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낙태죄 폐지 활동가에 대한 검찰수사 중단을 위한 탄원서(시민 2,250명 참여)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1/22~1/31 모집)
낙태죄 폐지 활동가에 대한 검찰수사 중단을 위한 탄원서
지난 12월 26일 서울종로경찰서는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하 ‘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 문설희와 박아름에 대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혐의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 송치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낙태죄’ 관련 법 개정안을 규탄하기 위해 개최한 기자회견(각각 9월 28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10월 8일 청와대 분수대 앞 기자회견) 사회를 맡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미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형법제정 67년 만에 법적 효력을 상실하게 된 상황에서 ‘낙태죄’ 폐지와 권리 보장을 위해 앞장섰던 여성들이 수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안타까움을 표하며 탄원서를 제출하는 바입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이 개최된 9월 28일은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위한 국제 캠페인의 날’로 모낙폐는 2017년 9월 28일 발족 이래 매년 이날 기자회견과 캠페인을 개최해왔습니다. 특히 올해 9월 28일은 2019년 4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고 나서 1년 반이 지나고 입법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 되어서야 정부가 ‘낙태죄’ 관련 개정안을 논의하기 시작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 사전 보도된 정부 개정안의 내용은 너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형법상 ‘낙태죄’를 그대로 두고, 임신 14주 이내의 임신중지만을 허용하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예외 사유나 허용 주수를 가져오더라도 ‘임신중지 행위’가 ‘여성의 죄’라는 형법상 처벌조항이 남아있다면 우리 사회가 임신중지를 바라보는 시각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개최된 9월 28일의 기자회견은 이런 식의 정부 개정안은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기보다 그간의 논의를 후퇴시키는 방안이라는 비판을 언론에 알리기 위한 목소리였습니다. 언론을 통해 정부 개정안의 내용이 드러났기 때문에 더더욱 언론을 통해 ‘낙태죄 전면 폐지’의 목소리를 전달할 필요가 크다고 판단하고 기자회견을 공들여 준비하였습니다. 당일 진행한 퍼포먼스(‘청와대는우리의목소리를들어라’ 글자 피켓 퍼포먼스)는 다수 언론에 기사 및 사진 등으로 보도되기도 하였습니다.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이 개최된 10월 8일은 법무부와 보건복지부가 형법상 ‘낙태죄’를 존치하고 주수제한, 상담의무, 숙려기간, 의사의 신념에 따른 의료 거부 인정 등 새로운 처벌 기준을 포함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 바로 다음 날로,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시기에 하루속히 언론을 통해 정부가 입법예고 한 개정안을 규탄하고 ‘처벌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라는 의견을 표명할 필요성이 있어 긴급하게 기자회견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입법예고안을 규탄한다는 상징성을 고려해 기자회견 장소를 청와대 앞으로 결정하였습니다. 당일 기자회견 장소에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낙태죄’ 폐지의 입장을 담아 각종 행사에서 사용했던 피켓들이 전시되었는데, ‘낙태죄’를 폐지하기 위해 연대하고 변화를 만들어온 기록이자 증거들을 재확인하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정부 개정안에 대한 모낙폐의 성명서 낭독 이후 몇몇 활동가들이 전시된 피켓 위로 쓰러지는 ‘다잉 퍼포먼스’는 그동안 ‘낙태죄’ 폐지를 위해 싸워온 활동가들이 이 전쟁터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낙태죄’ 폐지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진행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낙태죄’ 입법예고안이 여성들의 권리를 사실상 죽이는 법안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를 기자들도 알아채고 열정적으로 취재를 해주셨습니다. 기자회견에 전시된 피켓 및 퍼포먼스는 다수 언론에 기사와 사진, 영상 등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낙태죄’는 형법 처벌조항 중 유일하게 여성만을 처벌하는 조항이었습니다.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낙태죄’ 조항은 수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2020년 12월 31일을 경과하여 비로소 법적 효력이 상실되었습니다. 형법제정 67년 만에 대한민국 여성들을 잠재적 범죄자, 죄인으로 다루던 처벌의 시대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는 시대로 방향전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순간을 앞두고 모낙폐는 언론을 통해 ‘당사자인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라고 말하고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모으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퍼포먼스는 이러한 입장을 함축적,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국가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고 여성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방법은 기자회견밖에 없었습니다. 여성들은 권리가 침해되든 말든, 잘못된 법 때문에 여성들이 사회적 살인을 당하든 말든, 정부와 국회가 처분해주는 대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2020년 정부의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안전한 임신중지 및 재생산 권리에 대한 보장은 없이 또 다른 처벌 및 통제로 점철된 것이었습니다. 형법 입법예고안은 입증 불가능한 주수 기준으로 임신중지를 처벌하며, 여성에게 상담 의무와 숙려기간을 부과해 임신중지를 불필요하게 지연시키고 사실상 어렵게 만들 것이 자명했습니다. 모자보건법 입법예고안은 종합상담기관 설치·운영·지정 및 상담사실확인서 발급을 필수가 아닌 임의로 규정하고, 의사가 자의적으로 진료 거부를 할 수 있도록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등 임신중지 관련 서비스의 접근성을 현저히 낮춘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우려를 샀습니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기는커녕 임신한 여성이 상담 기관과 의료 기관을 전전하며 개인의 노력으로 필요한 서비스 제공자를 찾아야 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아가게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에도 위반되는 것이었습니다.