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 제공. 평등으로가는수요일 집회에서 사회자와 수어통역사가 집회 참여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페미가 요구한다 윤석열 퇴진'구호가 함께 보인다.
지난 2월 5일, 종각역 5번 출구 앞에서 ‘윤석열 퇴진! 평등으로 가는 수요일’ 집회가 열렸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뉴그라운드를 포함한 13개 페미니스트 단체가 모여 윤석열 대통령과 내란에 동조하는 극우 세력의 집결을 저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집회에서는 시민 자유 발언과 함께 가수 신승은, ‘모두의 훌라’팀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예림 활동가의 진행에 따라 다함께 ‘혐오는 퇴진, 평등은 전진’ 구호를 외치며 뜨겁게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FDSC 김소미님이 발언자로 무대에 올라주셨습니다. 현장에서 사용된 피켓 또한 FDSC 소속 디자이너분들이 직접 디자인해주셨는데요, 김소미님은 디자이너라는 당신의 직업을 바탕으로 ‘페미니즘 디자인’에 대해 목소리를 내주셨습니다. 균질하고 매끄러운 디자인을 지향하는 ‘모던 디자인’이 아닌 울퉁불퉁하고,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페미니즘 디자인’처럼 서로 다른 목소리가 골고루 살아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연대해주셨습니다.
익명의 시민분은 “윤석열과 상관 없는데 상관 있는 얘길 하고 싶어서” 무대에 올랐다고 자유 발언을 신청하시게 된 동기를 나눠주셨습니다. 윤석열 당선은 안티페미니즘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탄핵만으로 모든 차별과 부정의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해주셨습니다. 폭주하는 남성성의 시대 속에서 예민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약자들이 해방되는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다음으로 여성폭력지원현장에서 근무하시는 소망님이 발언을 맡아주셨습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앞세운 윤석열이 당선되자, 앞으로의 지원을 우려한 피해자들의 연락이 끊이질 않았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나눠주셨습니다. 실제로 ‘무고죄가 심각하다’며, 이미 종결된 성폭력 사건을 무고죄로 기소하는 등 국가가 몸소 나서 성폭력 피해자를 법정에 세우는 기막힌 상황이 재작년, 작년에 걸쳐 이어져왔습니다. 젠더폭력에 무지한 대통령에 의해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모든 시민들이 더 이상 고통받아선 안되며, 윤석열은 젠더폭력 피해자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주셨습니다.
비주류사진관 촬영. 모두의 훌라 공연자가 우리 함께 모여 사랑을 위해 노래하고 춤추자라는 의미로 평화의 몸짓을 하고 있다.
이어서 ‘모두의 훌라’ 팀이 무대에 올라 멋진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훌라는 맨발로 땅을 딛고 얻은 기운을 손짓으로 전하는 춤이라고 하는데요, 영하 12도의 한파 속에서도 진심어린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모든 팀원들이 맨발로 무대에 서주셨습니다. 어느때보다 매서운 추위였지만 팀원들이 건넨 연대의 손짓은 추위를 잊게할 만큼 훈훈하고 따뜻했습니다.
뜨거운 열기에 힘입어 페미니스트 인권운동가이자 집회매니아이신 명숙님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명숙님은 반도체 노동자의 과로를 강제하는 반도체특별법을 막아내고 성평등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자고 하셨습니다. 가부장제와 공모한 자본주의가 우리 페미니스트들을 여성을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차별하고 착취했는지를 기억하고, 페미니스트 퀴어가 광장에서 외치는 평등과 존엄의 사회가 올 수 있도록 투쟁하자고 목소리를 더해주셨습니다.
