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활동 /
  • 열림터
  • 울림
  • 울림
  • 열림터
  • ENGLISH
2024 총선대응 🌱페미니스트 콩깍지 프로젝트🌱 릴레이 '정치 에세이' 첫번째
  • 2024-04-01
  • 544


🏳️‍🌈페미니스트 콩깍지 프로젝트는?

페미니스트들이 선거를 마주하며 느끼는 혼란함과 고립감에서 벗어나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누고, 공부하고, 세계여성의날 캠페인도 기획하며 든든한 거점(팟pod)으로 역할해왔습니다. ‘콩깍지들’의 삶 속에서 길어올린 우리가 바라는 가치, 정치 정책에 대한 글을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 콩깍지 프로젝트🌱 릴레이 '정치 에세이' 첫번째


이상queer해보이는 사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


 Çağla 챨라 (한국성폭력상담소 페미니스트 콩깍지 프로젝트)


‘LGBTQIA’란 무엇인가요? 각각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Bisexual), 트렌스젠더(Transgender), 퀴어(Queer)/퀘스쳐너리(Questioning), 인터섹스(Intersexaul), 에이섹슈얼(Asexual)을 뜻합니다.


저는 에이섹슈얼에 포함되는 데미섹슈얼입니다. 에이섹슈얼에는 에이섹슈얼, 데미섹슈얼(Demisexual), 그레이섹슈얼(Graysexual)이 포함된다. 데미(Demi)라는것은 절반을 의미합니다. 50%가 아니라 흑과 백이 번갈아 가며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둘 다 반반씩 있어서 데미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무성애자일 수도, 유성애자일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성을 사랑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동성을 사랑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연정을 느끼지 않는 게 당연한 것처럼, 때에 따라 느끼고 느끼지 않는 것 또한 가능합니다. 저는 데미섹슈얼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사랑(연정끌림)이나 성적(섹슈얼끌림)인 호감을 느낄 때, 보통 '1번 조건'으로 끌림을 느낍니다. '1번 조건'은 외모, 목소리, 옷차림 등 외적인 부분을 의미합니다. '2번 조건'은 내면적인 부분을 의미합니다. 가치관, 성격, 취향, 좋아하는 것, 최근 관심사 등. 그리고 2번 조건을 알게 되면서 더 큰 끌림을 느끼거나 끌림이 반감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데미섹슈얼들은 2번 조건으로만 끌림을 느낍니다. 저는 사람의 외모만 보고 섹슈얼적 욕망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2번 조건에 대한 걸 알기 전까지 저는 그 사람에 한해서는 무성애자나 다름 없습니다. 물론 2번 조건을 알게 된다고 해서 무조건 섹슈얼 끌림을 느끼게 되지는 않습니다.


또 저는 그레이로맨틱(Grayromantic)이기도 합니다. 그레이는 흑과 백이 섞인 것을 의미합니다. 로맨틱을 느끼지만, 유로맨틱(Alloromantic)에 비해서는 희미하게 느낍니다. 꼭 로맨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로맨틱한 감정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저에게 아주 어려웠습니다. 심취와 이상화, 신체적/정신적으로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 독점하고 싶은 마음, 내 감정에 답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상대의 행동을 과하게 생각하는것, 상대를 위해 자기 삶의 일부를 바꾸는 것, 상대가 반대로 자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갈수록 집착하는것, 이라고 합니다. '이런 감정을 안 느껴봤느냐' 라고 묻는다면 느껴봤다고 하겠지만, 이런 감정들이 '필수불가결한 감정인가'라고 되묻는다면 '글쎄? '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감정들을 억누르려고 노력하면 쉽게 억눌러질 정도로 희미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저는 제가 그레이로맨틱이라고 정체화했습니다.


하지만 로맨틱과 섹슈얼이 없어도 그냥 친한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책 『에이스:무성애로 다시 읽는 관계와 욕망, 로맨스』에서는 이런 감정을 플라토닉 사랑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플라토닉 사랑은 로맨틱 사랑과 약간 다르지만 그렇다고해서 겹치는 부분이 아예 없는 건 또 아니라고 합니다. 명확하게 가를 수 없다는 것이죠.


플라토닉한 사랑에서 표현되는 감정은 친구(들)를 경애하거나 헌신하는 마음이라고도 합니다. 유로맨틱분들은 사랑하는 애인이 있어도, 특별히 더 아끼고 긴밀한 관계를 맺는 친구(들)가 있지 않나요? 이 책에서는 플라토닉 사랑, 우리가 아주 친한 친구라고 부르는 관계도 사랑이 아닐까? 라고 의문을 던지는 예시가 나옵니다.


