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 저녁 7시, 온라인 화상회의 ZOOM으로 여성주의 수다모임 <페미니스트 아무말대잔치>가 열렸습니다.
이번 달 참여자는 앎, 나타샤, 이음 총 3명이었습니다.
첫 화두는 7월 3일부터 7월 21일 사이에 열린 제13회 아랍영화제였습니다.
특히 한 참여자가 7월 중순에 영화제 표를 무료 나눔 해주셔서 함께 보았던 다큐멘터리 영화 <울파의 네 딸들>의 소감을 나누며 화기애애하게 수다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튀니지 여성인 울파는 결혼식 날 초야를 치른 후 피가 묻은 침대 시트로 '처녀성'을 증명해야 하는 관습에 저항하며,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요하는 남편을 패서 남편의 피를 침대 시트에 묻힌 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을 만큼 몸도 마음도 강한 인물입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내면화하고 있는 가부장적-종교적 이데올로기에 따라, 네 딸들에게 여성의 성은 물론 몸 자체를 죄악시하도록 가르치며 억압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울파의 네 딸들 중 첫째와 둘째는 10대 때 IS에 가담하기 위해 집을 떠났는데, 이 영화에서는 첫째와 둘째 역할을 연기할 전문 배우를 섭외해 울파, 셋째, 넷째와 함께 그들 가족의 추억과 비극을 재연하며 복기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튀니지의 사회·정치·경제적 상황 변화가 여성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 엄마가 딸에게 물려주는 가부장적-종교적 이데올로기, 보수적인 엄마에게 반발하던 두 10대 여성이 왜 하필 (더 극단적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IS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등에 관하여 많은 질문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는 <피부를 판 남자>라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아랍권은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가부장적-종교적 문화가 강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아랍영화제 상영작들을 보면서 예상보다 여성 감독의 작품 또는 여성 서사를 페미니즘 관점으로 다룬 작품이 많아서 인상 깊었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울파의 네 딸들> 포스터(사진 출처: 영화의 전당)
다가오는 페미니즘 연극제(7~8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8월), 여성인권영화제(9월) 일정도 공유하고, 또 기회가 생기면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이야기 나눴습니다.
여성영화만 모아놓은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에 '퍼플레이'라는 여성영화 전문 스트리밍 플랫폼을 추천받기도 했습니다.
페미니즘 연극제 https://www.instagram.com/femitheatrefest/
서울국제여성영화제(올해 정보는 아직 준비 중) https://siwff.or.kr/kor/
여성인권영화제(올해 정보는 아직 준비 중) http://www.fiwom.org/main/main.html
퍼플레이 https://purplay.co.kr/service/
이어서 7월에 공론화되었던 여러 가지 이슈들에 관해 서로 답답한 심정을 나누었습니다.
예를 들면 유튜브에 어떤 여성이 36주차에 임신중지를 했다는 영상을 올리자, 보건복지부가 살인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를 했다고 합니다.
2021년에 낙태죄가 폐지된 이후로 아직도 미프진(유산유도제) 도입을 하지 않고 있는 보건복지부가 이런 때에만 발빠르게 수사 의뢰를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습니다.
해당 유튜브 영상은 정황상 가짜 영상으로 추정되는데, 온갖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그 내용을 퍼다 나르면서 '낙태죄를 부활시켜야 한다, 주수 제한을 해야 한다'라는 식의 여론이 형성되었던 것도 대단히 우려되는 점이었습니다.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어렵게 이뤘던 만큼, 미국처럼 임신중지를 다시 금지시키려 하는 여러 흐름들을 막아내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최근 들어 친밀한 관계와 폭력을 이용하여 여성에게 방송을 시키고 기획사 대표 등의 명목으로 그 수익을 착취하는 남성들에 대한 공론화가 크게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유튜버 1위로 꼽히는 쯔양님이 오랫동안 데이트폭력과 경제적 착취를 당해왔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이버렉카들까지 오히려 피해자인 쯔양님을 협박해 돈을 받아갔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밖에도 지난 7월 13일에는 아내에게 성인방송 출연을 강요하며 감금, 협박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남성이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성인 플랫폼에서 포르노그래피 콘텐츠를 업로드하다가 지난 6월에 스스로 세상을 떠난 한선월님도 정황상 그와 비슷한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 7월 14일에는 과거 소라넷에서 '야한솜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던 분도 자신의 SNS에 비슷한 피해 사실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어찌 보면 친밀한 관계를 이용해 여성에게 성매매를 시키는 이른바 '포주'들과 그 가해의 구조는 유사하지만, 온라인 방송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과 심각성이 새삼 크게 느껴집니다.
이번 모임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사이버렉카들에 대한 분노가 특히 컸습니다.
안 그래도 밀양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의 동의 없이 자극적으로 다루며 자신들의 돈벌이 기회로 삼는 사이버렉카들의 행태에 화가 나 있었는데, 사이버렉카가 활동 중에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하여 뒤로는 피해자들을 협박해 '기부금'을 빙자한 돈을 받아내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습니다.
이번 기회에 사이버렉카들에 대한 문제제기와 경각심이 널리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참여자가 해준 말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투표가 있다. 어떤 이슈, 어떤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고 조회수를 올려주고 수익을 만들어줄지가 바로 그것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정확한 문구는 찾아봐야 하겠지만, <ADHD 여성을 위한 혁신적인 안내서>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사진 출처 : 교보문고(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169807)
세상에 대한 환멸과 불안을 주는 소식이 너무 많아서 감정적으로 지치는 요즘이지만, 이런 때일수록 더더욱 인권과 피해자 관점을 말하는 언론보도, 콘텐츠 등을 찾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투표를 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디에도 제대로 이야기해보지 못했던 속마음을 토해내고, 정리하고, 힘낼 수 있게 함께 해 주셔서 이번 모임도 참여자분들께 참 감사했습니다. 다음 모임에서 또 만나요.
페미니스트 아무말대잔치는 매월 세 번째 금요일 오후 7시-10시, 온라인 화상회의 ZOOM으로 진행됩니다(오프라인 모임은 분기별 진행 예정이에요).
다음 모임은 2024년 8월 16일입니다. 신규 참여자 대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