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차별과 폭력으로 죽음을 가공한 SPC를 처벌하라!
SPL평택공장에서 숨진 여성노동자를 추모하며,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가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SPC그룹의 계열사인 평택 SPL공장에서 여성노동자 산재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났다. 간단한 안전장치로 막을 수 있었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우리는 깊은 애도를 표하는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안전을 위한 방호장치가 있었지만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제거되었고, 2인 1조 수칙이 있었지만 사고가 발생한 순간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최소 두 명이 함께 작업하며 서로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위험한 공정임에도 회사가 강요한 무리한 작업 물량으로 인해 안전 장치도 없이 혼자서 일하다 벌어진 참사이다. 이 땅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은 보다 높은 생산성, 이윤 앞에서 쉽게 외면당하고 버려지고 있다.
추모와 분노의 시간 사이, 지난 23일 또 다시 SPC그룹 계열사인 샤니 공장에서 한 노동자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진정성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던 SPC 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있은 지 불과 이틀 후다. 참사가 있기 일주일 전에도 같은 공장에서 손끼임 사고가 있었지만 사측은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작업을 멈춘 것에 대해 노동자들을 문책했다고 한다.
2021년 147명, 2022년 9월까지 115명, 매년 100건 이상의 산재사고가 발생하는 기업 SPC. 이는 이번 산재사망 사건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그동안 노동 착취 위에서, 극대화된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안전을 의도적으로 방치한 기업의 살인행위임을 보여준다.
SPC는 2018년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를 불법파견한 것이 밝혀져 수백억의 과태료를 피할 수 없게 되자,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를 자회사로 직접 고용하고 임금차별을 해결하겠다는 사회적 합의로 법적 처분을 면제받았다. 5년이 지난 지금, SPC는 약속을 지키기는 커녕 이의 이행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승진을 차별하고, 탈퇴를 종용하며 부당노동행위를 일삼고 있다. 또한 점심시간도 휴일도 주지 않고, 아파도 쉴 수 없고, 임산부에게 무리한 노동을 강요해 유산케 하는 등 불법적 노동 착취가 만연하다. 이번 사건 피해자 또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하루 12시간 주야 맞교대를 해야 하는 높은 강도의 노동을 하고 있었다. 무리한 야간 근무를 해야 했고, 산재를 당해도 쉴 수 없었으며 부족한 인력을 충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회사는 묵살했다.
노동자의 목숨을 건 53일간의 단식에도 눈 하나 꿈쩍 않는 기업. 사망사건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에도 공장을 돌리며 동료 노동자들을 일하는 기계로 취급하는 비정한 기업. 고인의 장례식에 자신들의 빵을 후원이랍시고 갖다 놓는 인권 감수성 제로의 기업. 어떻게든 처벌을 피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찾아와 형사고소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합의금을 제시한 무책임한 기업.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및 부정 승계 의혹까지 받고 있는 비리와 불법의 온상인 기업. 이번 사건은 이 모든 것들의 연장선에서 SPC의 반노동·반인권적 만행이 쌓이고 쌓여 터진 참사다.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노동자에 대한 폭력이다.
고용노동부는 이제야 강력 기획 감독이니, 식품기계를 다루는 전체 사업장을 점검하겠다느니 서둘러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사건 발생 이후 방호장치가 없는 혼합기에만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려 공장이 계속 돌아가도록 만든 주범이다. 사고가 난 SPL 사업장은 사고 한 달 전인 9월,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감독을 받았으나 이번 사고의 원인이었던 끼임 사고 방호조치에 대한 지적은 없었으며, 올해 5월 산업안전공단으로부터 받은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의 연장심사에서 '적합'으로 2차 인증까지 됐다고 한다. 감독을 강화하고 제대로 된 처벌을 내려 노동자들의 안전을 도모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는 오히려 기업의 입맛에 맞게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를 당장 중단하고 이제라도 정부는 철저한 수사와 더불어 SPL은 물론 SPC그룹 총수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을 엄중 적용해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반노동·반인권 기업의 전형인 SPC그룹의 구조적인 문제이자, 우리 사회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대부분의 기업의 문제이자, 이러한 행태가 용인되어 온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삶을 위한 노동의 현장이 죽음의 공간이 되고 있다. 올해 8월까지만 잡아도 432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숨졌다. 하루 평균 2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오늘도 누군가가 일터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산재사망사고 1위, 성별임금격차 1위, 나쁜 것들로만 세계 1등을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어서는 안 된다. 다쳐서도 안 된다. 이 간단한 명제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2022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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