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풀의 신림동 공원 강간 살인 사건 재판 방청 연대 후기
살면서 두 번 혼자 산에 간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대학교 4학년 땡땡이를 치고 어릴 적 가족들과 주말마다 오르던 산에 간 것이 첫 번째이고, 성폭력 사건 이후 몇 달간 방에만 있다 집을 벗어난 어느 날 탁 트이는 풍경이 보고 싶어 지역의 유명한 산에 오른 것이 두 번째입니다. ‘나 산에 왔어. 혼자 와서 혹시나 해 연락 남겨’ 하고 가족에게 톡을 남겨둡니다. 답변은 없습니다. 친구에게 남길 걸 그랬어요.
나무가 가득한 공원은 찾는 이에게 상쾌함과 든든함, 혹은 필요했던 그 무엇을 주는 장소입니다. 처음 이 사건을 접한 건 휴대폰 속 뉴스를 통해서였는데 가해자 검거 사진이 있었는지 ‘공원 강간’ 문구가 기사를 클릭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제게 위안이 되는 공간인 숲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023년 8월 24일, 목요일 피해자 추모 및 정부 규탄 집회에 참석합니다. 피해자와 함께 운동해온 친구분의 발언이 떠오릅니다. “우리 친구는 끝까지 싸웠을 거라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자원 활동을 하는 월요일, 해당 사건 재판이 있다고 하여 동행합니다.
법원에 도착하여 법정 출입 소지품 검사를 하고, 우산을 보관함에 넣고 4층으로 올라가니 많은 사람이 문 앞 복도에 있었어요. 비공개 재판이구나. 복도를 메운 사람들이 노트북으로 뭔 갈 쓰고 있는 걸 보니 기자들인 것 같았어요. 또 다른 연대자가 도착했습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을까, 긴 기다림 끝에 법정 문이 열렸어요. 검사와 피고인(가해자)의 문답이 이어집니다. 판사의 질문과 국선 변호사, 피해자의 변호사, 피해자 오빠의 진술을 듣습니다. 검사와 판사의 질문에 답하는 피고인의 태도가 다릅니다. 판사의 질문에는 조금 더 분명하게 대답하고, 순응하는 표현을 씁니다.
피고인은 지난해 벌어진 또 다른 페미사이드 (Femicide 가장 극단적인 젠더 폭력의 형태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살해하는 것을 의미) 범죄 강간 살인 미수 사건을 검색하고, CCTV가 없는 장소를 물색하고, 양 손에 끼울 버클을 주문하고, 성폭행할 목적으로 범죄를 행했습니다.
피해자는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그동안 재판 방청 연대를 해오면서 피해자에게 맘속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가해자의 합당한 처벌을 빌었는데 이번에는 피해자가 생존해 있지 않습니다. 이번만큼 생존자라는 단어가 저에게 맺힌 적이 없습니다.
피해자가 법정에서 의견진술을 어렵게 얻어낸 몇 년 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판사가 피해자 의견진술을 먼저 안내합니다. 이렇듯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사법부의 판결을 먹고 자라는 성범죄자들에게 응당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길 바랍니다.
<이 후기는 자원활동가 풀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