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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국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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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폭력으로 읽는 사회] 투표용지 부족사태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 선거관리위원회의 구조적 문제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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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폭력으로 읽는 사회] 투표용지 부족사태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
선거관리위원회의 구조적 문제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사태가 일어난 지 두 달이 훌쩍 지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해야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이 글에서는 대체 선거 당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선거관리위원회는 어떤 조직이길래 이런 문제를 일으켰는지를 알아보려 합니다. 이번 사태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제가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것들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었거든요. 덧붙여, 현재 진상조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일일이 챙겨보기 어려운 분들에게도 이 글이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진상조사의 진행 상황


전국민적 분노와 불신 속에서 진상규명과 제도 개선을 위한 조사와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지시로 구성된 검찰과 경찰의 합동수사본부는 중앙 및 지역 선거관리위원회를 대상으로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무유기,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 등을 수사 중입니다. 국회는 선관위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국정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선관위 특검법’을 통과시켜 특검 출범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직 공표된 조사결과는 없지만¹, 선관위가 국회 등에 제출한 자료와 국정조사 청문회, 언론보도를 통해 밝혀진 주요 사실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중앙선관위의 발표에 따르면, 선거 당일 91개 투표소에서 총 7,194장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다. 투표용지가 가장 많이 부족했던 곳은 서울 송파구 잠실4동 제7투표소로, 총 436장이 부족했다. 송파구를 포함한 26개 투표소에서 투표가 일시 중단됐으며, 가장 길게는 송파구 잠실2동 제2투표소에서 105분 동안 투표가 중단되었다. 일부 투표소는 선거 당일 투표 마감시한을 밤 10시까지 늘렸는데, 이는 서울시선관위원장이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다.

○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해 결국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는 91명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선거인명부 편철 오류 등의 이유로 본인 확인 절차가 늦어지면서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도 최소 6명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관위의 관리 부실로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는 총 97명에 달한다.

○ 중앙선관위와 시·군·구 선관위 사이 보고 체계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서울시선관위는 송파구선관위의 용지 부족 관련 문의에도 불구하고 중앙선관위에 보고하지 않았으며, 오후 5시가 넘어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중앙선관위는 오후 4시가 넘어서 민원전화를 통해 용지 부족 상황을 인지했고, 서울시선관위와 연락이 닿기까지 40여 분이 걸렸다.

○ 투표용지 부족의 주된 원인으로는 중앙선관위가 이번 지방선거부터 본투표의 투표용지 최소 인쇄율 지침을 유권자 수의 60%에서 50%로 낮춘 것이 지목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버려지는 투표용지가 많고, 용지가 남으면 투표 조작 의혹이 제기되어 용지를 최소화하려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합수본은 이러한 결정이 충분한 검증 없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 투표용지 인쇄 매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7~8명 정도의 자치구 선관위원들이다. 중앙선관위 지침을 참고하되 자율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지역마다 준비된 투표용지 매수에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일부 지역에서는 인쇄율 축소뿐 아니라 투표용지 분배 실패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투표용지가 가장 부족했던 송파구의 경우, 송파구 전체로 보면 오히려 투표용지가 4만 2천여 매가 남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었다.

○ 합수본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중앙 및 지역 선관위 실무자들이 시간대별 투표자 수를 임의로 수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중앙선관위는 최종 투표율에는 이상이 없다고 해명했으나, 투표 당일 현장 집계 투표자 수와 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된 개표 결과 상의 투표자 수가 불일치하는 곳도 다수 발견되었다. 합수본은 투표가 끝난 이후에도 투표자 수 허위 입력 및 조작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들은 투표용지 부족사태가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선관위의 구조적 문제에 따른 것임을 보여줍니다. 중앙선관위는 투표용지 인쇄율 지침을 충분한 검토와 논의 없이 개정했고, 지역선관위는 지역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투표용지 인쇄 매수와 배분을 결정했습니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지침은 부재했고, 중앙과 지역 선관위 간 보고·지휘 체계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중앙과 지역 선관위 실무자들이 공모해 실시간 투표율을 조작한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누적된 끝에 선관위는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고 공정한 선거관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는 이번 사태를 일으키고 만 것입니다.


선관위는 대체 어떤 기관인가?


선관위는 어떻게 이토록 무능하고 무책임한 기관이 될 수 있었을까요?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입니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와 이에 맞선 4·19 시민혁명을 계기로 선거관리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헌법기관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입법·사법·행정부 어느 권력에도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 지위를 헌법으로 보장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장된 독립성은 선관위를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투표용지 부족사태 이전부터 불거졌던 선관위의 각종 비리는 선거관리라는 본연의 책무 수행에서도 실패가 발생할 수 있음을 예고하는 징후에 가까웠습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와 합수본의 수사에 대한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선관위의 주요 비리 및 관련 경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2023년 5월 언론 보도를 통해 선관위 고위직 자녀 특혜채용 의혹이 제기되었다. 선관위는 자체 감사를 벌여 사무총장·사무차장 등 현직 간부 4명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 의혹이 제기된 직후, 감사원은 선관위의 채용 과정 전반에 대한 직무감찰에 착수했다.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에 대해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부분 수용’으로 입장을 바꾸며, 헌법재판소에 감사원의 선관위 감사가 정당한지를 묻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 2025년 2월 감사원은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실시된 경력직 채용 291회를 전수 조사한 결과, 직원 자녀에 대한 특혜채용 등 878건의 규정 위반을 발견했으며, 관련 전현직 직원 27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 비슷한 시각, 헌법재판소는 감사원의 직무감찰이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수행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 2025년 3월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근거로 고위직 간부 및 특혜 의혹 당사자 총 19명에 대해 수사를 의뢰하고, 직원 16명을 징계하였다. 4월에는 고위직 간부 자녀 8명에 대해 임용을 취소했다.

