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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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 33기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을 마치고, 교육의 열기와 배움을 담은 수료생 두분의 후기가 도착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눠주셨는지 함께 읽어볼까요?
34기에는 페미니즘 있는 민주주의!
2년마다 수강생을 모집하는 성폭력 상담교육에 접수했고 운 좋게 수강의 기회가 주어졌다. 여성주의 상담은 무엇인지, 상담가는 어떻게 타인과 소통하며 상담의 자세와 요령을 익히는지 궁금했다. 여성학을 공부한 지 10년 만에 나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고 성실한 학생의 자세로 수업에 참여했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를 넘어 성평등 민주주의를 실현할 여성가족부 장관을 요구한다!” 여성과 시민들의 의견도 무시한 채 진행되었던 여가부 장관 임명이 후보자가 사퇴하며 공백 기간 만큼 임무가 막중해졌다. ‘신고 후에도 피살당한 여성들, 여성에게 국가의 기능은 상실’되었는지 묻고 있는 요즘이다. 스토킹 신고 후에도 일상을 영위할 수 없었던 여성들이 안전한 이별을 하지 못하고 살해당하는 현실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은 여성에 대한 공포와 일상 속 불안을 드러내며 여성혐오 범죄라는 인식이 퍼졌다.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 수사가 촉구되고 #미투 운동이 젠더기반의 성차별 범죄라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여성들은 분노했다. 2019년 4월 11일, 일명 ‘낙태죄’라 불리는 형법이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면서 ‘다시만난세계’가 펼쳐질 것을 믿었다.
2025년 7월,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으로 판결 났음에도 2차 가해에 해당하는 ‘박원순 다큐멘터리’의 상영을 두고 1심에서 상영금지 판결이 내려졌다. 또 중상해죄로 실형을 살고 범죄자가 되었던 최말자님은 61년 만에 검찰의 재심 공판에서 “과거 검사와 법원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 점을 사죄”하며 무죄를 구형했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우리는 박수로 환호했고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나는 수강 후기 글쓰기에 자원했다.
수강생 중 한 명이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정오에 열리는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집회(공폐단단)에 대해 알려주었고, 나는 그 수강생과 함께 광화문역 4번 출구 근처 거리 집회에 참여했다. 20여 명은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고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전단을 시민에게 전했다. 30분 후 동그랗게 모여 참가한 이유와 소감을 나누는 마무리 시간을 가졌다.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60대 남성이 다가오며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우리의 진행을 방해하는 질문이라 주최자가 “무슨 일이냐?”고 조심히 묻자 “구경하면 안 되는 거냐고?” 무슨 권리라도 있는 것처럼 뻔뻔한 답변이 돌아왔다. 여성들이 모여 있으면 간섭하고 구경해도 되는 일이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맞대응하기에는 아직도 순발력이 모자라다.
‘성폭력 피해자의 발화: 말하기와 응답하기’ 수업 중 영상을 보는 동안 한숨 섞인 반응들이 터져 나왔고 피해생존자(‘피해자다움’의 모순 때문에 생겨난 호칭)의 말하기를 온전히 들을 수 없던 나도 눈물을 삼켜야 했다. 수업 후 쏟아 낼 말들이 많아진 우리는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으며 자신들의 경험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친족 성폭력부터 친밀한 관계에 의한 성추행과 성폭행까지 모두 우리의 이야기였고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이었다. “여성이 자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지원’ 수업에서는 변희수 하사와 김기홍 활동가의 사연을 떠올리게 했고 ‘타자를 있는 그대로 당신과 함께 존재하기 위해 맺는 여성연대’라는 목표에 공감했다. ‘차별’의 반대는 무엇이냐는 물음에 우리는 ‘평화’라는 답변을 찾았고 시대적 변화와 호흡을 같이 할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한 이유도 다시금 확인하였다.
“빨간약을 선택하면 진실을 알게 되지만, 다시 예전의 무지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는 유명한 영화가 있다. 우리는 빨간약을 선택했고 각자의 역량만큼 달라져 변화를 준비하는 동지가 되었다. 개근한 5명의 수료생은 #미투 ‘세상을 부수는 말들’ 디자이너가 제작한 책갈피를 선물로 받았다. 이어서 모든 수강생은 수료증과 함께 여성주의 도서를 한 권씩 받았고 서로의 책 제목을 궁금해하며 축하했다. 세상의 차별에 맞서 함께 싸우고 연대할 자리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알기에, 헤어짐이 그리 서운하지 않았다.
알찬 프로그램을 준비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감사를 보내며 연대한 강사진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매회 강의 때마다 차와 간식을 준비해주는 활동가들 덕분에 환대받는 기분이었고 안전과 평화를 맛보았다. 2년 후 34기 수강생들이 공부하는 세상에는 강간죄 성립요건인 폭행, 협박의 여부를 없애고 비동의 강간죄가 있는 나라, 친족성폭력사건의 공소시효가 없는 나라,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혐오와 차별이 없는 나라가 되었기를 소망하며 후기를 마친다.
