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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로라 베이츠, 『인셀 테러』 - 북클럽 <폭주하는 남성성의 현재들> 1회차
  • 2024-07-01
  • 900


6월 11일, 한국성폭력상담소 1층에 9명의 페미니스트가 모였습니다. 한 손에는 로라 베이츠의 『인셀 테러』를 들고, 멋쩍은 첫 인사를 나누었어요. 성문화운동팀 세 활동가의 발제를 시작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인상깊었던 책 속 구절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해볼만 하다고 느꼈던 지점을 여러분께 공유합니다.


그 전에, 책의 구성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몇 가지만 골라 소개하기에는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이 방대하고 자세해서 여러분이 꼭!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전부 496쪽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온라인 여성혐오 커뮤니티의 기원부터 유형, 그리고 이에 대한 대응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저자가 ‘알렉스’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그의 정체성을 뒤집어 쓰고 약 1년간 매노스피어(여성혐오 커뮤니티)를 탐색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셀, 픽업아티스트, 믹타우, 남성권리운동가 등으로 여성혐오 커뮤니티의 유형을 나누고, 그들이 다양한 양상으로 여성혐오를 생산하고, 체득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중첩되어 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현실의 여성 폭력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폭력이 인셀 커뮤니티 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그동안의 사건에 비추어 해석했고, 여성뿐 아니라 취약한 남성 역시 착취하는 매노스피어의 모순적 구조를 책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인셀은 정말 ‘방구석 여포’일 뿐인가?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인셀의 여성 폭력이 가해자 개인만의 문제라고 여겨지고 경시되는 이유가 사회의 착각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첫 번째 주장은 이런 집단들이 다른 극도로 고립된 비주류 인터넷 커뮤니티 들이 그렇듯, 극단적이고 비정상적인 의견을 가진 소수의 남자로 이루어진 소규모 세력이라는 것이다. (...) 두 번째 주장은 이런 집단의 회원들은 사회에서 동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므로 오프라인에 충격이나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 번 째 주장은 앞의 두 가정을 근거로 이 집단들은 현실에서 구체적인 위협을 전혀 가하지 못하므로, 따라서 무시하거나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종종 들어본 것 같지요? “걔네가 이상한거야”, “찐따들 모여있는 데 잖아" 이런 말들과 연결되는 맥락입니다. 언론에서도 흔하게 보입니다. 여성 폭력의 가해자가 어떤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다느니, 어떤 정신적 취약성으로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다느니… 가해자에 서사를 부여하는 많은 수식어와 맞아 떨어집니다.

저자는 이같은 착각이 한데 뭉쳐 더욱 위험한 현실 안주를 낳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실제로 대형 커뮤니티 사용자와 게시글, 스레드 수를 제시하며 그들이 고립된 집단이라는 첫 번째 주장을 무너뜨립니다. 저자와 인터뷰한 학계 연구자 제이컵 데이비 역시 영국에만 매노스피어의 규모가 1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하며, 여성혐오 커뮤니티에 대해 초국가적인 운동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어 매노스피어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강간을 옹호하고 근친상간에 대한 글을 쓴 한 회원이 현실에서는 지방 의회의 후보로서 유망한 정치 꿈나무(책에는 매노스피어와 대안우파세력의 관계를 설명하는 별도 챕터가 있는데, 이것도 아주 흥미롭답니다)임이 밝혀졌던 사건을 이야기하며, 두 번째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합니다.

그리고 온라인 속의 여성혐오가 실제 위협과 폭력으로 드러난 사례로, 엘리엇 로저가 저지른 ‘산타바바라 총기난사 사건’을 드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엘리엇 로저가 이 사건 이후 인셀 커뮤니티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인셀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로저를 영웅, 성인, 군주, 엘리트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후 벌어진 많은 사건의 가해자들이 그들의 선언문, 유서, 일기 등에서 로저를 언급하였고요.

저자는 여기에서도 매노스피어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사회의 이면을 짚습니다. 어느 언론에서도 그 사건들 사이의 연관성을 지적하거나 여성혐오를 그 동기로 지목하지 않았다고 하면서요. 여성 폭력이 꾸준히 발생하는데도 ‘혐오'는 여전히 의제화되지 못합니다. 한국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지요. 저자는 그 이유가 인셀의 표적이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인터넷은 고사하고 오프라인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폭력을 진지하게 여기는 일이 좀처럼 없고, 장난이니 농담이니 하면서 쉽게 웃어넘긴다. (...) 그리고 그러는 동안 인셀 커뮤니티는 조용히 성장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충원하고, 승리에 도취한다.”


