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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다큐 같이 보기! - <폭주하는 남성성의 현재들> 북클럽 3.5번째
  • 2024-07-30
  • 952

2024년 7월 16일, 이안젤라홀의 불이 꺼지고 티비가 밝았습니다. 



(사진: 어두운 방에 오리들이 모여있고 ‘마피아는 고개를 살짝 들어서 서로를 확인하세요’ 라는 자막이 있다.)


어두운 지하실… 마치 마피아 게임이라도 할 것 같은 스산한 분위기… 에서 우리는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를 시청했어요. 이 다큐멘터리는 3회차 진행된 북클럽 <폭주하는 남성성들>의 보충 자료였습니다. 원래 따로 보고 만나기로 했지만, 같이 보면 더 재밌으니까. 시간 되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비공식적으로 모여서 같이 봤답니다. 


그동안 우리 북클럽은 <인셀테러>, 각종 논문들, <인싸를 죽여라> 등을 읽으면서 영미권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의 생태에 대한 지식을 상당히 획득했는데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텍스트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지도 범람하고, 이미지들도 텍스트로서 기능하죠. 특히 ‘밈’의 정치학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귀엽고 웃긴 짤방을 모으기도 하는데요. 짤방 이미지의 원출처나, 그 장면의 맥락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사실 짤방과 밈의 재미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원맥락은 소거된 밈을 누가 어떤 의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맥락이 생긴다는 점. 그것을 이번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가 보여줍니다. 


수수의 짤방 목록 하나 : 가해자들의 전화를 받거나 폭력적인 남성성에 화가 날 때 사용할 수 있다


(사진: 푸른 들판에서 토끼 두 마리가 서 있다. 한 마리가 두 발을 치켜들었다. 자막은 말한다. “싸울 때에는 수컷의 얼굴을 초당 5회까지 때릴 수 있습니다.)



수수의 짤방 목록 둘 : 정치인이 짜증날 때 사용할 수 있다


(사진: 애니메이션 파워퍼프걸의 한 장면이다. 노란 양갈래 머리를 한 캐릭터 버블검이 화난 표정으로 전화기를 들고 “What do you want, Mayor?” 이라고 외친다.) 


개구리 페페는 2005년, 만화가 맷 퓨리가 만든 캐릭터입니다. 인터넷 블로그가 막 발달하던 시절 그는 BOY’S CLUB 이라는 만화를 그려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합니다. 누구나 쉽게 따라 그릴 수 있는 모습의 페페는 이후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4chan 으로 흘러 들어가고, 헬스하는 남성들에 의해, 오프라인 세상과는 거의 접촉하지 않고 온라인 소통을 위주로 하는 소위 ‘찐따같은’ 남성들에 의해, 그들이 스스로의 삶을 자조하면서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온라인 유행의 경로는 정확히 알기 어려운 면이 많은데, 페페는 다양하게 재창조되어 4chan 너머의 커뮤니티로도 흘러들어가며 완전히-아주-매우 유명한 밈이 됩니다. 이후 이 밈은 여러 감정과, 행위와, 경로를 통해 신나치주의 트럼프 지지 백인남성우월주의자들의 표상이 되고 마는데요. 자신이 만든 캐릭터가 혐오를 전파하는 도구가 되고 ‘혐오표현물’로 등재되기까지 하는 상황에 원작자는 다양한 캠페인과 저작권 소송 등을 통해 페페를 구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진: 개구리 페페가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캐릭터 페페를 둘러싼 모험과 활극 같기도 해서 꽤나 몰입도가 있습니다. 원작자가 직접 그리는 페페 그림은 디지털 풍화를 거친 밈으로만 만나던 페페와 사뭇 다르기도 하고요. 뿐만 아니라 남초 커뮤니티에서 생성된 특정한 정동이 어떤 방식으로 혐오와 결부되고, 이후 정치권에서 활용되는지 살펴볼 수 있기도 했어요. 


다큐를 다 보고, 클럽 멤버들의 소감 나누기 시간이 있었는데요. 조용히 메모한 것을 공유해봅니다. 

🥹 SNS 에 일러스트나 만화를 올리기도 해서, 창작자의 마음으로 다큐를 보게 되었다. 내 캐릭터가 갑자기 혐오의 밈의 된다면 어떡해야 할까?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겠다! 저작권법 통해 일부 해결되어 참 다행이다.

🤓 밈 세계가 왜 중요한지, 밈을 연구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이해했다. (연구자의 마음)

🤔다큐멘터리가 남초 커뮤니티의 논리와 분위기를 설명해주었는데, 밈 사용자들이 ‘진심인데 농담인 척 하며 자기 주장을 퍼뜨린다’는 얘기가 와닿았다. 이렇게 혐오가 퍼져나갔군.

😮‍💨혐오가 너무 쉬운 것 같다. 글로도 쉬운데 밈을 통하면 너무 간편한 거 아닐까?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너무 절망적이었지만, 또 되돌릴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다시 트럼프가 유력한 후보…!)

😓아아… 인류멸망만이 남은걸까? 사람들이 모이기 어려웠을 때에도 혐오는 존재했는데, 온라인이 물리적 경계를 허물어서 혐오가 가속의 페달을 밟는 현실…! 급속도로 안 좋아지는 것을 다시 좋게 하는 것은 참 어렵다는 것을 다큐를 보며 다시 느낀다. 역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페미니즘 활동뿐이야?!

🤨 다큐를 보고 밈의 정의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2chan 커뮤니티가 ‘우리는 함께 외롭다’는 문장을 중심으로 모였다는 것이 참 고민된다. 스스로를 ‘인셀’, ‘찐따’, ‘방구석 폐인’을 자처하는 남성이 서로 공명하던 감정적 울림이 결국 혐오로 가닿았다는 것이… 이런 움직임을 어떻게 살펴야 할까? 


함께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 그동안 책이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의 시대에 혐오가 어떻게 전파되는지, 여기에 어떤 감정이 깃드는지 살펴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그나저나 여전히 고민이 많아요. 저는 페페 만화 원작이 boy's club 이었다는 점도, 그 만화가 자아내는 어떤 남성성의 감각이 2chan 커뮤니티를 자극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남성성'이란 뭘까, 계속 고민하게 되죠. 참, '남성'과 '남성성'은 또 다른 것이란 사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아시겠지요? 하지만 알듯말듯 명확히 정의내리기 어렵다는 점도 공감됩니다. 그래서 같이 책을 읽고 이제는 집담회도 준비하는 것인데요... 어쨌든 계속 가봅시다~!



이 글을 성문화운동팀 수수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