- 33기 개근 수료생 라온
33기 한국성폭력상담소 두번째 후기
어떤 우연은 필연이 된다. 성폭력 전문상담원교육을 알아보기 시작한 게 5월 중순의 일이였다. 이런 교육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지 얼마 안 됐을뿐더러,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처음 찾아본 거였다. 그런데 2년만에 열린다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전문상담원교육 커리큘럼을 보고 모든 게 분명해졌다. ‘해볼까?’ 가 ‘해야해’ 로 바뀌는 순간을 가늠하고 인지하고 의지적으로 실행한 게 아니였다. 나는 이미 그 흐름에 던져지고 있었다. 필연이 우연을 가장하듯, 시작이 끝을 내포한다는 익히 깨달은 사실이 다시 피부로 스며들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첫날, 33기 답게 원래 33명이 신청 했다가, 마지막에 한명이 취소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랬다, 내게도 마치 33인의 독립선언문 작성자들처럼 그 아무것도 아닌 숫자조차 의미 있었다. 33인의 민족대표가 만세 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처럼, 내게 전문상담원교육은 ‘직면’ 그 자체였다. 찌는 듯한 열기로 뜨거웠던 한달과 그 이후의 시간들, 지금 이렇게 후기를 쓰는 것 조차, 나의 그리고 우리의 ‘해방’과 ‘광복’ 을 위한 여정 중임을 이제는 안다.
나름 심리학과 여성학을 꾸준히 공부해 왔다고 자부해 온 나는, 교육 초기 여성주의 이론 수업을 들으며 ‘자만’ 이 산산히 깨졌고, 특히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를 들으며 그 한복판의 현장을 이끌어온 분의 증언을 들을 때면, 그 시기의 공기가 피부로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피로 써내려간 역사’ 라는 걸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내 몫은 아니에요.’ 하고만 싶던 시절의 내가 떠올라 외면하고 무시했던 무수한 나, 들을 소환해야 했다. 그리고 그 ‘나’들은 한국 성폭력투쟁 역사의 생존자, 활동가. 그녀들이였다. 문득 기억하던 문장이 떠올랐다. “언어는 영혼의 눈물, 눈물은 영혼의 피” 눈물을 흘리던 걸 넘어 실제 ‘피’를 봐야 개선되어졌던 공고한 인식의 틀, 법체계, 이데올로기. 그 앞에 여전히 분노하기를 멈추지 않은 채, 눈물과 피흘림을 멈추는 공감과 연대만이 오롯이 남았다.
교육의 초기에 짜여있던 여성주의 이론과 역사, 남성성 연구, 젠더폭력의 개념, 청소년 성문화 등의 강의들은 스스로 ‘성인지 감수성’ 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가 되어주기도 했다. 여성학을 처음 공부 했을 때의 ‘전율’과 ‘개안’ 이 어느 정도 익어 뭉근한 ‘힘’ 이 되어 주고 있다 기대했지만, 동시에 복잡하고 다양해진 디지털 성범죄와 그야말로 폭주하는 남성성과 극우 정치집단과의 연계성은 마주하기 두려울 정도였다. 최근 여성학의 두가지 큰 화두가 ‘교차성’ 과 ‘정동’ 이라는 지점에서 앞으로 더욱 많은 공부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교육의 중후기는 이주민, 성매매, 장애, 퀴어 등 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현장성을 몸소 느낄 수 있어 유익했다. 우리는 각자 어느 지점의 소수자이면서 동시에 다른 지점에선 권력자임을 알아차리며 ‘동일’ 해 지는 것이 아닌 ‘연결’ 되는 것의 소중함.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 또한 알아차리고 성찰하는 부지런함을 다시 한번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주의 상담은 내담자와 상담자간의 ‘권력관계’ 를 분명히 한다고 한다. 즉, 시간을 상담가에게 맡기고 비용을 지불하는 상담가에게 권력이 훨씬 더 많음을 전제하고 시작한다고. 심리학을 공부하고 내담자로서의 경험도 있던 나는, 이 전제의 분명함이 반가웠다. 전문상담원교육을 마친 지금, 똑같이 권력에 대한 전제를 분명히 했던 어느 정신분석가님의 말이 떠오른다. 내담자가 상담실을 나가자마자 문을 딱 닫고 난 직후 상담가의 얼굴을 모아 이어붙인 다큐 같은거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그 순간 상담가, 분석가 조차 ‘내가 뭐라고, 저런 사연 앞에 치료자랍시고 있었던거지?’ 부터 오만가지 감정이 밀려든다고. 여성주의 상담까지 배운 지금, 나는 그 고백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권력을 중심에 두고 관계를 파악할 때, 얼마나 많은 것들이 투명하게 드러나는지, 심지어 어떤 겸허함을 가져오는지를 되새긴다.
교육의 마지막 날, 모두가 모여 소감을 나누던 시간이 떠오른다. 나는 “‘투쟁’ 이라는 단어와 화해하는 시간이었다” 라고 했다. 그랬다. 그동안 혼자 공부해오며 ‘투쟁’ 과 ‘조율’ 을 굳이 나누어 부등호를 억지로 새겨야 했던 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애틋한 조율’ 도 ‘즐거운 투쟁’ 도 모두 나의 걸음 이라는걸. 등호도 부등호도 느낌표도 물음표도 언어화의 구석구석 마음껏 쓰면 된다는 걸. 요즘 나는 지금 오랜 이슈를 직면하는 중이다. 이 교육이자연스럽게 인연이 되어 내 이슈를 다뤄줄 만한 센터를 찾아냈다. 질문이 유달리 많아 자랑스런 33기, 전문상담원교육을 이수했지만 여전히 두렵다. 허나, 마지막날 교육을 마치고 한여름의 한달을 떠올리며 문을 나섰던 나를 떠올린다. 공감되는 아픔에 뜨거웠지만 아무것도 태워버리지 않고, 바뀌지 않는 현실에 서늘해졌지만 외려 선명해졌던 시간. 그동안의 농도와 밀도와 무게들을 고스란히 목도한다. 눈을 뜨고도 차오르는 것들, 눈을 감아야 흘려보내 너와 나의 짠맛이 같았음을 아는 연결됨을 알기에, 이렇게 살아있다.
- 33기 수료생 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