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8일(목) 오후 7시 온라인 화상회의(ZOOM)으로 회원소모임 페미니스트 아무말대잔치(이하 '페미말대잔치') 11월 모임이 진행됐습니다. 이번 모임은 앎, 메릿, 지은, 인미, 다운 총 5명이 참여했습니다.
첫 화두는 가치관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페미니스트가 된 이후로 가족, 친구, 지인과 멀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일상에서 아는 사람이 성차별적 발언을 해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이슈에 대해 대화하다 보면 서로 의견이 엇갈리기도 한다고. 단순히 내 관심사나 내 생각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세상을 부정적으로 본다', '예민하다',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하냐? 스트레스 받는다' 등 부정적, 방어적 피드백을 받는 경험도 많았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정치, 종교 관련 주제로는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죠. 사람마다 인식 차이가 너무 크고 타협이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네가 페미니스트인 건 상관 없지만 나한테 페미니즘 이야기는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게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에티켓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페미니스트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습니다. 일상의 모든 장면장면에 성차별, 여성혐오가 만연한 현실에서 어떻게 페미니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을지 사실 막막합니다. 단순히 선거, 특정 정치인, 특정 정당 이야기를 피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하다못해 새 옷을 살 때도 남성복과 여성복의 디자인, 가격, 퀄리티 차이, 다양한 체형은 커녕 평균 체형조차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마르고 가슴과 엉덩이만 큰 '성적 대상화된 몸'을 전시하는 홍보 이미지 등이 눈에 밟히고, 최근 유행하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이야기해도 여성 캐릭터를 성적 대상화하는 카메라 구도, 여성혐오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여성 캐릭터들, 감독의 성차별적 발언 등이 가장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는데 말이에요.
사실 페미니스트에게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지 않고 굳이 피한다는 건 일상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의미와 같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내가 읽은 책, 내가 어떤 상황을 보며 느낀 점, 내가 본 언론 기사, 내가 참여한 행사나 집회, 심지어 내가 입은 옷, 내 머리스타일, 내가 먹은 비건 음식까지도 상대에 따라서는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로 인식하고 반감을 표하니까요. 페미니즘은 인식론이자 실천으로서 페미니스트의 일상 전반에 스며들어 있고, 그 부분만 따로 떼어놓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페미말대잔치처럼 페미니스트끼리 모여 마음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참 좋다는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공감했어요.
또 다른 화두는 남성용 섹스토이와 여성용 섹스토이의 차이점이었어요. 여성용 섹스토이는 사실 예쁘거나 추상적인 형태가 많고, 실제 남성 성기와 유사하게 생긴 딜도는 오히려 선호하지 않는 여성이 많잖아요. 그런데 남성용 섹스토이는 (안 그런 섹스토이도 많겠지만) 리얼돌을 비롯해 실제 여성 성기와 유사한 섹스토이가 많은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섹스토이 자체에는 거부감이 없고 남성용 섹스토이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특정 AV 배우의 성기를 똑같이 (섹스토이를) 만들었다'라거나 '구매자가 원하는 대로 커스텀마이징해서 (리얼돌을) 만들 수 있다(즉, 원한다면 특정 실존인물과 똑같이 만들어줄 수도 있다)'라는 방식의 마케팅을 보면 거부감이 느껴진다는 것이죠. 단순히 형태의 '리얼함'을 넘어서 실존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섹스토이에 덧씌우는 존재의 '리얼함'을 홍보한다는 점이 그 참여자에게 뭔지 모르게 소름끼치는 느낌을 주었다고 해요. 이런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인지 저도 궁금해지더라고요.
정답을 밝힐 수는 없겠지만, 우리끼리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보았습니다. 그중 하나는, 일상에서 여성은 남성을 성적 대상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남성 성기를 (소위 '바바리맨' 범죄처럼) 젠더폭력이나 두려움과 연결해서 떠올리는 경향이 더 크기 때문에 실제 남성 성기 형태의 섹스토이에 거부감을 느끼는 반면, 남성은 이미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데 너무 익숙해 있어서 실제 여성 성기 형태의 섹스토이에 거부감이 없는 게 아닐까? 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적나라한 포르노그래피에 더 익숙하고, 성적 상상력을 키우기보다는 시청각적 자극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가설도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화두는 '여성의 나이듦'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성은 크리스마스 케익', '상폐녀', '아줌마는 (여성이 아닌) 제3의 성' 등 여성의 나이듦을 혐오하고 여성에게 나이 들면 안 된다는, 심지어 나이 들어 보여서도 안 된다는 두려움을 끊임없이 심어줍니다. 그래서인지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과 갈등이 생겼을 때 참여자들이 정말 자주 들은 말 중 하나가 '아줌마가 뭔데?'였습니다. 나이불문 여성을 '아줌마'라고 부르는 게 멸시의 표현인 거죠. 한 참여자는 나이가 들면서 '상폐녀', '아줌마' 같은 혐오 발언을 실제로도 많이 듣고, 노동시장의 진입장벽이 점점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편, 또 다른 참여자는 지인으로부터 "젊을 때는 나이 드는 게 무서웠는데, 나이 들어 보니까 오히려 좋다. 성적 대상화도 안 당하고, 삶도 안정되고, 정말 편하다."라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더는 나이 드는 게 불안하지 않고 기대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미디어에서도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이 드러나고 있으므로 (예를 들어 환불원정대에서는 50대 '만옥'과 40대 '천옥', 30대 '은비'와 20대 '실비'가 한 그룹이 되어 멋진 협업을 펼치죠. 전 골프선수이자 현 감독 박세리처럼 과거 여성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던 여성들이 지금은 여성 감독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고요.) 앞으로는 더 긍정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늘 그렇듯이 늦은 밤까지 신나게 수다를 떨었습니다. 어느새 올해 마지막 모임을 앞두고 있는데,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다음 달에도 건강하게 만나기를 바라요.
<이 후기는 소모임 참여자 앎이 작성했습니다.>
다음 모임은 12월 16일(목) 오후 7시 온라인 화상회의(ZOOM)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래 참여 안내에 따라 이메일로 참여 신청을 해주시면 담당자가 확인하여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페미니스트 아무 말 대잔치에 참여하고 싶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