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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성폭력상담소 29주년 : 활동가 환갑맞이 질문코너 2
  • 2020-04-16
  • 1132

지난 2월 25일, 한국성폭력상담소 SNS에 ↓이런 게시글이 올라왔었는데요. 혹시 기억하시나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환갑을 맞은 두 활동가에게 무엇이든지 물어보는 코너였습니다.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 등 다양한 채널에서 들어온 18개의 질문을 활동가가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9주년 생일을 맞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질문의 대답이 업로드 될 예정이오니, 두 사람의 인터뷰가 궁금하신 분들은 매일 오후 6시를 기대해 주세요!

인터뷰이: 사자(), 지리산()

인터뷰어: 닻별()

 

Q4. 선배활동가에게 묻는다! 사자, 지리산이 기억에 남는 선배활동가?

 학연이 없어서 선배라 할 만한 사람이 없고. 민우회에서 활동할 때 회원으로서는 거의 초창기 회원이었어요. 물론 조금 기수가 빠른 분도 있긴 했지만 거의 같이 움직였어서. 잘 모르겠네?

  먼저 활동한 사람이면 아무나 괜찮아요.

 먼저 활동한 사람?

 우리가 함께 아는 선생님이면 민우회의 생기(유경희)선생님, 윤정숙 선생님.

 민우회에서 대표였던 생기가 있죠.

 어떤 분이었어요? 어떤 점이 기억에 남았어요?

 아, 생기는 처음에 상담 공부할 때 스텝으로 있던 분이었어요. 나중에 스터디도 계속 하고. 이를테면 그 선배가 상담 공부하는 걸 옆에서 봤는데 나중에 상담심리사 하는 과정까지 쭉 보고, (민우회) 상담소장이 되는 것도, 그 다음에 민우회 대표가 되는 것도 봤죠. 공부를 엄청나게 많이 하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상담자의 역할을 잘 하시더라고요.

  따뜻하게 다른 활동가들을 대해줬죠.

 그래서 나의 결론은 흉내 내기 어렵다. (웃음) 공부를 엄청나게 많이 하더라고요. 나는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이어서 신기했죠.

 수채화 그림도 그리시고.

사  그러네. 다양한 재주가 있고. 하여튼 그 분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나누는 사람이에요. 마음에 든다 하면 입은 옷도 벗어주니까. 그래서 천상 상담 전문가인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운동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운동가!

 투쟁가는 아니지만 은근히 즐기는 운동가이기도 했죠.

 그런 선배들이 계신다는 게 정말 큰 힘이죠.

 지리산도 같은 사람이 기억에 남아요?

  그 분은 활동하면서 함께 했던 분이고, 선배라고 한다면 그 당시에는 이효재 선생님이나 한명숙 선생님 같은 분들이 앞에서 계셨고, 바로 위에 최영애 선생님(상담소 초대 소장 / 현 인권위원장) 같은 경우는 처음에 같이 상담소 만드는 일을 같이 했었고. 연령대가 있는 분들이 상담소 활동도 같이 했었어요. 특히 최영애 선생님은 성폭력 특별법을 제정할 당시에도 NGO 활동가가 한국 사회의 정책을 바꾸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셨어요.

↑ 지리산의 여성운동 선배이자 1세대 여성운동가 이효재 선생님. (출처: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21년 전 자신을 강간한 이웃집 아저씨를 살해한 사건의 공동대책위(김**사건 공대위)를 처음 꾸리셨던 전주의 박상희 목사님이 계시는데, 그 분은 민주화 운동을 하셨었어요. 이 사건을 진행하는걸 꼬꼬마 활동가로서 옆에서 보고 배우고 그랬었는데. , 저럴 때는 저렇게 주장하는 거구나. 재판장에서나 어디에서나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할 수 있고, 자기 주장하는 것 자체가 여성 인권을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그런 분들이 각 단체마다 다 계셨었어요. 연대하면서 그분들의 장점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는 게 큰 공부였고 그랬던 것 같네요

.




Q5. 사자는 지역활동을 경험해 보았는데, 지역활동과 서울 활동의 차이가 있나요? 있다면 어떤 차이가 있나요?

* 사자는 고양파주여성민우회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역 활동은 되게 가족적인 분위기로 많이 움직이는 것 같아요. 회원들 사이의 관계도, 모임 꾸려질 때도 그렇고.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활동을 많이 하고. 심지어 멤버 한 명만 이사 가도 모임이 와르르 깨지는 경험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만큼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상담소에 오면서 서울 활동을 했을 때에는 오히려 일 중심적으로 많이 움직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때때로 어떤 활동가는 그것 때문에 외롭다고 하기도 하고. 하지만 둘 다 장단점이 있죠. 현실적으로 두 개가 같이 가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Q6. 오래 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3가지

 오래 일하지 않은 저로서는 참…….

지  오래 일했잖아~

 오래 일했죠~ 이제 17년차 활동가인데.

사  오래 일했다고 잘난 척을 했는데 지리산이 30년 됐다니까 쪼그라들어가지고 (웃음) 오래 일했다고 말하기에는 참…….

