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상담소 소식
멋진 페미니스트 감독님들의 영화가 연달아 개봉한 풍요로운 11월이었습니다. 저는 <세계의 주인>과 <양양>을 보았는데요. 두 영화 모두 깊은 고민을 가진 감독님들의 메시지가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여기서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님들과 함께 본 <양양>GV에 다녀온 소감을 살짝 들려드릴게요.
행사 안내 포스터
10월 31일 불금을 맞이하여, 퇴근 후 발걸음 가볍게 에무시네마로 향했습니다. 얕은 언덕배기에 있는 에무시네마는 아담하지만 훌륭한 영화들로 가득 차 있는 매력적인 극장이었습니다. 상업영화만이 아니라 작은/인디 영화들도 꾸준히 소개하고 상영하는 공간이에요. 훌륭한 영화들로 가득찬 상영시간표를 보면서, ‘조만간 또 오겠군’ 생각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분들이 1층 카페 공간 안쪽 룸에 자리 잡고, 속속 도착하는 상담소의 회원님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마침 휴무일과 일정이 맞아서 오셨다는 회원님, 마침 보고싶었던 영화를 함께 보게되어 반갑다는 회원님, 정체는 숨기지만 발랄한 회원님, 바쁜 시간을 쪼개어 급히 달려온 회원님까지 모두 반가웠습니다.
영화 상영 시간이 한 시간만이라도 빨랐다면, 같이 영화를 본 후 소감을 나누며 맥주를 곁들인 대화의 장이 펼쳐질 수 있었을텐데요. 저녁 8시 상영 후 GV까지 예정된 일정이었던 관계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영화 상영 전 회원님들과 함께 “페미, 나, 우리집안”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장애를 가진 고모와 사촌 언니 이야기,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게된 이혼 이야기 등 가족 내 지워진/사라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막힘없이 흘러나왔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이었기 때문에, 영화와의 연관성을 그리 단단하지 않았지만, 비슷하게 가슴아프고 화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가족 안에서 여성들 간의 연대와 페미로 살아가기는 모든 페미니스트들의 숙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양양>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짧았지만 공감으로 채워진 이야기들을 나눈 후, 상영관으로 이동했습니다. 객석이 빈 자리 없이 관객들로 꽉 채워져 영화와 GV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도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어요. 영화는 양주연 감독님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 내에서 사라진 고모 ‘지영’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입니다. “나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났다”라는 대사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평범하고 원만해보이던 가족의 겉모습 이면에 감춰졌던 불평등과 성차별, 은폐된 죽음의 불편한 진실을 천천히 끄집어 냅니다.
감독의 여정을 카메라와 내레이션으로 쫓으면서, 저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공감을 했어요. 첫째는 페미니스트로 가족 안에서 살면서 느끼는 무거운 감정이었습니다. 밖에서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활동가로서, 페미니즘을 전면에 걸고 당당하게 싸우는 “사회적인 나”와 가족 안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보면서도 못 본척 한다던가, 너무 익숙해져서 차별인지도 모르는 “가족적인 나”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감 같은 감정 말이죠. ‘가족의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지영”의 존재와 삶을 지워버린 사람들’과 ‘원만한 가족관계를 위해 참고 눈치보는 나’는 과연 다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건넬 수 밖에 없었던 부분이었습니다.
영화<양양>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두 번째로 공감한 것은 다정하고 따뜻하지만 감정표현에 서툰 아버지였습니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시는 감독님 아버지가 저희 아버지랑 너무 비슷하시더라고요. 헤어스타일을 포함하는 외모 뿐 아니라 아들과 딸에 대한 대조적인 감정과 평가, 기대도 그랬고, 술의 힘을 빌려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시는 것도 어쩜 그리 똑같으신지. GV에서 감독님이 말씀하시길, 책과 영화가 완성된 후 아버지께 책을 드렸더니 “정말 수고했다, 꼼꼼하게 읽어보겠다”고 하셨다더라고요. 감독님은 아버지의 그 말을 “책과 영화로 고모가 돌아온 것이라 느껴져서” 라고 해석하셨는데, 저는 좀 달리 들렸습니다. “잊혀진 누나를 기록해주어 고맙다. 그리고 이렇게 해낸 내 딸이 정말 존경스럽구나” 이렇게요. 감정표현에 매우 서투른 아버지들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으려면 번역기를 잘 돌려야 합니다(아버지가 툭 던진 한 마디에 울고 웃는 막내 딸이 대충 개발 중;;;).
영화<양양> GV 장면 (한국성폭력상담소 촬영)
영화<카트>의 부지영 감독님이 진행을 맡아주신 양주연 감독님과의 GV도 참 좋았습니다. 영화에 다 담기지 못한 이야기들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따뜻한 자리였습니다. 어떤 장면들에 담긴 감독의 의도를 설명해주시기도 했고, 영화와 고모 “지영” 그리고 감독 스스로에 대한 여러가지 고민들을 나눠주시기도 했답니다. 늦은 시간까지 관객들이 거의 자리를 뜨지 않고 알차게 채워진 시간이었습니다.
양주연 감독님 직접 사인 (한국성폭력상담소 촬영)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영화의 몇몇 장면들과 GV에서 감독님이 하셨던 이야기들이 떠오릅니다. 아직 <양양>을 보지 않은 분들이 계신다면, “꼭 보시라!” 추천합니다. 그리고 영화와 뒷이야기가 담긴 책 <양양-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도 출간되었으니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감이 활동가가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