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 언론, 미디어에서 ‘역차별’이라는 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평등을 위한 정책을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 말하고, 성평등을 위한 목소리를 한쪽 이익만을 요구하는 부당한 요구라고 말하는 것이죠. 한국 사회에서 ‘백래시 현상’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백래시(backlash)의 원래 의미는 사회, 정치적 변화가 일어날 때 이에 반발하는 대중의 움직임입니다. 한국에서는 2015년 미투 운동 이후 페미니즘 물결이 확산됨과 동시에 남성집단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반발 심리가 커지면서 백래시 현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요 근래에는 백래시가 정치권에서 특정 표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실질적인 정책이나 제도에도 영향을 미치며 성평등의 퇴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는데,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주변의 사람들과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합니다. 정치권에서 역차별을 논하고 성평등을 향한 움직임이 부당한 요구처럼 비춰지는 상황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만,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무엇을 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막막하기만 합니다.
신경아 교수님은 이런 상황을 보며, 문제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 길, 전략을 찾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이해를 도울 수 있는 하나의 촛불, 혹은 등불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백래시 정치> 책을 쓰셨다고 합니다. 당일 북토크에서는 한국 사회의 백래시 양상, 그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여성활동가로서의 고민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며, 풍성한 논의들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신경아 교수님께서 이 책을 쓰기까지의 고민, 계기, 생각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특히 한국 사회의 백래시 양상에 대해 설명해주신 부분에서 인상깊었는데요. 한국사회에서 백래시는 여성의 권리 신장에 대한 반발 정도 수준에서의 백래시가 아닌, 여성에게 침묵과 고립을 강요하는 ‘선제적 백래시’라는 것입니다. 백래시가 주로 여성운동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거나 거두었다고 생각되는 지각이 있는 시점에서 나타나는 반발이라면 한국 사회에서의 백래시는 여성운동의 성과가 아직 제도화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여성의 삶 조건이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예측하고 사전에 차단하려고 하는 움직임으로 이뤄지고 있죠.
페미니즘이 일종의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되고 정치권, 언론에서 이런 문제를 논하길 피하는 상황 속에서 여성들은 더욱 페미니즘을 외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가고 있습니다. 문제를 회피하고 침묵하게 되는 것이죠. 교수님은 백래시 때문에 점점 더 회피하고 침묵하게 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상황을 정의하고 또 떠들어야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한편으로는 2030 여성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후배, 제자, 젊은 여성들이 이 책을 읽으며, 나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나만 고민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었고, 실제로 주변의 많은 여성들이 위로를 받았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2030 세대의 여성들은 꼭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지는 않더라도, 대다수가 결혼이나 출산을 의무로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는 내 삶을 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세대와는 다른, 집단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각성한 최초의 세대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화두를 함께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수님은 책의 제목으로 ‘백래시’가 아닌 ‘백래시 정치’라 이름 붙였는데요. 한국사회에서 백래시는 정치권에 의해, 언론에 의해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정치의 수단으로 오용된 측면이 크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일부의 의견을 과장하고, 마치 그것이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보여줌으로써 페미니즘이 위축되고 안티 페미니즘이 더욱 힘을 얻게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문제의 본질, 원인들은 흐려지고 문제로 인한 불안감, 두려움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며, 약자에게 그 분노를 투사하고 있는 상황은 결국 양쪽 집단 모두가 동시에 파괴되는 상황으로 갈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며, 이것이 곧 ‘절망의 정치’라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백래시는 절망의 언어인 것이죠. 내가 힘드니 너도 힘들어야 한다, 절망의 정치이자 퇴행의 정치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수님은 계속해서 떠들어 사람들이 공감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함께 이야기하여 페미니즘이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에는 책을 중심으로 사전에 준비한 질문들과 이에 대한 교수님의 답변, 청중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여성단체의 활동가로서, 또는 개인으로서 백래시 시대에 직면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어떠한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평소 저는 개인으로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고민하면서도 스스로 침묵하는 제 모습에서 많은 부끄러움과 괴리감을 느껴왔는데요. 그래서인지 교수님께서 연결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해주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혼자서는 말하기 어려우니 여섯 명 정도 모여 단톡방을 만들어 일상적으로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그러다 여성으로서의 불편함을 논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우리 삶에 뼛속 깊이 침투해있는, 말하기 어려운 폭력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그런 연대와 연결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사람과 함께 하는 것, 고립과 침묵에서 벗어나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일상생활에서 오히려 페미니즘을 논하기를 꺼려하고 회피하고, 공격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 고립되어가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런 단체를 찾는 것이 제게는 어렵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감히 친구들에게 말하고, 페미니스트로서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과 연결하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쯤 이 막막한 상황 속에서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고민해보신 분이라면 이 책을 통해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절망의 정치가 아닌, 희망의 정치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 목소리를 모을 수 있을지, 이 책을 중심으로 함께 논의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드리며 이상 북토크 후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후기는 자원활동가 은화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댓글(1)
오십대 중반을 넘어 페미니스트라 칭하고, 배우고, 알아가고, 발언하는데 가끔 막히기도 하고, 주변에서 피곤해 하기도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함께 하는 분들이 있어 용기를 갖고, 분기탱천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