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토요일, 종각역 2번 출구 앞에서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안 규탄 전국 집중 집회가 열렸습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더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여가부는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라고 주장하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해왔던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6일 여가부 폐지안이 담긴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확정한 바 있습니다. 개편안에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여가부의 기존 기능을 보건복지부 산하로 이관해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당일 종각역 일대에는 아무런 사회적 합의도, 절차도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세우며 성평등 후퇴의 행보를 보이는 윤석열 정부에 분노하는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습니다. 급하게 준비된 시위였음에도,
“여성가족부 폐지는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다, 우리가 막는다”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가 웬말이냐, 성평등 부처 강화하라”
도착한 집회 현장은 분노의 목소리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이를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이관하겠다는 윤석열 정부. 많은 단체에서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개편안은 여성인권을 지우고 그동안 성취해온 성평등의 역사에 후퇴하는 것이라 비판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을 보지 않은 채 성평등 후퇴 정책을 추진하는 현 정부에 대해 시민들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가 막을 것”이라 외쳤습니다. 이를 통해 착잡한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그랬듯 연대의 힘에 대해 한번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석열 정부, 우리의 차별은 무엇입니까?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성차별, 그 차별을 방관하는 국가의 태도, 그나마 이런 성차별 문제를 인식하고 지원하던 곳인 여성가족부조차 폐지하려는 정부의 시도를 보며 우리는 우리가 겪고 있는 차별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당일 현장에서는 여성차별을 직시하고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기능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목소리에 담긴 여러 차별들은, 결코 개인의 차별이 아니었습니다.
“헤어지자고 했다고, 연락하지 말자고 했다고, 밥을 차려주지 않았다고, 말대꾸를 했다고, 자신을 무시했다고 수많은 여성이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보호해준다고 해서 신고했지만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신고를 했어도 결국 살해당했습니다.”
한국 여성의전화 송란희 활동가님의 발언 중 일부입니다. 송란희 활동가님은 보호의 이름에 숨은 차별을 인지해야 하며, 애초에 왜 피해자를 보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건지 이 폭력의 근본 원인을 직시해야 함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동시에 사실상 성차별을 조장하고 강화하는 조직 개편안을 실질적 양성평등 사회 구현의 정책인 양 호도하며 국민들을 기만하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여성을 보호의 영역에 가두며,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윤석열 정부의 퇴행적 시도에 대해 거리에 나온 많은 여성시민은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한 이라영 작가님은 송파 세모녀 사건, 수원 세모녀 사건, 노원 세모녀 사건 등 수시로 접하게 되는 세 모녀라는 이름의 뉴스를 보며, 이것들이 구조적 차별이 아니라면, 모두 개인적 차별이라면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냐며 호소했습니다. 불법촬영, 가정폭력, 취업 성차별, 경력단절 여성 문제, 이 모든 문제가 개인문제라면, 우리는 어떤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이를 모두 개인적 문제로 환원하며, 여성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기만적인 말에 현장의 사람들은 외쳤습니다. “여성은 보호받고 지원받는 피해자로만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존중받는 시민이기를 원합니다”
한편 장애여성공감의 서지원 활동가님은 중증 장애여성으로서 겪어왔던 자신의 경험들을 이야기하며 이것이 명백한 구조적 차별임을 발언하였습니다.
“중증 장애 여성으로서 사회적으로 늘 무능하고 무성적 존재로 취급받았던 제가 강요받았던 것은 바로 밝게 웃는 것이었습니다. 도움을 받기 위해 웃어야 했고 배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밝은 표정을 지어야 했습니다”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포괄적인 성과 재생산의 권리가 배제되었고, 온전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보건복지부의 관련 제도는 유명무실했고, 병원의 정보, 시스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되어있는 게 없었습니다. 서지원 활동가님은 윤석열 정부가 더이상 여성가족부 폐지가 아닌 장애 여성으로서 겪고 있는 부당한 구조적 차별의 현실을 똑바로 볼 것을 역설했습니다.
한편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이선희 활동가님은 성매매 경험 당사자 네트워크 ‘뭉치’의 윤석열 정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성명서를 대독하며 한 번 더 우리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을 환기하며 여성가족부의 폐지안을 폐지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정부 부처 중 유일하게 성매매 보호법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이관한다는 것은 성매매 여성들이 탈성매매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적어도 성매매를 여성착취의 현실로 보고자하는 국가의 노력이 여성가족부를 통해 전달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활동가님은 “지금도 부실한 이 상황에서, 성평등 정책을 강화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폐지안을 내놓는 정부는 우리와 같은 폭력 피해 상황에 있는 여성들을 외면하겠다고 선포하는 것”이라며 규탄했습니다.
