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인턴 채연입니다. 1월부터 2월 중순까지 상담소에서 했던 인턴 활동이 끝난지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 벌써 그 순간들이 그립습니다. 함께했던 활동가분들과 인턴 민아님, 예뻤던 상담소 건물, 평화로웠던 합정 동네와 아침 출근길, 점심때 마셨던 맛있는 커피 모두모두 너무 그리워요. 이런 마음을 담아, 지금까지 상담소와 함께 했던 활동들을 정리해보고 소감을 나누고자 합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찍었던 사진>
제가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와 연계하여 자원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였습니다. 9월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상담소에서 자원활동을 했고, 후원의밤이나 페미시국광장, 한해보내기 등 여러 행사의 회의와 준비를 같이 하면서 활동가분들의 일을 가까이에서 보고 직접 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활동가분들이 피해자 지원 과정에서 느끼는 여러 고민들을 들으면서, 현장에서 활동하는 것의 중요성과 법과 제도 뿐만 아니라 사회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꿈꾸는 사회를 지향하며 활동하는 단체와 함께하고 있고, 제가 맡은 일이 사회를 바꾸는 데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보람과 열정을 갖게 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학교 생활이 지겨워질 무렵, 상담소 자원활동은 제 일상을 버텨내는 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학교 생활과 병행하느라 여러 행사들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점, 일주일에 한번 출근하는 자원활동의 특성상 할 수 있는 업무가 단기적이고 한정적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원활동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던 경험들이 쌓이면서 더 오래, 깊이 단체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저는 씨티-경희 NGO 인턴십에 지원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로 배정받아 인턴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상담소로 10시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것이 ‘아침 나눔’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시간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아침 나눔에서는 어제의 일정을 돌아보며 각자 어떤 일을 했는지, 그에 대한 짧은 소감 등을 나누고 오늘 어떤 일정이 있는지를 공유합니다. 그리고 업무에 어려운 점이 있으면 서로 도움을 구하고 잘 해결된 사건이 있으면 함께 축하하며 기쁨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저는 주어진 몇 개의 업무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가 어떤 목표를 향해 활동을 하는지를 매번 상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개월의 인턴 활동에서 주로 맡게 된 업무는 정기 총회 준비와 수요 시위 준비, 2020 법률실무수습 준비였습니다. 가장 먼저 했던 일은 1월 31일에 있을 제29차 한국성폭력상담소 정기 총회 준비였는데, 준비위원회에 소속되어 자료집 제작과 정회원 전화 업무, 진행 PPT 제작 등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총회 당일 진행 오퍼레이션을 맡았습니다.
<자세한 후기가 궁금하시다면 링크 http://www.sisters.or.kr/load.asp?sub_p=board/board&b_code=3&page=1&f_cate=&idx=5412&board_md=view 로!>
그리고 2월 12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관하는 제 1426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 기획팀으로서 전반적 준비와 진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방문하기도 하고, 제1424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의 여러 모습들. 혹시 안가 본 분들이 있다면 꼭 가보시길 바라요!>
이렇게 사전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포스터와 슬로건을 디자인하였고, 시위 당일 민아님은 사회를 맡고 저는 자유발언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전에 여러 시위에 참여할 때마다 늘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앞에 나가서 발언을 하고 싶었는데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주저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꼭 저의 경험과 목소리를 전달하고 연대하고 싶었는데 인턴을 하면서 좋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전시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과 이에 맞서 싸운 여성들의 힘을 전달하고 싶어서 전시 성폭력 관련 논문과 책들을 찾아 읽었고, 영화 <김복동>을 보며 받은 큰 감동을 글에 녹여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월 12일 당일, 비를 뚫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저는 자유발언을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대중 앞에서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말을 했다는 경험 자체로 성장한 기분이었고, 함께했던 활동가분들이 멋있었다고 응원해주셔서 무척이나 뿌듯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자세한 후기는 여기→를 누르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sisters.or.kr/load.asp?sub_p=board/board&b_code=3&page=1&f_cate=&idx=5435&board_md=view>
그리고 상담소에 오는 로스쿨 실무수습생들이 분석을 하게 될 성폭력 판례 수집 업무를 맡아 2017년부터 현재까지 대법원을 제외한 고등법원과 하급심 사건들 가운데 성폭력 사건들을 모았습니다. 판례를 수집하며 판결문을 쭉 읽어봤는데 여전히 ‘피해자다움’에 근거하여 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하는 판결문들을 여럿 볼 수 있었고, 가해자의 사회적 평판과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감경 사유들도 있었습니다. 또 실무수습분들과 함께 서울중앙지방법원 성폭력 재판부를 방청하기도 했는데, 뉴스나 책으로만 접하던 사건들을 직접 보고 들으며 문제의식을 더욱 날카롭게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굵직한 업무들 외에도 문서 작업이나 전화 업무, 상담통계 시각화 작업과 같이 다양한 활동을 경험했습니다.
활동가분들과 다 같이 모여 그간의 활동을 정리한 발표와 소감을 나누는 것으로 저의 인턴 활동은 끝이 났습니다. 상담소와 함께했던 매 순간순간들은 배우고 성장했던 순간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알차게 많은 활동을 했고 빠짐없이 배우고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활동 보고의 현장>
4개월 간의 자원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인턴 기간 동안 이루고자 한 목표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상담소의 활동을 현장에서 더 깊고 다양하게 이해하고 참여하자.” 그리고 둘째, “상담소에 비치된 여러 자료들을 읽고 스스로 공부하며 여성 인권에 관한 나의 문제 의식을 더 날카롭게 만들자.” 결과적으로 말하면, 저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첫번째 목표는 매일 출근하여 주요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 소화하면서 상담소의 활동들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었기에 달성되었습니다. 두번째 목표 또한 업무 외 여유 시간과 퇴근 이후 시간들에 다양한 자료와 책들을 읽으며 스스로 공부했고, 활동가분들과 사건들에 대해 대화하고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배웠기에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담소에서 함께 일했던 활동가분들은 마치 각양각색의 나무들 같았습니다. 각자 모양도 다르고 개성도 뚜렷하지만, 상담소라는 하나의 조화로운 숲을 이루며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상담소라는 숲은 조금씩 넓어지며 사회를 바꾸고, 도움이 필요해 찾아온 존재들에게 그늘을 내어주고 쉼을 선물해주는 공간입니다. 처음 상담소라는 숲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저는 하나의 씨앗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상담소에서 인턴으로 활동했던 매 순간 성장했고, 상담소에서 보낸 시간들은 제게 힘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자신이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활동가들을 보며 저도 오랫동안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인턴이 끝난 지금,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과 열정이 충만한, 앞으로 쑥쑥 성장할 일만 남은 작은 나무가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을 선물해주신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씨티-경희 NGO 인턴십 프로그램에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상담소와의 인연이 쭉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고 또 만나요! ♡
<온몸으로 행복함을 표현하는 인턴 채연>
<이 후기는 제14기 경희-Citi NGO 인턴십을 통해 상담소에 오신 두 분의 인턴활동가 중 채연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