캐나다 정부는 여든세 살 친구 밀드러드 샌퍼드와 함께 살던 일흔세 살 미국인 여성 낸시 인퍼레라를 추방했다. 두 사람은 몇년 전 노바스코샤로 이사했고 돈을 모아 14,000달러짜리 이동 주택을 같이 구입했다. 이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설명되었고 낸시는 치매가 있는 밀드러드를 돌보았다. 브레이크는 이 사건에 관해 이렇게 쓴다. “그런 우정은 장기적인 상호돌봄과 동반자 관계라는 결혼의 주요 목적 한가지를 수행한다. 그러니 이 관계는 결혼과 유사한 법적 보호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추방을 막아주는 보호 조치는 낸시와 밀드러드가 아니라 오히려 폭력적인 결혼 관계를 이어오는 커플이 더 많이 받았다.(그래도 7년이 지나 낸시는 캐나다 영주권을 취득했다) 

- 『에이스:무성애로 다시 읽는 관계와 욕망, 로맨스』, 224~225쪽



지난 2023년 4월 26일 국회 소통관에서 용혜인·류호정(좌측에서 6·5번째) 의원 및 정당·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용혜인 의원실

이런 관계가 어떻게 사랑이 아닐 수가 있을까요? 저는 이것이 로맨틱 없는 사랑의 예시라고 봅니다. 이 관계를 이 책에서는 ‘플라토닉 퀴어 파트너’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무릎을 쳤습니다. 내가 바라던 관계가 바로 이거야! 저는 그다지 로맨틱을 바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저 서로가 서로를 경애(敬愛)하고 헌신하는 관계를 바래왔던 것입니다. 삶에서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보호자 역할을 해 줄 든든한 지지자. 그리고 나도 언제든지 기꺼이 지지자가 될 수 있다고 서로 약속한 관계, 그것을 바랐던 것입니다.


꼭 로맨틱과 섹스가 있어야 할까요? 사실 결혼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농담이 있는 것처럼 사회는 사랑을 이유로 서로에게 강제로 책임을 지우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로맨틱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런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방법이 있나 라고 생각해 보니 생활동반자법이 떠올랐습니다.


생활동반자법이란, 특정인과 동거하며 협조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을 ‘생활동반자’로 규정하고 배우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있는 법입니다. 혼인 관계가 아닌 개인 간의 결합이라도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한국에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하자는 이야기가 나온지는 10년이 넘었습니다. 2014년 진선미 국회의원실에서 준비했지만 발의하지 못했습니다. 반대의 근거는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동성 간 결혼 가능성 우려, 쉽게 동거 종료를 가능하게 하는 만큼 생활동반자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나 입양된 아동에게 불안정한 양육 환경을 제공하며, 아동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입니다. 2023년 4월, 드디어 생활동반자법이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에 의해서 발의됩니다. 용 의원은 “생활동반자법은 혼인제도 바깥에 있는 느슨하고 자율적인 관계들을 폭넓게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라며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법안 통과는 되지 않았습니다.


언론인 빅키 라슨(Vicki Larson)은 지난 2017년 온라인 뉴스 매체 쿼츠(Quartz)에 이런 글을 실었습니다.


‘미국의 연방법은 기혼부부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1100개 이상의 법을 포함해 다른 헌신으로는 얻을 수 없는 특권을 준다. 배우자는 군인 혜택과 사회보장, 장애관련 혜택과 더불어 서로의 의료보험 혜택을 공유한다. 서로 의료 결정을 대신 내려줄 수 있다. 회사는 배우자의 상이라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경조 휴가를 주지만, 친구에 그치는 사람이 상을 당해 휴가를 요청하면 그렇게 수월하게 승인이 나지 않을 것이다. 생판 남과 결혼해 자기 건강 보험 혜택을 주는 건 가능하지만 양육자에게 보험 혜택을 주는 건 불가능하다. (중략) 이런 약속이 오로지 로맨틱하고 성적인 맥락에서만 이뤄지고 또 법적으로 인정되는 건 타당하지 않다.’


왜 로맨스와 섹스가 있는 이성 간의 결합만 이런 특권을 가질 수 있나요? 그레이로맨틱, 데미섹슈얼인 나도 퀴어플라토닉파트너를 맺고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법적인 보호자의 지위를 서로 나누고 싶습니다. 이상(queer)해보이는 사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