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사에게 술따르기 강요가 성희롱이 아니라는 재판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5월 26일 서울고등법원(특별 11부)은 회식자리에서 교감이 여교사에게 술을 따르라고 강요한 행위가 성희롱이라 판단한 여성부의 항소심에 대해 원심대로 ‘결정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원심인 서울 행정법원의 판결에 이어 고등법원에서까지 명백한 성희롱을 부정한 것이다. 이에 전교조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이러한 판결을 낸 재판부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참담한 분노의 마음을 밝히고자 한다.
재판부는 술 따르기를 강요한 김 교감이 ‘회식장소에서의 부하직원이 상사로부터 술을 받았으며 답례로 상사에게 술을 권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으로 보여진다’ 며 이러한 김교감의 언행이 풍속 또는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김씨의 손을 들어주었고 항소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교직사회 속에서 직속 상사인 교감이 신분을 이용해 교장에게 술을 따르라고 강요한 것은 분명한 인권침해이며, 더군다나 해당 여교사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은 명백한 성희롱이다.
직장 내 회식자리에서 술자리를 빌어 빈번하게 발생하는 왜곡되고 폭력적인 성문화는 여성들을 끊임없이 성희롱의 상황에 노출시키고 있다. 직장 내에서의 폭력적이고 왜곡된 성문화, 뒷풀이 문화는 위계관계에 의한 권력, 차별적 성별관계에 의한 권력 등 복합적 권력을 지닌 남성 상사에 의해 강요되는 경우가 많으며, 피해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부하직원들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권과 성적인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직장 내 회식자리에서 상사에게 술을 따를 것을 강요한 것이 건전한 상식과 관행상 용인될 수 있는 풍속으로 판단한 재판부는 남녀의 차별적 지위와 왜곡된 성문화로 인한 노동권침해,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문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이러한 판결 그 자체가 또 다른 인권 침해적 요소이다.
성희롱을 판단하는 기준은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임에도 술을 답례로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이 미풍양속이라는 이유로 피해 여성의 감정적인 부분까지도 재단하려 한 재판부의 판결은 시대를 거스르는 판결이다.
전교조 경북지부가 2002년 이 사건을 계기로 경북지역 여교사 약 8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회식자리에서 교장, 교감에게 술 따르기와 옆자리 앉기를 강요당하는 경우가 초등은 40%이고, 중등은 24%에 이르고 있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자기 의사표현이 분명할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에도 불구하고, 초등 20대 여교사의 경우 술 따르기를 강요당한 경우가 49%, 관리자 옆자리 앉기 강요가 44%로 전체 여교사의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실제 학교현장에서는 싫지만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시중에 응해주는 경우가 40% 정도나 되었다.
이는 회식문화에서 여교사가 술을 따르는 것을 성희롱으로 생각하지 않는 관리자가 상당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교장, 교감에 의해 여교사들에게 강요되는 술따르기 관행이 미풍양속이라는 그럴 듯한 단어로 포장되어 많은 여교사들과 여성노동자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앞으로도 이러한 성희롱이 양산되고 합리화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으로 그에 따르는 모든 책임은 재판부가 져야 한다.
성희롱에 대한 사회전반적인 합의를 거스르는 이번 판결은 재판부의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각의 그릇됨과 무책임성을 드러내주는 것으로 본 노조 및 여성단체들은 이번 서울고법의 시대착오적인 판결을 강력히 규탄하며 재판부의 각성을 촉구한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