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청원인의 글(6/29)에 대한 입장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청원인의 글(6/29)에 대한 입장
‘동아제약 성차별면접 피해자’가 6월 29일 브런치에 올린 글을 마음 아프게 읽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에 제기하는 문제에 관해 차제연이 잘못한 점을 밝힙니다. 더불어 현재의 상황에 대한 차제연의 입장을 국민동의청원에 함께 하셨던 분들에게 알립니다. 차제연은 국민동의청원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은 이들이 차별을 경험하는 고용영역과 뿌리깊은 성차별이 더 많이 논의되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청원 참여를 제안하는 글이 헌법상 평등권이라는 추상적 원칙만 반복하는 글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로부터 다양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기대했습니다. 여러 고민 끝에 동아제약 채용성차별 사건 당사자(이하 당사자)에게 청원을 시작하는 청원인이 되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사자가 수락하고 함께 하는 과정에서 당사자가 힘을 얻기보다 오히려 더 무거운 부담을 짊어지게 된 상황에 차제연은 깊은 책임을 느낍니다.
당사자가 처하게 될 위험의 조건을 미리 살피며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국민동의청원 과정에 수반하는 절차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안내하여 당사자의 우려와 부담을 줄일 방안을 찾는 책임과 역할은 마땅히 차제연의 것이었습니다. 성평등을 요구하고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내는 개인에 대한 공격과 비난, 심지어 신상털기와 협박이 만연한 현실에서 개인이 오롯이 직면하게 되는 문제와 위협에 대해 더욱 면밀하게 살폈어야 합니다. 차제연은 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당사자에게 청원인이 되어달라 요청드릴 때 차제연은 청원 과정에서 성만 공개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수락 이후 당사자가 실명유출을 우려하며 대리인을 두면 좋겠다는 의견을 먼저 주었습니다. 그리고 청원이 성립되면 청원인 이름이 공개된다는 점 역시 당사자가 먼저 확인하고 알려주었습니다. 당사자의 신원이 노출되는 위험은 피했지만 당사자는 스스로의 안전을 혼자서 걱정해야 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생존까지 위협하는 현실에 주목하며 더욱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습니다. 당사자의 우려를 더 앞서 헤아리며 국민동의청원시스템과 등록절차를 더 자세히 알아보지 못한 점은 차제연의 잘못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차별 피해 경험을 듣고 의미화하면서 차별의 현실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것은 차제연의 중요한 활동입니다. 차별 경험을 말하는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사회, 차별을 고발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 삶을 위태롭게 만들지 않는 사회는 바로 차별금지법이 만들고자 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차제연은 그러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청원에 함께 하는 당사자의 기대를 잘 듣고 논의하는 과정을 충실히 만들지 못했습니다
청원글에 관해 차제연은 몇 가지 수정의견을 드렸습니다.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차별금지법의 의미를 짚어준 청원글이 다양한 위치에 있는 시민들에게 전해질 때 폭넓은 공감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수정의견을 전하는 소통 과정에서 여성 이슈가 지워질까 하는 당사자의 우려를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청원글을 쓰면서 당사자가 의도하거나 기대했던 바를 잘 듣고 논의하는 과정을 충실히 만들지 못한 것은 차제연의 잘못입니다. 청원 성립 이후 청원인의 상징성과 청원 성사의 의미를 사려깊게 언급하지 못한 점 또한 차제연의 부족함입니다.
차제연은 차별 받는 집단 중 누가 더 약자인지를 비교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평등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만드는 차별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차별 받는 사람들은 각자의 절박한 자리를 살아갑니다.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 자체가 모두를 위한 싸움입니다. 차제연은 차별받는 사람들이 짊어지게 되는 폭력의 무게를 특정한 집단의 것으로 치부하거나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차별의 구조와 다른 방식으로 운동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이런 고민과 함께, 당사자가 청원인의 상징성을 통해 기대했던 변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새깁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성평등을 향해 전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서 페미니즘은 민주주의와 평등을 위한 중요한 준거점입니다. 차별금지법의 제정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성평등 또한 더 진전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그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 또한 차제연의 중요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차별은 다른 차별 구조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 vs 보수개신교계'의 대립 혹은 갈등으로만 다루어지거나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으로 이해되어왔습니다. 차제연은 이분법적인 찬반 대립 구도를 벗어나 복합적인 차별의 구조가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어야 한다는 지향과 방향을 가지고 활동해왔고, 고용영역에서의 성차별 철폐는 앞으로도 제정 운동의 중요한 의제입니다.
차제연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부차적인 문제로, 페미니즘을 논란거리로 여기는 사회에 맞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성평등을 지지하는 모두의 힘이 될 수 있도록 활동해나가겠습니다. 차별금지법이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평등의 약속’이 될 수 있도록 운동의 책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며 국민동의청원에 힘을 모아주신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10만행동의 시작을 기꺼이 열어주신 당사자의 용기와 절박함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평등의 약속이 서로의, 모두의 약속이 되는 그 날까지 함께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21년 7월 1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