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성평등 추진 부처 폐지가 아닌 성차별 폐지를 공약하라
- 국민의힘 대선주자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부쳐
7월 6일, 국민의힘 대선주자 유승민 전 의원과 하태경 의원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 국민의힘 당대표 이준석 대표 또한 “대선후보 되실 분은 여가부 폐지 공약은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라며 이에 가세하였다.
“여가부가 그동안 ‘젠더갈등’ 해소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는 유 전 의원의 발언이나,”여가부를 폐지하고, ‘젠더갈등해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 2030 세대에서 벌어지는 갈등 요소를 해소해야 한다”라는 하 의원의 주장은 실재하는 성차별구조를 무시한 채 차별의 문제를 단순한 여성과 남성 양자 간 갈등으로 이해하는 몰지각의 소치다. 특히, “다른 부처 사업과 중복되는 여가부 예산을 의무복무를 마친 청년을 위한 한국형 ‘지아이빌’ 도입에 쓰겠다”는 유 전 의원의 공약은 여성 인권과 의무복무 남성의 권리를 대립·배치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해묵은 '갈등의 정치 논리'를 그대로 확대재생산한다. 이는 갈등을 조장하고 이에 기생하여 정치적 이익을 편취코자 하는 구태의연한 행태를 또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의무복무 남성 청년에 대한 지원을 중시한다면, 왜 독자적인 지원체계의 구축과 재원 마련 방안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함께 부수적으로 언급하는지 답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성차별은 여전히 공고하다. 올해 발표된 ‘성 격차 지수(GGI·Gender Gap Index / 각 나라의 경제, 정치, 교육, 건강 분야 성별 격차를 측정해 발표)’ 순위에서 한국은 세계 156개국 가운데 102위로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또한 OECD가 남녀 임금 중간값을 이용해 발표한 성별 임금 격차는 2020년 기준 32.5로, OECD 최하위 수준이다.
현재 여성가족부 역할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은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으나, 무조건적 폐지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여성가족부가 수행하는 정책이 충분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 실효성 있는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권한과 자원 배분 등 개선 방안을 먼저 고민하여야 한다. 여성가족부와 타부처의 업무 간 중복이 있다면 어떻게 부처 간 원활한 협업과 조정이 가능할 것인지 대책을 제시하여야 한다. 조직을 폐쇄하고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 조직의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믿어온 국민의힘식 쇄신의 무책임을 반복할 수는 없다.
한편 유 전 의원이 제시한 대통령 직속 (양)성평등위원회의 설치는 성평등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요구이기도 했다. 성평등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컨트롤타워로서 대통령 직속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문·조정기관으로서 위원회는 그 자체만으로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으며, 정책 집행을 위해서는 전담 추진체계와 실무 인력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1998년 대통령 직속으로 여성특별위원회가 있었음에도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된 데에는 이 같은 현실 인식이 이미 깔려 있다. 성차별 문제 해결에 있어 이미 구축된 집행체계를 폐지하고 한계적인 자문조직으로 회귀하자는 주장은 한국 사회가 여성 인권과 성평등 문제에 대응해 온 역사와 성과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재난의 상황은 경제와 노동, 주거, 돌봄과 같은 우리 사회 다양한 영역에서 상존하던 부정의를 드러냈다. 경제적 양극화가 극단화되고, 고용상황은 악화되었다. 우리 사회 필수노동자들은 과로와 산재의 위험 속에서 노동을 지속하고 있다. 불안정한 사회에서 젠더폭력의 문제는 더욱 두드러졌다. 돌봄 위기 속에서 돌봄 영역에 배치된 이들은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 같은 부정의의 상당 부분은 뿌리 깊은 성차별에 근거하는 것이다. 차별 해소와 사회의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시민의 뜻이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이 시점에, 적극적인 불평등 해소 공약으로 응답하기보다 여성가족부라는 희생양 던지기를 선택하는 저열하고 무능한 정치는 이제 더는 설 자리가 없다.
대통령 선거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 더 나은 사회의 모습을 상상토록 하는 토론과 정치의 장이다. 대통령 후보는 이 같은 상상의 저변을 넓히는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여야 할 책임이 있으며, 이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여야 한다. 과연 여성가족부 존폐가 전환기 우리 사회의 여러 시급한 현안을 제치고 먼저 제시되어야 할 의제였는지 의문이다. 여성가족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에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두 대선주자는, 스스로가 대통령 후보로서 제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우선 성찰해야 할 것이다.
허구적인 ‘젠더 갈등’ 프레임을 양산하면서 여성가족부에게만 책임을 돌리기보다, 젠더 차별 철폐를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정치가 할 일이다. 유승민 전 의원과 하태경 의원은 성평등 추진 부처의 폐지가 아닌, 성차별 폐지를 분명히 공약하여 제 할 일을 하라.
2021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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