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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기관의 성폭력 가해 및 2차 가해에 분노한다!
  • 2006-05-11
  • 5003
수사 기관의 성폭력 가해 및 2차 가해에 분노한다!

오늘 5월 11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경찰관의 2차 가해 사실이 보도되었다. 인천의 중부경찰서의 한 경찰관이 수사상 필요한 절차라는 명목으로 피해자의 집으로 찾아가 ‘피해 상황을 재연하라’는 등 2차 가해를 하였을 뿐 아니라, 일순간 성폭력 가해자로 둔갑하여 피해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수사상 2차 피해의 전형일 뿐 아니라 자신의 지위와 피해자의 위축된 심리적 상태를 이용한 가장 악랄한 형태의 성폭력이라 할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를 비롯한 여성단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사상의 2차 피해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방지 대책을 소리 높여 주장해왔다. 경찰 역시 원스탑 지원센터를 개소하고 수사 지침을 마련하는 등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구제와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자체적으로 노력을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현실과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10% 미만에 머무르는 고소율은 피해자가 넘어야 할 장벽이 높음을 증명한다. 진일보한 정책과 제도를 직접 운용하는 주체인 수사관들의 인식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이러한 문제는 계속 반복될 것임은 자명하다.

성폭력의 2차 피해는 1차적 성폭력 피해에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치명적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 별개의 범죄이며 동시에 2차 피해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결국 1차적 성폭력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볼 때, 2차 피해에 대한 해결은 시급하다. 즉, 성폭력 가해 사실을 부인으로만 일관하는 가해자를 추궁하는 대신 피해자에게 혐의를 돌리며 피해 사실을 입증하라는 부당한 요구는, ‘피해자 직접 재연’이라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으로, 종국엔 경찰관에 의한 성폭력으로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성폭력 문제를 가장 앞장서서 근절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현실은 올초부터 각지에서 발생한 연쇄성폭력사건이나 용산아동성폭력살해사건 등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우리사회의 성폭력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또한 이번 사건은 성폭력 범죄에 있어서 경찰이 수사 중에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성폭력은 일부 남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남성 중심적 기형적 성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문제임이 다시 한번 드러난 것이다. 경찰은 연일 기사에 오르내리는 거물급 성폭력 범죄자 검거라는 성과에 만족해하며 어느덧 안일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경찰은 뼛속 깊이 반성하라. 아무리 좋은 제도가 마련된 들, 그 골수에 들어찬 남성중심적 사고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 내지 않는 한, 이러한 사건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지금까지도 가해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물론, 관련자 징계,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잘못된 수사관행을 개혁하고 수사관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2006년 5월 11일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