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넘어 우정을 가능케 하는 쉼터
Barrier Free Living과 펜팔하기
며칠 동안 오지 않는 답장에 이메일을 적어보고 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이전에 드린 메일과 관련하여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연락드립니다. 바쁘신 일정 가운데 메일을 드리게 되어 송구하지만, 아래 주요 질문들에 대해서만이라도 답변을 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로 절절하게 운을 떼는 편지를. 지난 3월, 국제교류협력을 통해 뉴욕 Barrier Free Living(이하 BFL) 쉼터를 방문했다. BFL는 장애를 가진 젠더기반 폭력피해생존자들을 위한 포괄적인 지원과 위기개입을 하고 그들을 위한 쉼터와 주거지원시설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장애를 가진 이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이용에 어떤 불편함도 없게 세심하게 설계한 공간이 정말 인상깊었다.
방문을 마치고 짧은 영어 실력으로 더 깊이 있는 논의를 이어가지 못했던 것이 아쉬워 열림터 활동가들과 기관 방문에 대해 공유하고 BFL에 보낼 질문 리스트를 만들어보았다. 처음 보낸 메일은 10가지 넘는 주제의 질문들을 빼곡히 정리했다. 답변자에게 큰 부담이 되었는지 답장이 오지 않았다. 두 번째 메일에서는 7가지 주제들로 추려 절절한 마음을 함께 보냈다. 3가지 항목이 줄었으니 나름 대폭 삭감이다. (물론 여전히 길다. 답장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질문 리스트를 모두 나열하여 공개할 수는 없지만 열림터에서 지난 5년 동안 활동을 했던 나와 열림터 활동가들이 갖는 실질적인 궁금증은 그런 것이었다. 열림터에 생존자들이 입소하여 생활하고 이후에 퇴거하고 자립하기까지 이 과정을 얼마나 더 안전하고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가져갈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팁. 가령 생활인*들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관계와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퇴소 이후에 성공적으로 독립한 사례들로부터 관찰된 점이 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에게 이에 대한 시도와 모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열림터는 공동체와 자립에 대해 오래 고민하며 다양한 상상을 이어온 공간이다.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렇듯, 열림터에서도 갈등은 발생한다. 그리고 그 갈등은 성폭력 피해 자체와는 또 다른 결의 이야기들이다. 몇 십년간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타인과 함께 살면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진 이들의 분노를 마주하고, 그 분노를 변주하는 법을 함께 배워가는 곳. 이곳저곳에서 피어나는 갈등을 모르는 척 지켜보다가도, 어느 순간 개입해야 할지 적당한 타이밍을 재며 그 갈등을 함께 붙들고 괴로워하는 곳. 성공적인 학업과 취업, 자취를 이어가는 듯 보이던 ‘또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가, 한참 뒤 다시 연락을 해왔을 때 오히려 그의 삶의 경험치와 자립의 감각이 조금 더 단단해졌음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곳. 열림터는 결코 직선으로 나아가거나, 단숨에 완성되지 않는 생존자의 굴곡진 회복 그래프를 함께 그리는 공간이다.
그렇지만 바다 건너 1세계의 쉼터는 어떤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도착한 답장에 뚜렷한 해결책(그런 건 세상에 없다)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의 질문이 광범위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답장을 통해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기도 하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되새기게 하기도 했는데, 4페이지로 이어지는 답변서를 프린트해 정성스레 형광펜으로 밑줄 쳐놓은 부분을 소개한다.***
안전하고 안정적이고 원활한 쉼터 운영에 관한 질문들
피해자의 회복과 자립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한다고 말하면서도 쉼터와 주거지원을 거친 이들이 이후에 “완전히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는지, 있다면 그건 어떻게 가능했는지가 궁금했다. BFL의 답변은 우리가 오래 이야기해왔던 감각을 다시 선명하게 해주었다. 독립은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안전하게 연결되는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다시 한번 되새기는 말, 누구나 충분한 지지와 지원을 받으면 지역사회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완벽하게 혼자 설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필요한 순간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관계와 기반이 존재하는가다.
형평성 말고 독립성
BFL 기관 방문을 하며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 있다. 나는 그날도 시설화된 활동가가 던지는 단골 질문인 ”공동생활 규칙이 있냐“를 물었다. 합리적인 규칙이 있다면 참고할 요량으로 펜을 잡고 영어 받아쓰기를 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BFL의 대표 Amodeo가 단호하게 자기들은 공동생활 규칙이 없다고 말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 1도 없나요? 라는 표정으로 Amodeo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가 덧붙였다. 자기들은 공동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1인, 1가족에게 각각 독립된 유닛이 배정된다는 것이었다. 1호 배정..? 하지만 커뮤니티룸에 있는 TV만 가지고도 이 드라마 볼래, 인기가요 볼래로 싸움이 날 수 있는게 시설 생활인 것인데. “나는 이 드라마 볼 건데” “왜 맨날 너가 보는 드라마만 봐?” “너가 오기 전부터 우리가 보던 거야!” “그럼 내가 보고 싶은 건?” 그렇게 갈등이 생기고, 결국 “앞으로 TV는 미리 시간대별로 예약리스트을 작성해서 30분씩 보자”**** 형평성을 맞춘다는 이름으로 규칙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게 시설인데.. 그래서 BFL은 후원을 받아서 각 유닛마다 TV랑 케이블을 설치했단다. 화장실도, 부엌도 각 호실마다 있어서 구성원 간에 공동생활을 이유로 규칙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1호를 배정하기 때문에 독립된 공간에서 반려동물을 키울 수도 있다고.