○ 2026년 7월 김세환 전 사무총장이 아들의 특혜채용을 위한 직권남용 등이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박찬진 전 사무총장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송봉섭 전 사무차장은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 임용취소된 고위직 간부 자녀 8명은 모두 임용취소 처분의 취소 소송을 냈고, 2026년 7월 한 명이 승소하여, 나머지 7명도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채용 비리가 확인된 직원의 징계 처분도 재판을 통해 취소되었다. 두 재판부 모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들어 감사원의 조사 결과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보았으며, 감사원 또한 같은 이유로 증거 제출을 거부했다.

○ 한편, 2026년 7월에는 채용 성차별 비리도 드러났다. 경남선관위 인사담당자들이 경력직 채용 과정에서 최종 합격자 5명이 모두 여성으로 확인되자 성비 조절이 필요하다며 면접 점수를 조작해 여성 2명을 불합격시키고 남성 2명을 합격시킨 것이다. 이들은 불구속 기소되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와 같은 선관위 비리와 관련해, 현직 대법관이 중앙선관위 위원장을 맡고 지역 관할 법원장이 해당 지역의 선관위원장을 맡는 관행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선관위의 위원 9인은 대통령 임명 3인, 국회 선출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으로 구성됩니다. 이 중 위원장은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최소화하는 취지에서 관례적으로 대법관이 맡아 왔으며, 지역선관위 위원장 역시 정치적 중립성과 법적 지식이 요구된다는 이유로 관할 법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² 우선,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는 구조에서는 법원의 실질적 견제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선관위를 상대로 소송이 제기되었을 때, 피고인인 선관위원장이 현직 판사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직 대법관이 선관위 업무를 비상근으로 겸직하는 구조에서는 선관위를 상시적으로 관리·감독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중앙 및 시·도선관위의 경우, 전체 선관위원 9명 중 위원장 포함 8명이 비상임이고, 상임위원은 1명뿐입니다. 그 결과 사무처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내부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실제로 선관위 채용비리에 연루된 인물 대부분이 사무총장·차장·국장 등 사무처와 사무국 소속 실무직이었습니다.

사무처는 선거 관리와 조직 운영에서부터 예산 집행, 인사에 이르기까지 업무 전반을 담당합니다. 실무 권한이 사무처에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언론 보도를 통해 5급 이상 고위직 비율이 국세청(약 8%)보다 훨씬 높은 약 22%에 달하는 등 관리자 과다·실무자 부족이라는 기형적 조직 구조, 부적절한 해외 출장·연수 등 방만한 예산 집행과 그 내역의 불투명성 역시 심각한 문제로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실상 비상임 체제로 운영되는 위원회가 제 기능을 못 하다 보니, 위원회의 감독을 받아야 할 사무처가 오히려 위원회 몫이어야 할 결정권까지 행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본투표 인쇄매수 기준을 60%에서 50%로 낮춘 결정이 위원회 의결 없이 사무총장 전결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이러한 구조의 한 단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이 임계점을 넘어서며 터져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의 참정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민주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원리 중 하나는 권력 분산과 상호 견제입니다.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언론의 감시·비판, 그리고 “권력교체가 공정하고 자유롭게 이뤄지기 위한 선거제도”³ 역시 권력 견제에 필수적인 장치입니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사태에서 선관위는 이러한 선거제도의 공정성과 신뢰를 훼손했을 뿐 아니라, 정작 자신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독립성이 부여되었다고 해서, 견제와 감시에서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독립성의 정당한 행사를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내부 통제와 외부 감시가 필요합니다. 아직 국정조사와 합수본·특검의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우선 이번 사태의 경위와 책임 소재가 철저히 규명되어야 합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선관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내부 통제와 외부 감시 체계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특히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이 시민들의 참여입니다. 아무리 정교한 제도라도 시민들의 관심과 감시가 없다면 얼마든지 형식화·관료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과 시민단체, 다른 국가기관의 감시 역시 중요하지만, 그 활동이 지속되고 사회적 힘을 갖기 위해서는 결국 그것을 지켜보고 지지하며 때로는 직접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이 필요합니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사태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반응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부정선거 음모론과 결합된 시위의 문제가 현재진행형이기는 하지만, 부실 선거와 참정권 침해를 규탄하는 시민들의 시위와 대학가의 성명이 이번 사태를 사회적 쟁점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것도 사실입니다. 음모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진상이 밝혀지고 선관위가 개혁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이번 사태에 많은 이들이 분노한 것은 모든 국민에게 참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선거의 공정한 운영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참정권이 실제로 누구에게나 온전히 보장되고 있는지를 묻게 합니다. 참정권은 선거권을 포함하여 국민이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고 표현하며 국가의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사태에서는 이 사태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동시에, 장애인이나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트랜스젠더 등 이미 이전부터 선거권이 침해되고 있었던 사회적 소수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재차 지적되었습니다.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가 제한된 집단일수록 자신의 권리 침해를 공론화하고 이를 시정할 힘을 갖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사회적 소수자의 선거권 보장은 투표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이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가야 합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민주주의는 투표할 권리를 보장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누구도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되지 않는 민주주의여야 합니다.


                                                                                                            - 이 글은 열림터의 유림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¹중앙선관위의 자체 진상 조사 결과는 배제했다. 외부 인사로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기는 했으나, 조사 기간이 10일에 불과했고, “꼼수 셀프 조사”,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도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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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경향신문 (2026.03.01), 민주주의의 보루, 상호견제