의를 했어요. 저는 그래도 조금 옷을 입었는데 (웃음)
그때 그 행동을 제지하진 않았지만, 이게 사진 촬영이 됐을 경우에 인터넷에 유포되면 그 이미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어떻게 쓰일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험성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때 제가 선생님이라는 위치도 있었고, 또 그 친구가 미성년이고 제가 성년이라는 점도 있어서 결국은 그게 제재의 효과가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성폭력 피해를 겪을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내 생활에 제약이 생기기도 하나요?
뭐, 특히 여름에 옷을 입을 때. 저는 집에서 보통 옷을 거의 안 입고 지내는데, 나갈 때는 사회적인 어떤 시선 때문에 옷을 입어야 하잖아요. 그 옷이라고 하는 것이 되게 편한 옷도 있지만 불편한 옷들도 많고. 옷을 입는 것 자체가 여성은 성폭력이라는 것을 염두 안 할 수가 없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슬럿워크 외에도 반성폭력 집회나 시위에 참여한 경험이 있나요?
네. 작년 8월 14일. 날짜도 이야기할 수 있어요. 하필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 대해 무죄라는 2심 판결이 났었잖아요. 그때 바로 뛰쳐나와서 법원 앞에서 함께 시위했어요. 미투 운동이 일어난 이후에 크게 행사하는 것들이 있을 때, 시위가 있을 때, 일정이 없으면 거의 나갔던 것 같아요.
특히 작년에는 엄청 더운 날에도 몇 회에 걸쳐서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를 했었잖아요. 혜화역 시위라고 불렀던 (불편한 용기) 그 시위도 참여한 적이 있어요.
Q. 혹시 반성폭력 운동 단체에 후원도 하시나요?
네. 정기적인 후원은 못 하고, 텀블벅 같은 걸 하거나, 어떤 사건이 이슈가 되었을 때 가끔 모금을 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럴 때 제가 소식을 접하면 후원을 몇 번 한 적이 있어요. 많지는 않고…….
Q. 그밖에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기억에 남거나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경험이 있나요?
제가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일인데요. 어느 학교 선생님이 학생에게 성희롱적인 언어를 쓴 거예요. 그 선생님 세대에서는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관용적으로 쓰였던 안 좋은 표현이었죠. 그래서 피해 학생이 정당하게 문제제기를 했어요.
대부분 성추행이 아니라 성희롱, 언어적인 성폭력의 경우에는 아직도 문제의식이 없는 분들이 많아요. ‘그냥 실수다’라고 넘어간다든지 ‘우리 때는 아니었다’라고 한다든지. 특히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생각하면서 큰 잘못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럴 때 가해하신 분이 그것이 잘못임을, 그리고 명백한 폭력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역할 같아요. (피해자와 가해자) 두 분을 아는 경우나 가해자를 아는 경우에요.
학습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Q.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나요?
성폭력 주변인이라는 말에 대해서 고민을 좀 하게 돼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어쩌면 지정 성별 여성으로 태어난 것만으로, 그리고 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으로 인식되는 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성폭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대체 왜 사람을 남성, 여성으로 나눠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특히 여성에게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당연하게 폭력을 행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잘못된 성욕에 대한 학습과 제대로 관계 맺지 못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환경들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성폭력 문제는 단지 성폭력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문제예요. 그래서 모두 다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Q. 내 삶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되나요?
내 삶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는 없다. 왜냐하면 저는 여성주의 현대미술가로서 여성의 눈으로 본 세상에 대해서 계속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하거든요. 그랬을 때 제가 여태까지 여성으로서 경험했던 것들이 다 녹아들어 있고,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리고 나를 여성으로 성적인 존재로 보는 시선들로부터 영향받은 것들이 많기 때문에 거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경청하고, 공감하고, 연대하기!
[보통의 연대] 릴레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이 인터뷰 진행자로 함께 하며,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2019 양성평등 및 여성사회참여확대 공모사업인 "성폭력,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 김엘라별이님이 진행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