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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 [단호한시선] 여성의 고통을 팔아 돈을 버는 유튜브, 지금 필요한 건 ‘참교육∙사이다’ 가 아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상상력이다.
  •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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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 단호한시선 



여성의 고통을 팔아 돈을 버는 유튜브,
지금 필요한 건 ‘참교육∙사이다’ 가 아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상상력이다. 


여성들의 고통을 이용해 남성의 얼굴을 한 유튜버들이 돈을 벌고 있다. 


7월 11일, 유명 여성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데이트상대였던 전 소속사 대표에게 약 4년간 착취와 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밝히는 영상을 올렸다. 사이버렉카*로 불리는 유튜버들이 해당 피해 사실을 빌미로 이 여성을 협박하고 돈을 갈취한 정황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사이버렉카는 여성 유튜버의 피해 사실을 입에 올리며 수익의 정도를 가늠하고, 피해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 또한,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유튜브 채널에서 폭로되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은 외부의 폭로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혀야 했던 것은 지난 6월, 밀양 성폭력 사건이 재조명되었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사이버렉카가 피해자와 협의 없이 사건의 가해자 신상을 공개하면서 20년 전 사건이 다시 주목받았고, 피해자는 영상을 지워달라고 요청하며 나서야 했다. 


조회수와 구독자 수가 증가할수록 금전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튜브 플랫폼 환경에서 사이버렉카는 여성의 피해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성폭력 피해를 폭력으로 이해하고 사회적 대응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 방법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며 소비하는 문화는 이미 만연했다. 성폭력을 다룬 영화의 장면은 파편화되어 남초 커뮤니티에서 자극적인 성적 영상물처럼 유통되기도 한다. 주류 언론이 성폭력 통념과 피해자에 대한 편견에 기반해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한 것도 오랫동안 반복된 일이다. 사이버렉카들이 여성의 성폭력 피해를 다루는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치 피해자의 편인 것처럼 몸을 조금 돌린 것뿐이다. 성폭력의 자극적인 이미지만 차용해 조회수를 끌어올리고 조회수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는  남성들의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 여기에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성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이나 문제 해결에 대한 어떠한 고민도, 어떠한 숙의도 없었다. 


사이버렉카는 이제 영상을 제작하는 것을 넘어 ‘영상을 올리지 않겠다’는 것을 명목으로 여성을 협박하여 금전적인 이익을 취하는 것까지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젠더폭력을 이용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피해 여성을 직접적으로 협박한 ‘사이버렉카연합’ 뿐만이 아니다. 피해자를 성적으로 착취하고 지배하며 거액의 돈을 갈취한 가해자부터 변호사 윤리를 저버리고 사이버렉카에게 피해자의 피해 내용을 팔아넘긴 가해자 대리 변호사, 이 모든 것을 폭로하여 피해자가 원치 않았음에도 피해사실을 말하게 만든 유튜브 채널 모두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착취를 중심으로 한 수익 구조의 공모자이다. 남성연대가 여성을 착취해서 수익을 얻는다는, 웹하드카르텔과 N번방에서 보아온 구조가 사이버렉카와 유튜브를 통해 되풀이되는 셈이다. 수익으로 직결되는 조회수 올리기에 큰 기여를 하는 혐오, 차별 컨텐츠를 방조하는 유튜브 플랫폼도 이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이버렉카들이 여성 유튜버를 협박했다는 사실이 보도된 뒤, 유튜브 코리아가 해당 채널들에 대한 수익 창출을 정지하는 결정을 했다. 바로 처분이 내려진 것은 다행이지만, 피해자가 많은 것을 걸고 지지 여론을 형성해야지만 책임 주체인 플랫폼이 움직이는 것은 문제다. 방송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유튜브에는 폭력적이거나 혐오표현을 생산하는 컨텐츠를 제한하는 자체 규정이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유튜브 영상은 버젓이 게시된다. 작년 디씨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에서 취약한 여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성착취가 발생한다는 것이 보도되었을 때**, 플랫폼인 디씨인사이드는 갤러리를 일시 차단하라는 경찰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또한,  플랫폼에 차단이 아닌 자율규제 강화를 권고했다. 그러나 온오프라인에서의 경계가 불분명한 채 폭력과 착취 피해가 발생하는 지금,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정책 제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이버렉카의 영상물을 보며 통쾌함을 느꼈다면, 우리 잠시 멈춰서서 다시 고민해볼 시점이기도 하다. 이것이 과연 몇몇 '삐끗한' 사이버렉카 유튜버만의 문제일까? 우리는 왜 누군가가 유튜브를 통해 ‘나락’가는 것을 보며 열광하고, 정의구현을 했다는 효능감을 얻게 되었을까? 사이버렉카가 말하는 ‘정의구현’이 아닌 성평등 정의가 구현되는 더 나은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다른 시민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구조적인 성별권력관계를 들여다보는 세상, 성폭력 피해자가 해결의 주체로 오롯이 있을 수 있는 세상, 여성이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세상을 상상해야 할 때다.


* 사이버렉카는 교통사고 현장에 몰려드는 견인차처럼 논쟁이 되는 사건에 몰려들어 자극적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이득을 취하는 유튜버를 뜻한다.

** 시사인, 우울증갤러리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23.05.24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286




2024.07.23.(화)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