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남성에 의한 이주여성 성추행 사건에 대한 경찰의 늑장대응을 규탄한다!
성추행이 만연한 사회,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이주여성은 더욱 안전하지 않다!
지난 9일 오후 충남 홍성의 한 시외버스에서 한국인 남성에 의한 외국인 여성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버스에 타고 있던 필리핀 여성의 몸을 강제로 더듬는 성추행을 저질렀으며, 피해자가 수차례 중단을 호소했으나 추행을 지속했다. 다행히 버스에 있던 승객들이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신고했지만 경찰은 신고를 접수한 지 10여분이 지나서야 대응을 시작했고 가해자는 그 사이에 도주해버렸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당시 신고를 한 승객의 증언에 따르면 112로 전화했으나 관할구역이 다르다며 출동을 회피하는 가운데 늑장대응이 이뤄졌고 결국 가해자는 8일 만에 검거되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접하면서 최근 이슈가 되었던 지하철 성추행 등 일련의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들을 떠올리게 된다. 목격한 시민이 제보하거나 성추행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돌고 나서야 뒤늦게 경찰이 사건에 착수하는 등의 안이한 대응을 지켜보면서 공공장소 및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성추행, 성폭력에 대하여 경찰에 어떤 구제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성폭력 신고율 자체가 낮고, 신고되지 않기 때문에 성폭력이 심화되는 상황에 경찰이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력히 질문해야한다.
여성 전반이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이주 여성의 안전은 더욱 위협당하고 있다. 홍성에서의 버스 성추행 사건을 보도한 "성추행, 이제는 외국인까지?"라는 기사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주 여성을 예외적인 성폭력 피해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2003년 여성단체와 이주여성단체의 통계에서 42%의 이주여성들이 성희롱과 성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되었듯이 이주여성은 그동안 한국사회의 성폭력에서 결코 안전한 적이 없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직장, 거리, 가정 등 모든 일상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성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한국에서 이주여성은 성폭력 피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 신고율이 매우 낮다. 특히 이주 여성의 성폭력 신고율이 낮은 상황을 문제시해야한다. 이주여성은 언어적 장벽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고, 피해 신고 및 구제절차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쉽지 않으며, 성폭력 피해 입증 절차가 어렵기 때문에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미등록 이주여성의 경우 진상조사가 끝나면 출국해야 하기 때문에 신고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신고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는 대다수 이주여성 여성들은 다시 성폭력의 위험과 위협에 노출되기 쉬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이주여성이 겪는 성희롱?성폭력의 문제는 우리 사회 여성 일반이 겪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이주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해 사회 전반이 경각심을 가져야함을 요청하고자 한다. 그 동안 한국 사회에서 가려져 있던 여성, 특히 이주여성이 처한 차별적 조건, 즉 제도적 차별과 문화적 차별을 포함하는 뿌리깊은 차별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며, 해당 사건에 대한 적극적 조치가 있어야 함은 물론, 드러나지 않은 이주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와 위협들을 가시화하고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는 바이다. 특히 경찰은 성폭력 신고율 제고가 성폭력 예방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주 여성들의 성폭력 실태에 대한 민감성을 키워야할 것이다.
성인종차별반대공동행동 및 연명 단체들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 가해자의 알콜 중독 등 심신미약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한다.
-. 여성이 겪는 일상의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해 경찰이 경각심을 갖기를 촉구하며 신속한 대응을 요구한다.
-. 이주 여성에 대한 성희롱․성폭력 실태에 대한 공식적인 실태를 파악할 것을 요구한다.
-. 이주여성들에게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때의 신고 및 구제 절차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통역 서비스를 강화할 것을 촉구한다.
-. 미등록 이주여성이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당한 경우, 사건 종결과 함께 강제출국 시키는 정책은 시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