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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수사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 2007-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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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권적 성폭력 수사에 대한 서울고법의 배상명령 판결을 환영한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6일,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반인권적 성폭력 수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총 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04년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에 대한 존중과 보호를 망각한 반인권적인 수사과정으로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이러한 수사과정에서의 2차 피해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고, 지난 2006년 11월에 국가의 잘못을 일부만 인정했던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내린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하여 이와 같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2차 피해의 문제는 성폭력 사건의 문제해결을 지연시키고, 그 자체로 성폭력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되어 왔다. 1차 가해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행한 직접적인 가해라고 한다면 ‘2차 가해'는 성폭력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이나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로 인해 피해자에게 또 다른 가해를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피해자의 행동이나 옷차림을 문제 삼아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 성폭력 사건을 신고ㆍ고소했을 때 조사과정에서 사건과 무관한 성경험 등을 질문함으로써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는 것 등이 그렇다. 이러한 2차 가해는 성폭력에 대해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의심하고 비난하는 사회적인 통념에서 발생하며, 성폭력 가해를 쉽게 결정하고 그 처리는 가볍게 하는 사회문화를 조성한다. 경찰, 검찰, 법원 등 수사 및 재판기관과 언론매체의 2차 가해는 더욱 주의와 개선을 요하므로 수년간 여성인권단체는 이 문제를 제기해왔고 피해자 권리헌장을 마련하였다. 다행히 최근 관련법과 규칙에서 피해자에 대한 인권지침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의 수사과정은 2차 피해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피해자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는 경찰 내부보고 문건을 기자들에게 유출하고, 수사담당자였던 경찰이 노래방에서 피해자를 비하하며 사건을 떠들어대고, 집단 성폭력 피의자들 앞에서 가해자들을 직접 지목하게 하고, 여성경찰관 조사 및 배석, 진술녹화 등을 하지 않고, 식사와 휴식시간 없이 밤샘조사를 하고, 다른 부서 경찰이 피해자에게 개인적인 비난을 가한 것 등 그 내용도 다양했다. 10대 집단 성폭력 사건에 대한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식의 놀라움과 떠들썩함이 피해자의 인권을 휩쓸고 아수라장을 만드는 속에서 경찰은 한 술 더 떴다는 사실이 당시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에도 피해자에 대한 인권지침과 현장에서의 명백한 2차 가해가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은 대외적 효력이 없는 행정규칙에 불과하여 그 규정을 위반하였다는 점만으로는 바로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 고 판시했다. 이렇듯 서울중앙지방법원의 1심 판결은 인권지침이 어떤 논리에 의해 부차화 혹은 무화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가족과 피해자도 당시 동의했었기 때문에, 피의자의 숫자가 많아서 수사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규정은 의무도 아니며 담당자가 상황에 따라 결정한 것이므로, 피해자가 당시에 감사하다고 말했기 때문에, 담당 경찰이 아니고 다른 부서 담당근무자였기 때문에 따라서 문제없다는 이러한 발상은,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것을 넘어, 인권지침을 효력 없는 부수규칙으로 전락시키고 인권지침에 대한 필요성과 가치지향을 침식하는 것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6일 판결문을 통해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 등의 위반을 포함하여 행위의 객관적 정당성 결여는 법령위반이 될 수 있다”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 규칙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경찰활동 전 과정에서 지켜야 할 직무기준이고, 경찰업무의 특성상 피해자 등의 인권 보호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므로 이를 위반한 것은 위법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또한 수사편의를 위한다는 방식이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고, 보복피해의 가능성도 있으며, 이를 감수하는 것은 효율적인 수사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렇듯 수사편의가 인권지침 위반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수사기관의 활동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되새기게 한 이번 판결을 매우 환영한다. 수사기관은 이번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통해 인권지침을 누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소화하여 고민하고 적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경찰의 본연의 업무가 의미하는 바를 말해주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성폭력 및 인권범죄에 대한 수사 및 재판기관은 초월적인 권위로 범죄자에 대해서 처벌하고 피해자에 대해서도 훈계하면서 양비론을 펴는 기관이 아니다. 폭력과 인권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시대에 따라서 구성되고 형성된다고 할 때, 무엇이 폭력이고 그 폭력이 어떠한 고통과 침해를 야기하는지에 대해 피해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사회에 알리는 가교 역할을 수사·재판기관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경찰청이 발행한 여름철 성범죄 예방 경찰가이드도, 피해자에게 비난을 돌리면서도 성범죄 예방만 할 수 있으면 좋지 않냐, 는 시각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실효성 있는 가이드내용인지 여부를 떠나, 인권지침이 수사에 불편한지 효율적인지 여부를 떠나 피해자에 대한 책임전가와 비난이 성폭력을 쉽게 가할 수 있는 남성중심의 사회를 만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권의식과 범죄예방은 다른 길이 아님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

2007. 8. 20
(사)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