 그래도 여성 운동에서 10년이 넘게 활동을 하는 건 의지력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자기가 즐거운 일이나, 자기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씩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늘 갈등이 있고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있잖아요. 활동이라는 건 내 선택지로 선택되는 경우보다는 조직이 선택한 방향으로 가던가, 그렇지 않으면 (그 선택을) 해야 될 것 같아서 하기도 하는데. 저는 해야 될 것 같아서 하는 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떻게 풀 것인가. 자기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여유를 가지고 다른 것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나이가 들어도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전 나이가 들면 저절로 생기는 줄 알았더니 안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끊임없이 노력도 하고 지적을 받아야 되는데, 지적받으면 일단 기분이 나쁘거든. 그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그건 뭐 젊은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해요. 스트레스를 푸는 나만의 방법은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아요.



↑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시행했던 3월,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 전 아침체조하는 두 당직 활동가. (2020)

 아까 세 가지 이야기 하라고 하셨죠? 생각해보니까 첫째는 동료! 사람이 제일 중요하니까. 관계 맺음이 전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두 번째로는 배움. 끊임없이 뭔가를 배워야지 나아갈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마지막으로는 역시 건강인 것 같아요.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그러기 위해서 아까 사자가 이야기한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 것인가,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될 것이고. 취미 같은 것들이 중요하겠죠.

 정말 놀랍게 지리산은 정리해서 정답을 말하는데 달인인 것 같아.


Q7. 다음세대의 여성운동이 어떤 것을 이루거나 지향하기를 바라시나요?

 생각해보진 못했는데요, 왜냐하면 현역 활동가로서 같이 호흡하고 있어서. 그런데 30년 전과 지금을 생각해보면 그때의 활동가들의 마음이 다른 것 같아요. 그 때는 이 일을 직업으로 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대의를 위한 운동의 일환이었죠. 그 당시에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 너무나 필요했었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과연 지금도 유효한가는 의문이예요.

  상담소에서 받은 첫 월급이 20만원인가 그랬었거든요. 내가 하는 이 일이 의미있는 일이라는 점이 그 당시에 우리가 일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면, 이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생계를 책임지고 노후도 생각하면서 이 일을 해야 되잖아요. 저는 이게 지금 세대 활동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대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춘 상태에 있어야지만 내담자를 만나더라도, 또는 어떤 운동을 기획하고 해나갈 때도 힘이 있는 건데. 밤샘하면서 할 수만은 없다는 점에서 운동의 당위성과 우리가 시간적-물리적-정서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의 경계점정할 필요는 있지 않나 싶어요. 가끔씩 저도 혼란스럽거든요. '이건 이런 당위가 있는데. 우리가 밤을 새워서라도 해야 되지 않나?' 했다가도 '이제는 다르게 접근을 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구성원들의 삶도 생각해야하지 않나?' 하는 고민을 해요. 전체의 삶에는 사회 구성원이 행복할 수 있게 사회를 바꾸는 정의로운 일만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구성원 하나하나가 건강하고 행복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인권운동을 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포함된 거예요. 참 어렵긴 한데 그런 지향을 갖고 가야되지 않나 싶어요.

 굳센 의지나 당위성 만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든 아닌 사람이든 상관 없이 의지를 불태워 활동을 하는 게 좋은 거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열등감 같은 게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많이 내려놓으려고 하죠.



↑ 굳센 의지력으로 활동하는 지리산과 생긴 대로 살고 싶은 사자. (2008)



지  활동을 하면서 얻은 소중한 자산이 이런 친구를 만났다는 건데, 사자하고 저는 약간 다른 스타일이죠?

사 , 많이.

(웃음) 정말 다른데, 예를 들면 저는 파트너와 연애할 때 연애편지에 이렇게 썼어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랍니다!' 라고요. 그러니까 한 번 사귀기로 했으면 끝까지 사귀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의지로 극복하는 거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 사람이 사자예요. 우리가 운동을 하면서 지켜야 할 기본과 핵심을 잘 아우르고 가져오는 사람이거든요. 우리 나중에 언제 펼쳐놓고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되게 의지를 따라서 일하는 스타일인 것 같지만 또 보면 그렇지도 않고요.

 난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게 좋다니까. 왜냐하면 의지가 우선인 사람도 있는 거고, 나처럼 의지가 생길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아예 안 생기는 사람도 있는거고.

 나는 이런 자유로움이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어야 취할 수 있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  아니, 어떤 일에 의지가 막 생기면 할 수도 있는 거지만 아무리 당위성을 대면서 해야 한다고 해도 절대로 몸이 안 움직이고 그러면 어떻게 의지를 세워서 일을 하겠어요? 그래서 내가 당위를 싫어하잖아.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다른 사람이 함께 일하고 있을까. (웃음)

사  원래 다른 사람이 좋은 거야. 같은 사람이면 웬수지.

 맞아요~ 비슷한 사람들끼리 있으면 금방 소진되고 금방 끝나죠.


환갑을 맞은 두 활동가 인터뷰는 내일 저녁 6시에 계속됩니다. 내일 이 시간에 만나요!

 

기획/인터뷰/편집 : 닻별

녹취록 작성 : 찔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