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군대 내 성폭력, 국방부는 성폭력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작동하라
군 선임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군이 또다시 세상을 떠났다. 지난 3월, 공군에 근무하는 여군 중사였던 피해자는 야간 근무를 바꿔서라도 회식에 참여하라는 선임의 지시를 받고 회식에 참여했다. 그리고 회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군 선임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었고 피해자는 바로 이를 상관에게 신고했다. 성폭력 피해를 즉시 신고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초기대응이며 상명하복 위계가 뚜렷한 군에서 특히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고를 받은 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을 없던 일로 하자며 회유했고 사건 당일 가해자는 피해자의 숙소까지 따라오며 신고를 할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피해자를 조롱했다. 가해자의 가족들까지 나서서 합의를 종용하며 피해자를 압박했다. 이에 피해자는 전출 신청을 하였지만, 새 근무지에서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낙인과 괴롭힘을 피할 수 없었고 피해자는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되었다.
해군상관에의한 성소수자여군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해당 사건의 피해자가 즉시 신고했음에도 군 내 성폭력 피해자 보호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현실을 규탄한다. 군 내 성폭력 피해자 보호 및 비밀유지의 의무를 명시한 <부대관리훈령>에 따르면, 각 부대장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공간적으로 우선 분리”하도록 되어 있고 “성폭력 행위자에 동조하여 피해자에게 협박이나 강압 등을 가하여 피해자의 신고 등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즉시 분리되지 않아 피해자가 청원 휴가를 쓰고 전출을 가야만 했고, 피해자가 신고하려고 하자 군의 조직적인 회유와 은폐, 압박이 있었다. 또한, 「군 형사절차에서의 성폭력범죄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훈령」에 명시되어 있는 피해자 국선변호사 등의 피해자 보호 제도도 실효성 있게 작동되지 않았다. 성폭력 대응 과정에서 피해자는 국선변호사 없이 진술을 해야 했다.
공대위가 지원하는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에서도 피해자 보호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직속 상관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후, 피해자는 함정 내 총책임자인 함장에게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함장은 즉시 보호 및 분리 조치를 취했어야 했음에도 피해자에게 또 다른 성폭력을 가했다. 그리고 가해자들을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해야 했을 고등군사법원은 군 상관과 부하 여군 간의 권력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죄 선고를 했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세심한 검토 없이 가해자의 사실조회촉탁 신청을 허가해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담긴 의료기록이 그대로 가해자에게 노출되기도 했다. 현재 공대위와 피해자는 대법원의 판결을 2년 반 넘게 기다리고 있다.
국방부는 성폭력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새로운 대책을 발표하지만, 군대 내 성폭력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2013년, 군 상관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후 세상을 떠난 또 다른 여군이 있었다. 2015년, 국방부는 <성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2017년에도 해군 장교의 성폭력 가해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군이 있었고 2018년, 국방부는 성범죄 특별대책 TF를 운영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의 두 가해자는 2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고 2021년, 또다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군이 목숨을 잃었다. 언제까지 이러한 현실이 되풀이되어야만 하는가.
2019년 국방부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성폭력 피해를 기관에 보고 또는 신고한 수는 32.7%에 그친다. 보고하지 않은 나머지 응답자들은 미신고 사유로 ‘아무 조치도 취해질 것 같지 않았다.(44%)’라고 답했다. 이러한 피해자들의 우려는 이번 사건에서도 실제로 나타났다. 또한 상부에 신고한 후에도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군대 내 성폭력이 은폐되고,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어떤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알리고, 해결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국방부는 이번 사건이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키자 군 검·경 합동수사 TF를 구성해 성폭력 사건뿐 아니라 상관의 은폐 의혹과 2차 피해에 대해서도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진상을 규명하고 기존의 성폭력 피해자 보호 제도를 전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이에 공대위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유명무실한 국방부의 <성폭력 근절 종합 대책>을 전면 재검토하라.
- 군 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권리보장을 위한 방안을 당장 마련하고 시행하라.
- 여군을 배제하고 관심병사화하는 성폭력 대책은 무력하다. 여군의 활동을 통합적으로 보장하고 지지하는 대책을 수립하고, 여군 부사관들의 지위를 정상화하라
- 피해자와 군대 구성원들의 인권에 기반하지 않은 군기강 중심주의를 전면 바꾸라
- 군대 내 인권침해 사안에 대한 외부 지원이 가능한 핫라인을 개설하라
- 군대 내 권력 관계를 견제하지 못하는 군대 내 사법체계를 중단, 고등군사법원을 폐지하라
- 양성평등담당 기구들의 일상적 활동을 보장하고 예산과 인력을 확충하라
지금까지처럼 말뿐인 대책이어서는 안 된다. 공대위는 군대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해 국방부의 향후 행보를 예의주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