‘인구가족여성평등본부’?, 오히려 성평등 부처 기능 강화 필요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여성가족부의 기능을 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여성평등본부’로 이관한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여성가족부의 기능을 법무부, 복지부로 분산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평등을 약화하고, 성차별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과 관리를 어렵게 만듭니다. 대통령
대구경북여성단체 연합 남은주 상임대표는 실제로 국민의힘 집권 후 각 지방에서 성평등 퇴보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음을 언급하였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단 7글자는 지방에서 망령이 되어 살아움직였습니다. 부산, 경남 지역에서 국민의 힘 지자체, 단체장이 있는 곳은 대다수 성평등 정책의 축소와 폐지, 그리고 통합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홍준표 시장이 있는 대구에서는 상이한 여성 관련 기관 3개를 통합하였고, 여성회관이 도시관리 본부라는 시설로 바뀌었으며, 양성평등기관이 폐지되었습니다. 이처럼 여성가족부 폐지는 단순히 그 부처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닌 성평등 정책 전체가 후퇴하고 폐지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는 나아가 인권위원회의 폐지, 각종 기금의 폐지, 사회복지 축소로 이어지며,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정책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또한,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나영 활동가님께서 언급해주셨 듯, 한국의 역사에서 여성은 인구 정책의 도구로서 다뤄져온 역사가 있습니다. 국가가 원하는 인구 정책에 따라 처벌과 통제 관리를 하기 위해 낙태죄를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족계획 정책을 실행하며 불임시술의 경제적 혜택을 주었습니다. 장애나 질병이 있는 이들을 주거지가 불안정한 시설에 가두고, 강제로 불임시술, 임신 중절 수술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다 또다시 저출산을 이유로 임신 중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가임기 지도를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이처럼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산하에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그저 한 부처가 사라지는 문제만이 아닙니다. 나영 활동가님은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의 이관은 우리의 삶을 다시 이러한 통제와 관리 하에 놓겠다는 것”이라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절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와 같은 통제의 시대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알량한, 선별적, 심리적 지원이 아니라 평등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극적인 권리입니다. (…) 이를 보장하지 않는 모든 구조 안에 성적 불평등의 구조가 있고 인구 관리를 위한 통제 구조가 있습니다. 성평등은 이런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젠더 갈등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나영 활동가님의 발언처럼, 여성가족부의 폐지는 성적 불평등 구조를 외면하는 정부의 무능함과 무책임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이외에도 당일 많은 분들이 발언에 참여해주시며,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해 규탄했습니다. 발언이 끝날 때마다 현장의 사람들은 힘찬 구호를 외쳤습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어림없다. 여성가족부 강화하라”
“여성 시민 의견 수렴없는 여성가족부 폐지안 폐기하라”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로 가는 정부에 맞서, 지금 이 자리에서 여성들이, 시민들이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계속해서 싸울 것입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막고, 나아가 성평등 전담 부처를 강화하기 위해 여성들은 계속해서 투쟁할 것입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성평등 후퇴. “우리가 막는다”
당일 현장에는 연대발언 외에도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노가바’, 이소선 합창단의 공연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습니다.
<동네한바퀴>
다같이 막자 여가부폐지
민주주의 역행하는 여가부폐지
윤석열은 중단하라 여가부폐지
우-리가 막아낸다 여가부폐지
바둑이도 같이막자 여가부폐지
우-리가 막아낸다 여가부폐지
야옹이도 같이막자 여가부폐지
<악어떼>
여가부 폐지 내가막는다
성평등 후퇴 내가막는다
너희들이 발버둥쳐도
페미들이 막는다 막는다!
여-성 지우는 여가부폐지
꼼수개편 내가 막는다
성평등 후퇴 시도하면은
여성들이 막는다 막는다!
이소선 합창단은 ‘민중의 노래’와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두 곡을 들려주었습니다.
현장의 많은 사람이 노래와 공연에 참여하며 여성가족부 폐지의 반대의 노래가 종각역 일대에 울려퍼졌습니다.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한번 더 연대의 힘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퍼포먼스가 진행됐습니다. 이번 퍼포먼스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총괄했는데요, 성차별과 여성인권에 눈가린 채 성평등 후퇴의 길을 걷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고, 젠더폭력 피해자 인권보장, 성과 재생산권 보장,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확대 등을 요구하는 재치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이후 수천명의 참가자들은 종로 일대를 돌아 광화문까지 행진하며,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기조를 규탄하고, 성평등 부처 확대 나아가 우리 사회의 성평등을 위해 목소리 높였습니다.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하는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안, 그 누구도 아닌 “우리가 막을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서 나온 분노와 연대의 목소리는 윤석열 정부의 그 어떤 성차별 부정과 성평등 후퇴에도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 어떤 위기에서도 연대하며, 맞서 싸울 것임을 다짐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함께 맞서 투쟁하겠습니다. 성평등의 후퇴, ‘우리가’ 막을 것입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콘텐츠기자단 '틈'의 은화님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