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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보호출산제는 여성과 아동 모두를 보호하지 않는다!
  • 2023-11-01
  • 1964

영아 유기 및 살해 사건이 연이어 보도되면서 지난 6월,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출생통보를 해야 하는 출생통보제가 통과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는 ‘익명출산제’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결국 10월 6일, ’위기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보호에 관한 특별법안’이라는 이름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임산부를 보호하는 법안이라니 잘된 것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보호출산제 법안은 미등록 아동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히려 지금의 현실에서 영아 유기를 조장할 수 있는 문제적인 법입니다. 보호출산제 법안이 통과된 지 하루 전날, 국회에서 보호출산제의 현안과 과제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각계각층의 구성원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보호출산제의 쟁점을 짚어내는 토론회였습니다. 


보호출산제 법안은 법적으로도 불완전하고 모순적입니다. 우선, 보호출산제 제정법안 제14조는 “임산부가 아동을 출산한 후 출생신고를 마치지 아니하고” “아동의 보호조치를 희망하는 경우, 출산일로부터 1개월 내에 신청”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요, 이는 출생 신고에 누락되는 아동이 없도록 의료기관에 출생통보 의무를 부여한 출생통보제와 상충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보호출산제는 생모의 의사만으로 보호출산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친부의 정보를 확보할 방안을 따로 두고 있지 않아 친부/생부의 권리가 침해될 소지가 큽니다. 그리고 제정법안 제9조 제2항은 “임산부가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충분하지 아니하다고 판단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보호자가 당사자 대신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되어있기 때문에 의사를 존중받지 못하는 장애여성이나 아동청소년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신수경 변호사 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한편, 보호출산제 쟁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양육 포기를 고민하게 되는 시점에 어떤 상황들이 있는지 봐야 합니다. 개인의 결정은 노동조건, 경제적 요건, 주거, 학업, 가족상황, 장애, 낙인, 폭력, 관계의 안정성, 법.제도적 불안정, 주변인의 개입 등 굉장히 다양한 변수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익명 출산은 “익명으로 아이를 맡길 수 있게 된다는 사실” 외에 이 문제를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습니다. “생명권의 실질적인 보장은 태어난 이후의 삶에 대한 보장,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돌봄과 삶을 보장”하는데 있으며 “임신을 중지할 권리와 출산하고 양육할 권리 모두의 보장이 필요”합니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


보호출산제는 미혼모를 “아이를 키울 수 없거나 키워서는 안되는 여성”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한국전쟁 기간동안 태어난 혼혈 아동을 ‘아버지의 나라’로 돌려보내기 위한 임시 조치”로 해외입양을 유구하게 시행해왔습니다. “가부장적 가족문화, 법률혼 중심주의, 여성의 피임이나 낙태가 허용되지 않는 문화 속에서 결혼제도 밖 여성의 출산은 입양 산업으로 흡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이 되는 문제를 그대로 둔 채 보호출산제만을 시행한다면, ‘아이수출국’이라는 오명을 가졌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는 아동과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최형숙 변화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


결혼이주여성이 아니라면, “기초생활보장법 상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생계, 주거, 의료 등 각종 급여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임신 전 건강관리 지원, 고위험 임산부 의료비 지원 사업 등도 결혼이주여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혼 관계 외에서 임신이 되었을 때 여성은 더욱 불안정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으며 보호출산제를 찾는 사람들은 유학생, 비호신청자, 이주노동자 등 국내 사회보장 시스템에서 배제된 사람들일 것입니다. 실제로 위기임산부 지원단체의 외국인 임산부 통계를 보면, 16%만이 결혼이주여성이었습니다. 위기임신 상황에 처한 여성의 절반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보호출산제가 여느 사회보장시스템과 같이 외국인을 배제한다면, 이 제도는 전혀 실효성이 없을 것입니다. (이예지 변호사 이주민센터 친구)


중증장애 부부의 임신 및 출산을 막기 위해 주변인이 불임시술이나 임신중지를 강제하는 등 장애인의 재생산권은 여전히 편견과 선입견으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호출산제는 “장애아동을 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더욱 합법화하는 제도”입니다. 또한, 제정법안 제9조2항은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에게 결정권을 부여하는 조항으로 명백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며, 인권침해행위입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1970년대, 어릴 적 길을 잃었을 뿐이었던 발표자는 입양위탁소에 입소되었습니다. 몇 번의 해외입양이 좌절된 후, 수용된 시설은 군대식 훈련, 구타 등 아동인권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이는 70년대 권위주의 정권시절, “누구의 권리도 고려되지 않은 채 오로지 국내,외 입양을 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무작위로 경쟁적으로 만들어지는 ‘고아호적’의 관행”이었습니다. 지금 모든 아동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출산제가 아닌, ‘보편적 출생등록 권리보장’입니다. (조민호 아동권익연대 대표)




이후 발표는 프로젝트팀 사회적 부모 이다정 작가의 “X-유기출산제가 가져올 미래사회”라는 미래 SF 단편소설이었습니다. 보호출산제가 사실상 장애아동 유기를 정당화하는 법으로 작용하며 산전기형아 검사 등을 통해 장애아동을 선별하고, 심지어 수술로 해결이 가능한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보호출산제로 유기할 수 있는 미래 이야기였습니다. 이후에는 노인까지 유기할 수 있는 법으로 발전했고 한 노인이 “셀프유기” 상담을 신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SF소설이지만, 보호출산제의 문제를 강력하게 경고하는 발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는 이 모든 발표들에 공감이 된다고 하면서도 보호출산제는 유기를 합법화하는 법이 아니고 부족한 부분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을 통해 보완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토론회가 끝난 후, 다음날인 10월 6일, 보호출산제 법안은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통과되었습니다. 익명 출산은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권리와 접근성이 충분히 보장되고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지원이 폭넓게 뒷받침된 이후,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될 수는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이 보장되지 않은 채 보호출산제만 입법이 되는 것은 토론회에서 나온 우려대로 오히려 아동 유기나 입양을 더욱 부추길 수 있습니다. 보호출산제가 통과된 이후, “낙태죄” 폐지 이후 계속 계류되었던 모자보건법 개정안들도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모자보건법 개정안들에는 임신중지 접근성을 더욱 보장하는 내용도, 재생산권 보장을 후퇴시키는 내용도 있습니다. 보호출산제가 통과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재생산권 보장을 촉구하며 정부와 국회를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유랑 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