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를 이어나가겠다는 정부 개정안은 철회되어야 마땅했고, 2021년 이제 우리는 ‘낙태죄’라는 처벌이 사라진 자리를 권리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으로 채우는 또 다른 역사적 순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9월 28일과 10월 8일 개최된 각각의 기자회견은 이처럼 반드시 필요한 시기에 반드시 알려야 할 목소리를 담아 적절한 형식으로 진행된 행사였습니다. ‘모낙폐’는 각각의 기자회견이 목표한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언론에 전달되게끔 하는 것과 동시에 코로나19 방역에도 각별히 유의하고자 참가자 전원이 마스크를 착용하였으며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힘썼습니다. 9월 28일의 기자회견의 경우 월요일 오전 광화문 거리를 지나는 시민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기자회견 참가인원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개최되었고, 10월 8일의 기자회견 역시 평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인근을 지나는 시민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기자회견 참가인원을 최소로 제한하였습니다. 각각의 퍼포먼스 역시 짧은 시간에 함축적·효율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 하에 신속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집회개최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1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낙폐에 함께하는 모든 단체와 개인들은 ‘낙태죄’ 폐지를 위한 활동 계획을 세우는 데에 매번 고심에 또 고심을 거듭하였습니다. 방역지침을 지키면서도 정부에 여성의 목소리를 전하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부는 기자회견으로 발표되는 모낙폐의 입장을 더욱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자회견 장소에 모인 것은 몇 명에 불과하지만, 그 뒤에는 수없이 많은 여성이 함께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9월 28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청와대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문구가 한 글자 한 글자씩 새겨진 피켓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10월 초, 청와대는 언론에 알렸던 개정안 그대로 ‘낙태죄’ 존치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묵살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자회견에 대한 불법 혐의를 두며 ‘모낙폐’의 공동집행위원장들을 경찰에 소환조사하는 것으로 답하였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정부를 불편하게 하는 기자회견을 선택적으로 경찰 소환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여성들이 ‘낙태죄’로 인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국가의 잘못된 법이 어떻게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해왔는지, 무엇이 여성들을 그런 상황에 놓이게 했는지 제대로 알아야 올바른 대안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정반대의 선택을 하였습니다. ‘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 문설희, 박아름은 경찰조사에 성실히 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검찰로 사건이 송치되었다는 통보를 접하며 2021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모낙폐는 ‘낙태죄’ 전면 폐지, 임신중지 비범죄화, 재생산 권리 보장 등과 같은 여성의 요구를 알리면서 셀 수 없이 많은 기자회견을 개최하였습니다.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것, 그 목소리가 사회에 전달되도록 하는 것 또한 결국은 권력과 자원의 불평등, 평등권의 문제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권력과 자원을 가진 집단은 자신이 소유한 매체로, 또는 비싼 돈을 지불하고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권력과 자원을 이용해 무수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거나 관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권력도 자원도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길거리로 나서는 것뿐입니다. 언론에 보도자료를 보내고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할 수밖에 없는 불평등한 현실. 이 불평등을 바꾸는 것이 정의 아닙니까? 그런 불평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불평등 해소,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기자회견, 그것도 방역 수칙을 엄수했고 경찰의 협조 요청에 따라 안전하게 진행된 기자회견에 대해 불법혐의로 사회자들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정의로운 법 집행에 해당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법질서가 이렇게 길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주최해서 언론을 만나는 일을 모두 경찰에 신고하게끔 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수사는 결국 길거리에서 기자회견을 할 사람들은 경찰에 먼저 신고를 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외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경찰에 알려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사회를 맡았던 이들은 경찰에 기자회견을 미리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언제든 수사를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위축되는 것이 2021년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여성의 재생산권리를 통제하고 여성을 죄인으로 만들었던 ‘낙태죄’를 폐지하라는 헌법재판소의 준엄한 요구를 환기하고 대한민국의 절반인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개최된 기자회견을 이유로 또다시 여성을 처벌하고 죄인으로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 문설희, 박아름에 대한 수사를 멈추어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끝)
2021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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