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한국성폭력상담소 SNS에 ↓이런 게시글이 올라왔었는데요, 혹시 기억하시나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환갑을 맞은 두 활동가에게 무엇이든지 물어보는 코너였습니다.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 등 다양한 채널에서 들어온 18개의 질문을 활동가가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9주년 생일을 맞아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질문의 대답이 업로드될 예정이오니, 두 사람의 인터뷰가 궁금하신 분들은 매일 오후 6시를 기대해 주세요!
인터뷰이: 사자(사), 지리산(지)
인터뷰어: 닻별(닻)
Q8. 이미경 소장님께 들었던 첫 강의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것들'. 무척 감동받았던 강의였는데요, 이 표현을 자주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지리산의 심장은 몇 개인가요? (지리산 스릉흡느드)(야광봉)
↑ 제30기 성폭력상담원기본교육에서 인사중인 지리산. 오른쪽은 부소장 오매. (왼, 2019)
지 너무 감사한데요. 이게 의지로 됐다기 보다는 이 현장이 저한테 주는 선물인 것 같아요. 반성폭력 운동 현장이라고 하는 것이 진짜 제 가슴을 뛰게 했고 그게 몇 개인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웃음)
사 지리산은 매일 새로운 심장이 뛰는 것 같습니다. 어제 뛰던 심장이 아닌 것 같아요.
지 그런데 아침에 출근할 때 생각하면 아, 오늘은 이런 일이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있고요. 또 상담소에 가면 사람들하고 만나겠구나, 이런 설렘이 있어요. 단순히 일이 설레거나 다른 사람이 설레게 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을 주면서 제 심장을 뛰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닻 지리산 심장이 몇 개인지는 활동가들도 궁금한 주제인 것 같네요.
Q9. 포기하고 싶었을 때 힘이 되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사 지리산은 없다고 본다.
지 있지 왜 없어~
사 좀 힘들어 할 때는 있었지만 지리산 앞에서 포기란 없다.
닻 그러면 마음이 꺾이는 순간들?
사 많이 힘들 땐 있었죠.
지 일이 힘들진 않죠. 일은 정 힘들면 내일 해도 되지만 내일까지 미룰 수 없는 건 결국 관계인 것 같아요.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활동하는 공간이다 보니 우리 안에서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갈등이라고 하는 구조가 당연히 생기겠지만, 그때마다 너무 힘들죠. 노하우가 쌓이질 않는 것 같아요. 매번 너무너무 어렵고. 다들 상처받고 힘들어 하고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 자체가 되게 힘들었어요. 근데 이건 우리 상담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들 그런데, 그 시기를 지나왔다는 것 자체가 우리한테 힘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때는 다 끝날 것 같은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위기상황을 여러 사람이 함께 여차저차 해서 지나왔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상담소의 30년 역사에서 있던 수많은 것들이 충분히 의미가 있었고 우리 역시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어요. 저는 근거 없는 희망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반드시 근거가 있는 희망이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닻 사자도?
사 저의 연차로 봐서는 포기할 만한 큰 일은 없죠.
닻 작은 일이 사람을 꺾이게 하기도 하잖아요.
사 그렇게 크게는 없었던 것 같아요. 되게 운이 좋은 건가.
닻 힘들게 하는 일도요?
사 힘들게 하는 일은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이 누구에게나 생기는 일이니까 잘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일은 없었다는 소리겠지.
지 일이 없지는 않았지. 그런데 본인이 그 일을 어떻게 소화하느냐도 중요한 것 같아요. 큰일인데도 사자가 의연하게 대처하는 걸 전 옆에서 많이 봤어요.
사 그건 나의 둔함 때문일 거예요.
지 (웃음) 이걸 둔함이라 표현하면 안 되지요~
닻 맞아요. 이건 의연함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은데.
지 의연함과 지혜로움이지.
사 그건 아닌 것 같고.
닻 본인 '피셜' 둔함.
↑ 워크숍에서, 둔하고(?) 의연한 사자. (2019)
Q10. 활동가로 살면서 생계적인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사 혼자 사는, 그러니까 자기가 살림을 꾸리고 먹고 살아야 하는 활동가들과 달리 저 같은 사람은 전업 주부로 살았었고, 거의 남편의 월급 노동력으로 먹고 살았기 때문에 생계를 걱정하거나 그럴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해당이 안 되는 거죠.
닻 지리산도요?
지 그렇죠.