1달러,1인 1호, 1세계를 향한 질투(P)…
부러웠다. 우린 이제야 1인 1실을 주장하고 있는데, 또같이*****를 만들면서 1인 1실을 구현하고도 부엌, 거실, 화장실을 같이 사용하는데서 오는 긴장과 피로가 여전히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인데. 생활인 각자의 안전과 회복을 위해 독립된 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기까지도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1인 1호라니! 더 부러운 것은 쉼터의 취지에 공감한 땅 주인이 단돈 1달러에 부지를 팔아서 그곳에 쉼터를 세웠다는 것. 이 동화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
BFL에 공동생활 규칙이 없을 수 있는 이유가 그곳의 사람들이 더 특별히 성숙하거나 갈등이 없는 사림들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각자의 생활방식이 서로에게 침범과 마찰이 되지 않도록 공간이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그저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관계가 아니라, 적당한 거리와 독립성을 유지한 채 느슨하게 연결된 이웃으로 존재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열림터의 조건 위에서 우정의 공간 상상하기
각자에게 독립된 공간이 주어진다면 훨씬 쾌적할 것이다. 심적 여유가 생기고 타인에게 조금 더 관대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느슨한 우정과 연대의 공간을 위해서 도대체 얼만큼의 거리가 필요한 걸까.****** 우정의 공간이 정말 거리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문제일까. 생각해보면 아파트에서도 층간 소음 문제와 간접흡연, 주차관리 등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의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어디에서 살든 완벽히 침범받지 않는 삶은 가능하지 않다. 결국 우리는 나와 다른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누군가의 존재를 감각하며 살아가는 일 역시 공동의 삶에 꼭 필요한 태도인 것이다.
한편 우리에게 1000원에 서울 땅을 매각할 후원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조건 위에서 이 문제를 고민해야 했다. 2-3명이 함께 방을 쓰고, 주방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열림터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감각하고 연결되어 왔는가. 옆에서 새벽까지 눈물 콧물을 쏟으며 울고, 때로는 우렁차게 코를 골아 나의 수면을 방해하는 존재는 분명 피로하다. 하지만 “너 괜찮니”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같이 매운 음식을 먹으며 분노와 슬픔을 흘려보내기도 하면서 생활인들은 ‘나’ 말고도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관계 맺어간다.
불편과 피로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런 복작복작한 조건이 유대와 신뢰를 경험하게 하고, 관계맺기의 역량을 키워가게 하기도 한다. 갈등이 규칙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관계 자체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때로는 부딪히고, 불편해하고, 다시 이야기하면서 서로 다른 타인과 살아가는 감각을 배우고 생활인들도 활동가들도 더욱 성숙해졌다.
생존자들에게 1인 1실을, 나아가 1인 1호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복작복작한 열림터 생활이 어떻게 생존자들의 연결감과 함께함의 감각을 만들어왔는지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매일 자극적인 음식으로 속을 달래는 생활인들과 “건강한 하루 한 끼”를 인증해보기도 하고, 불안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하루 한 줄의 필사를 이어가보기도 한다. 서로의 식습관과 불안의 결까지 자연스럽게 알게 될 정도로 가까이 있는 우리가, 열림터여서 만들 수 있는 모임이 있다. 쉼터는 단지 주거 공간이거나 규칙 만으로 유지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배우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문화와 생활의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서로를 견디거나, 때로는 불편을 참아내더라도 계속해서 서로의 이웃이 되어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서로를 완전히 침범하지 않을 수는 없더라도,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할 수 있다면, 피해생존자의 회복을 넘어 우정을 나누고 삶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더 충만한 삶까지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열림터가 앞으로도 그런 삶을 연습하고 상상하는 삶터로 남기를 바란다.
ps.1,000원에 땅을 매각하실 분은 열림터로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 열림터에 입소하여 생활하고 있는 이, 생존자와 생활인을 구분하지 않고 썼다.
** 열림터 퇴소인을 일컫는 말
***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은 BFL측의 이메일 답변을 발췌하여 축약과 번역을 거쳤다.
**** 이것은 실제 열림터의 규칙이 아니다. 규칙이 생겨나는 상황의 예시를 들은 것. 활동가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 성폭력피해자들의 자립과 주거를 지원하는 열림터의 중간(자립과 시설의 중간)집. 안정적인 공간(1년간의 무상주거), 일정한 소득(기본소득), 함께하는 곁(공동생활)이 있는 곳. 열림터 퇴소 생활인들을 대상으로 2025년 1월 운영을 시작했다.
****** 열림터 활동가 신아의 말. 신아가 초안 검토 과정에서 중요한 의견을 주었고, 이를 글 곳곳에 반영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