여자를 [ 테러 ]하는 남자들

성문화운동팀 동은 활동가는 저자가 매노스피어의 여성 폭력을 ‘테러’로 규정하는 것이 인상깊었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 테러라는 단어가 전하는 개념과 서구 사회에서의 개념이 다르다는 점을 짚으며, 우리 사회는 이를 어떻게 명명해야할지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분명 한국 사회는 ‘테러’라는 개념과 그렇게 가깝지 않은 것 같습니다. 테러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극단주의 무슬림으로 대표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테러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시각을 조금 달리 해봅시다. 저자는 매노스피어의 여성 폭력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특정 인구집단에 대한 증오를 확산하고 공포를 조장하겠다는 확연한 의도를 가지고 백인 남성이 저지른 대량 살상 범죄를 묘사할 때(바로 이것이 테러리즘의 정의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 인구집단이 여성일 경우 ‘테러리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 이 남자의 온라인 행보를 ‘급진화'라고 부르거나, 그가 몰두했던 온라인 커뮤니티에 ‘극단주의'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는다.”


저는 이 대목에서 뭔가 뒷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간 목격했던 수많은 여성 폭력 사건이 머릿 속을 스쳐갑니다. (작년 11월, 캐나다에서는 여성혐오 살인을 저지른 20대 남성에게 살인죄와 더불어 ‘테러죄’가 적용되어 무기징역이 선고된 바 있습니다. 기사의 링크를 남기니, 참고해보셔도 좋겠습니다 🙂)


그렇다면 다시 동은 활동가의 고민으로 돌아갑니다. 테러와 ‘동떨어진’(정말?) 사회인 한국에서, 우리는 여성을 향한 테러를 어떻게 명명해야 할까요? 어떻게 언어화해야 사람들의 피부에 더 잘 느껴질까요? 앞으로의 과제로 가져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동은의 이야기를 듣고 책과 연결되어 떠오르는 부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설득해야할 사람에는 누가 있을까요? 여성 폭력과 매노스피어의 문제점을 함께 외치고 변화를 이끌어 갈 사람에는 여성만 해당될까요?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아래와 같이 언급했습니다.


“모든 남자를 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다.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남성 운동가들과 교육자들, 일선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남성을 포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남성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진심으로 애쓰는 커뮤니티들과 폭력적 관계 같은 문제를 일소하려고 싸우는 남성들을 포괄하는 진정한 남성운동이 존재한다. 이런 운동들은 유해한 남성성이 여성에게만큼이나 남성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런 남성성을 문제 삼고 해체하려고 한다. 그러나 증오로 가득한 다른 남자들의 운동으로 인해 이 운동은 위협받고 빛을 잃고 있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매노스피어로 흘러들어가는 취약한 남성들과 어린 소년들에 대해 집중합니다. 그는 매노스피어가 가하는 가장 큰 위협은 남성들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겪는 고통과 좌절은 매노스피어가 그렇게나 지키고자 하는 고정된 남성성, 가부장적 성역할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노스피어는 권력을 주창하며 그 구조를 강화하고 있지요.

저자는 매노스피어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몇 가지를 꼽습니다. 극우 극단주의자들이 결집하는데 막강한 수단과 공간을 제공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변화, 소년의 정신적 취약성 돌봄, 남성 개인이 매노스피어에 문제를 제기하고 주변 남성에게 말걸기 등이 그것입니다. 저는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 중 교육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엥? 교육이라니. 너무 뻔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는데요. 저자는 학교에서 성교육, 페미니즘 교육을 진행했던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그 중요성을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여성혐오가 만연한 한 학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대동단결하여 풀어냈는지를 공유했는데요. 단순히 무언가를 가르치는 ‘교육’을 넘어, 학생들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내고 방안을 제안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고, 대규모 조회와 교사들의 집단 토론을 하고, 부모들을 초대해 온라인 콘텐츠에 대해 교육하는 시간을 가지며 사고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 자체를 다진 것입니다. 그 긴 과정에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 역할모델들 역시 책임감 있게 의지를 발휘했기에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라고 저자는 회고합니다.

우리의 교육은 어떤가요? 저는 얼마 전 요즘 성교육이 학교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학교의 성교육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교육이 사교육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면서, 제가 학생시절 받았던 성교육을 생각하면 또 ‘그럴만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로라 베이츠의 인셀 테러는 단순히 인셀 커뮤니티에 대한 탐구를 넘어, 매노스피어가 탄생하고 몸집을 불려가며 유지되는 사회 배경부터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후기에서 담지 못한 다른 이야기들이 많으니, 꼭! 책을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후기는 회원홍보팀 산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