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개소 30년과 세계주거의날을 맞아
성폭력피해자 주거권, 함께 외치자
10월 3일, 세계주거의날을 맞아 주거권행진이 열린다. 주거가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것을 알리고 요구하는 행진에 함께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는 올해로 문을 연 지 30년을 맞았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인 열림터는 30년동안 400여명의 생존자들을 위한 거처였다. 앞으로도 열림터는 생존자들에게 열린 거처가 될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집’을 떠나 생활할 공간이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새로운 거처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30년동안 이 필요가 왜 지속되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새로운 거처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와 제도가 만연하기 때문이며, 우리 사회가 모두의 집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림터에서 생활한 생존자의 50%는 친족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청소년이었다. 아동 청소년의 주거가 보호자 가족에게 일임되어 있는 상황에서, 가족 내에서 피해가 발생한 피해자는 집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 가족이 피해자를 지지하지 않는 경우에도 열림터는 주거 대안이 되었다. 집은 개인이 편안하게 쉬고, 먹고, 자고, 가까운 사람들과 신뢰로운 교류를 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하지만, 피해자를 비난하는 장소일 때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혈연가족이 사적인 사회복지안전망으로 기능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에게 지지받기 어려운 성폭력 피해자들은 주거뿐 아니라 관계와 자원의 빈곤을 경험하는 일도 잦았다. 피해자의 주거권의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진정한 회복은 가해자의 처벌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심리상담과 정신과 진료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성폭력 피해는 구조적 폭력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피해의 구조적인 회복을 위해 피해자가 겪은 주거와 관계의 빈곤에도 주목해야 한다.
30년을 거치며, 열림터는 단기 쉼터에서 중장기 쉼터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쉼터란 모델을 넘어 피해자의 주거권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주거 모델을 이야기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구체적인 얼굴은 다양하다. 성폭력 피해자는 원가정을 탈출한 친족성폭력피해 청소년이기도 하고, 시설에서 공동생활하는 시설 생활인이기도 하며, 집이 없는 홈리스 상태가 되기도 하고, 자원 박탈을 경험하는 빈곤 여성이기도 하며, 혈연 가족을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성폭력 피해자의 주거권은 탈가정 청소년의 주거권, 탈시설 장애인의 주거권, 홈리스의 주거권, 쪽방 주민의 주거권,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와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성폭력 피해의 정의로운 법적 해결, 피해자에 대한 여성주의적 심리 치유, 강간문화 철폐와 더불어 집이 인권이라는 것도 함께 외친다. 성폭력 피해자의 주거권을 보장하라. 모두를 위한 주거권을 보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