‘디자인 사랑꾼’으로 당신을 소개하신 인아님은 우리 사회 그 자체가 더 평등하고 페미니스트적으로 바뀌어야한다고 의견을 나눠주셨습니다. 같은 직군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올 수 있게 모두가 ‘활동가’가 되어 각자가 존재하는 자리에서부터 혐오를 몰아내고 평등한 세상을 열자고 독려해주셨습니다.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 제공. 싱어송라이터 신승은님이 추운날씨에도 연대의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으로 신승은 님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추운 날씨 탓에 장비가 말썽을 부렸지만, 모두 고정되지 않는 마이크스탠드를 잡아주는 연대의 현장을 지켜보며 옹기종기 앉은 채 함께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한파 속에서도 넘치는 연대를 보고 승은 님이 ‘연대 덕분에 너무나 더운 날씨’라고 외치자마자 광장이 후끈하게 데워진 듯했던 순간과, 또 세 번째 곡이었던 ‘당신은…’에서 “당신은 성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호모포비아”라고 노래할 때의 선언처럼 공연 사이사이 우리를 둘러싼 힘이 전복되는 순간이 통쾌하게 다가왔습니다.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 제공. 수많은 깃발 행렬 맨 앞 형형색색의 디자인된 '페미가 요구한다 윤석열 퇴진'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공연을 듣고서는 집회의 꽃, 행진을 준비했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여파 님의 사회와 함께 출발한 행진 대열은 종각역, 안국, 광화문, 세종대로를 차례로 지나 출발지 영풍빌딩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페미니스트와 퀴어가 준비한 집회답게, 치켜든 깃발마다 무지개가 흐르는 풍경을 서울 한복판에 펼쳐낸 시간이었습니다. 차와 버스에서, 또 길거리에서 우리의 신나는 행진을 지켜보는 시민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윤석열 퇴진, 성평등 쟁취!”를 더 크게 외치며 피켓을 흔들었습니다. 빌딩 사이로 바람이 세차질 때마다 손은 점점 부르터갔지만, 오히려 바람 덕에 보란 듯 펼쳐져 휘날리는 색색의 깃발과 함께 행렬은 “혐오는 퇴진, 평등은 전진”이라는 구호처럼 서울 한복판을 함께 전진해 나갔습니다.
행진하는 사이에도 트럭 위에서는 연대발언이 이어졌는데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혜원 님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목소리를 보태 주셨습니다.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도 임신중지에 대한 어떠한 정보 제공 및 제도적 지원이 없었을 뿐 아니라, 국가를 ‘비상사태’로 만들었다 규탄하는 발언자와 함께, 사람들을 인구정책의 도구로 세는 사회를 넘어 차별과 배제 없이 자유롭고 건강한 재생산이 가능한 사회를 꿈꾸자고 힘차게 외쳤습니다.
트랜스젠더인권단체 조각보에서 활동하는 리나 님은 비상계엄에 더불어 트럼프의 당선이 트랜스 커뮤니티에 준 충격을 언급하며 발언을 열었습니다. 발언은 트랜스젠더를 총받이로 삼아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또다른 폭력으로 가리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주장하며, 성별이분법과 가부장제 구조에 균열을 내는 것은 교차하는 목소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이에 화답하듯 발언 말미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광장을 다채로운 목소리로 채웠습니다.
행진을 마치고 코와 볼이 빨갛게 상기된 참가자들은 둥그렇게 모여 마지막 발언을 기다렸습니다. 윤석열 퇴진! 세상을바꾸는네트워크의 현빈 님은 조금 전 신승은 님의 공연에서 마이크를 잡아주는 연대를 보여주시기도 했는데요, 성별이분법과 이성애중심주의가 넘치는 세상에서 느낀 불편함과 불안을 나누며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회에 안주하지 못한 발걸음이 광장에 모여 “방언처럼 터져나온” 목소리가 “불안과 망명의 연쇄를 끊”어낼 것이고, “우리의 삶을 유예하지 않”은 채 모든 이와 함께 평등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외침은 현장에 뜨거운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 제공. 집회 참가자들이 '이게 바로 안티페미니스트 정치의 말로'라는 현수막을 들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한 광장이라면 어디든 달려나가 자리를 채웠던 페미니스트와 퀴어가 다시금 모인 이번 집회에서는 “페미니즘 없이 민주주의 없다”라는 구호가 시원스레 울려 퍼졌는데요, 집회를 마무리할 때쯤 음악이 꺼져도 참가자들이 목소리 높여 이어 불렀던 ‘불나비’의 가사처럼 페미니스트와 퀴어는 언제나 민주주의의 주역으로 당당히 자리할 것이며, 여전히 만연한 반페미니즘 정서와 우경화되는 정치인들의 세태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가 마음 깊이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입춘이 지났음이 무색하게 여전했던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목소리들이 광장을 데운 만큼, 민주주의와 성평등 쟁취에 한 걸음 가까워졌으리라 믿습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인턴 수현, 도희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