사 제가 활동 시작했을 때는 우리 같은(남편의 월급 노동력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에 생계를 걱정하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지 생계는 유지할 수 있었고.
사 하지만 내가 돈 벌면서 좋아진 건 많죠.
지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소위 재산을 증식하거나 노후를 위해서 뭘 마련한다거나 하는 것은 없다고 봐야 되잖아요.
사 연금.
지 (개인)연금이 있나?
사 국민 연금 있잖아요.
지 국민 연금이 있네? (웃음) 어쨌든 재산 증식이나 노후 대비나, 이 길을 걷기로 선택했을 때 당연히 함께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데 정말 먹고 사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 요즘 상황과는 달라서 그 부분은 같은 기준으로 이야기하기가 좀 그렇죠.
그 동안 활동하면서 동료들이 그만 둘 때 굉장히 가슴 아픈 두 가지 경우가 하나는 몸이 아파서, 또 하나는 생계유지가 어려워서. 둘 다 이 운동을 지속적으로 갈 수 없게 만드는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어떻게 활동가들이 자기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복지제도가 마련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인가는 굉장히 큰 과제였어요. 처음에 20~30만원 받을 때에는 100만원을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죠.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최저 임금 수준까지는 왔지만, 이 최저임금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지금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저 임금이잖아요.
앞으로 내가 인간다운 삶을 꾸려가고,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누구나 그 답을 알 수 있는 상황이예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건강한, 그리고 지속 가능한 운동을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인가 고민해 보면 결국은 시민의 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시민이 함께 하는 시민단체라고 하는 점에서, 적어도 전 국민이 한 단체는 후원하는 문화가 있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 상담소가 더 멀리 뛸 수 있도록, 상담소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정기/일시후원은 홈페이지에서, 문자후원은 #2540-1991. (개당 3000원) (2019 열림터 25주년 후원의 밤)
지 그런 점에서 사회적인 노력, 문화를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서 활동했을 때 생기는 제도화의 과정에서, NGO에 굉장히 중요한 가치인 자율성을 잃을 수밖에 없는 맥락이 있죠. 이런 건 금방 눈에 보이니까요. 위기상황에 대비하는 힘을 키우는 노력이 앞으로 많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Q11.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어떻게 하시나요?
닻 어떤 사건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현실이 너무 화가 나기도 할 거고, 지금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 막막해서 화가 나기도 할 거고. 다양한 상황이 있을 텐데요.
지 우리가 운동을 하면서 겪게 되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하는 공분이라면. 그 화가 모여서 변화를 만들잖아요. 그런 화는 열심히 함께 내면 된다고 생각해요.
↑ 조두순에 대한 공분을 활동으로 풀어내는 지리산과 사자. "여자다움, 남자다움 이딴 거 재미없어!" 피켓을 함께 들고 있다. (2008, 오른쪽)
지 인간관계에서 오는 화남이나 억울함이나, 아니면 내가 잘못해서 생기는 미안함 같은 수많은 감정들이 있고, 리더의 역할을 하다 보면 화가 나지만 화를 낼 수 없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막 하기도 그렇고요.
그래도 이 화를 반드시 풀고 새로운 내일을 맞아야 한다고 할 때, 그래도 벗이 있다는 점이 의지가 되어요. 같이 의논도 하고 마음을 털어놓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그 분들한테 감사하게 생각해요.
사 저도 그렇게 많이 해소하는 것 같아요. 생각해봤을 때 문제가 특정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 때문에 생긴 문제라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냥 넘어갈 수 없고 말을 해야 될 것 같으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그런 일이 많지는 않죠. 이야기는 하죠. 그 외에는...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상대방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거 같은 상황이어도 화는 나잖아요.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풀죠. 수다로 많이 푸는 편이에요. 안전한 사람과.
닻 안전한 사람 중요하죠. 그러면 공분은 활동으로 푸는 편인가요?
사 그건 오히려 동력이 되기도 하는 거니까요. 나처럼 의지가 박약한 사람은 어쩌다 그런 때가 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이러면 없던 의지를 긁어모아서 하게 되는 동력이 되기도 하죠.
닻 정말 찐(진짜) 활동가 같아요. (웃음)
벌써 18개 질문 중 11번째까지 답해보았는데요, 남은 이틀도 끝까지 봐 주실거죠?
환갑을 맞은 두 활동가 인터뷰는 내일 저녁 6시에 계속됩니다. 내일 이 시간에 만나요!
기획/인터뷰/편집 : 닻별
녹취록 작성: 찔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